• 지정번호제도 개선 (2021년) 이전 발간자료에 수록된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한 자료로 지정번호가 일부 표기되어 있을 수 있는 점 이용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적명(한글) 대천동유적
시대 청동기
성격 분묘
유적설명(한글)

이 유적은 공동주택 건립에 따른 형질변경 과정에서 조사된 것으로, 대구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분묘(墳墓) 중 최대 규모이다. 유적 은 지형상 대구분지 남서쪽 경계 부근의 넓게 펼쳐진 월배선상지(月背 扇狀地)의 선단부(先端部)에 위치하고 있다. 선단부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하수면이 얕아 용천(湧泉)이 위치하는 곳으로, 취락이나 경작지가 입 지하기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6기, 돌널무덤[石棺墓] 68기, 수혈 7기, 구상유구 1기와 고려시대 수혈 11기, 주혈군 1개소 등 총 10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이들 유구에 서 출토된 유물은 바리형 무문토기, 붉은간토 기[紅陶], 돌칼[石刀], 돌화살촉[石鏃], 목걸이 [頸飾] 등 총 284점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평면형태상 장방형, 방형, 원형이 있는데, 그 중 이른 시기인 장 방형 주거지에서는 바리형 무문토기을 비롯 해 편인석부(偏刃石斧), 숫돌[砥石] 등이 출토 되었다. 방형의 주거지는 원형보다 선행하는 주거지로, 내부 중앙에 무시설식의 화덕자리 가 있다. 원형의 주거지는 중앙에 타원형수혈 과 양 주혈을 가지는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주거지는 유구의 중복관계 나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장방형→방형→원 형의 순이다. 분묘는 고인돌[支石墓] 3기와 돌널무덤[石棺墓] 68기가 확인되었는데, 석관묘는 배치에 따라 2개의 군(群)으로 나눌 수 있다. A군은 53기, B 군은 12기로 B군에 비해 A군은 분포하는 면적이 넓고 밀집도가 높으며, 석관의 축조상태 또한 정교하다. 그러나 유물의 부장양상을 보면 A군에 서는 붉은간토기, 돌칼, 돌화살촉이 출토된 유구가 1기에 불과하나 B군 에서는 3기가 조사되었고 또 목걸이[頸飾] 1점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재료 및 축조방법에 따라 크게 3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Ⅰ류 는 냇돌[川石]만을 이용하여 평적(平積)한 석곽형(石槨形), Ⅱ류는 냇돌과 판석(板石)을 혼용하여 축조한 혼축형(混築形), Ⅲ류는 판석을 이용해 4벽 을 축조한 상자형[箱形]이다. 그중 붉은간토기, 돌칼, 돌화살촉이 함께 출 토된 석관묘는 모두 Ⅰ류인데, 유물이 출토된 돌널무덤들은 Ⅰ류의 다 른 돌널무덤에 비해 그 축조상태가 정교하지 않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68기의 돌널무덤는 대구 월배지역 청동기시대 분묘유적 중 최대의 규모이다. 석관의 세부 구조는 석축형( Ⅰ 류), 혼축형(Ⅱ 류), 상자형(Ⅲ류) 등 대구지역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분묘유형이 모두 확인된다. 따라서 이 유적에서 확인된 돌널무덤군에 대한 정밀한 분석 이 이루어진다면 월배선상지 일대 뿐만 아니라 대구지역 청동기시대 분 묘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집필 : 권헌윤, 감수 : 이상길)

특징 대구지역 최대의 청동기시대 분묘유적
주요유적 주거지, 석관묘, 수혈, 구상유구, 지석묘
유적요약설명 대구 월배지역 청동기시대 분묘유적 중 최대의 규모이다. 대구지역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분묘 유형이 모두 확인된다. 따라서 대구지역 청동기시대 분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조사기관 영남문화재연구원
집필자 권헌윤
사전명 2006 한국고고학저널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대천동유적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부가자료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