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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명(한글) | 부여 송국리 유적 |
|---|---|
| 시대 | 청동기 |
| 성격 | 취락 |
| 시군구 | 충청남도 부여 |
| 유적설명(한글) |
부여군 초촌면에 소재한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마을유적으로 지난 40여 년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조사되었을 만큼 고고학계의 뜨거운관심을 받아 왔다. 송국리 유적이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 온 이유는 80여 기가넘는 주거지住居址는 물론 석관묘石棺墓, 울책鬱柵,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돌검石劍, 돌도끼石斧 등 다양한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사시대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토목·건축 공사의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19·20차 발굴 조사에서도 집자리 5기,주혈(柱穴) 2개, 구상유구溝狀遺構 1기, 옹관묘甕棺墓 1기, 토광묘土壙墓 1기, 석축묘石築墓 7기, 수혈竪穴 11기와 함께 넓은 대지를 인공적으로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었다.송국리 유적에서 발견된 집자리와 건물지는 주로 구릉에서 발견되어, 송국리의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구릉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번 발굴에서도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부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기둥 구멍들이 확인되었다. 18차 조사에서 발견된 집자리와 목주열木柱列까지 포함하면, 18~20차 조사에서는 구릉 정상부에서 총 6기의 주거지와 3조의 목주열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구릉의 정상부가 매우 평탄하고 넓다는 점이 주목된다.이러한 구릉정상부 평탄지의 비밀은 토층에서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단은발굴 조사 범위의 중앙 부분을 세로로 잘라 토양의 퇴적 양상을 관찰하였다.그 결과 색조와 성질이 다른 토양이 여러 차례에 걸쳐 퇴적었음을 알 수 있었다. 토양의 퇴적 양상을 살펴보면 황갈색 풍화암반토와 적갈색 점질토가 기반층을 형성하며, 그 위로 회녹색 사질점토, 갈색사질토, 황색 사질토가 차례로쌓였다. 그런데 갈색 사질토는 구릉 정상부로부터 동쪽으로 약 4m 내의 구역에서는 40~50cm 정도로 두껍게 쌓인 반면 해당 구간 밖에서는 10~30cm 내외로 얇게 퇴적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 구간에서는 사면부의 경사 방향과 관계없이 갈색사질토가 수평하게 퇴적되었다. 따라서 해당 구간은 인공적으로 성토해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성토대지盛土臺地란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평탄한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선사시대 유적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송국리 18~20차 조사 범위의일부를 성토하였다는 점은 구릉정상부의 지형적인 특징으로도 파악된다. 만약구릉의 평탄대지가 성토된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퇴적되어 형성된 것이라면구릉정상부에는 엄청난 양의 토양이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구릉정상부는 지표면 바로 아래에 풍화암반토가 형성되어 있어 사면부로 흘러내려 쌓일 만큼 많은 양의 토양이 없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송국리 마을 사람들은 구릉정상부의일부분을 깎아 사면부에 매립하여 성토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구조물을 짓고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이러한 성토대지는 당시의 건축 방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조를 이루며서로 평행하게 조성된 기둥 구멍들은 당시에 대형의 건축물이 구릉정상부에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 구릉정상부는 성토하여 인공대지로 이루어진 구간과 자연의 암반층이 풍화되어 지반을 이루고 있는 구간으로 크게 나누어지며, 주혈안에는 석재가 위치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혈들은 대부분 성토대지에위치한다. 이를 성토대지와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청동기시대 송국리 마을 사람들은 성토대지가 풍화암반층보다 상대적으로 무르다고 판단하여, 성토대지 위에 기둥을 세울 때에는 기둥 구멍에 석재를넣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고 생각할 수있다.그렇다면 이러한 성토대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성토대지 조성 방식을 알려주는열쇠는 19·20차 조사에서 새롭게 발견된구상유구에 있다. 구상유구는 성토층 아래에 위치하는데 구溝와 주혈로 구성되어 있다. 구상유구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2개의 구가 남-북 방향으로 평행하며, 그 사이에 5개의 길고 짧은 구가 동-서 방향으로 위치한다. 또한 구 내부에는 주공柱孔들이 조밀하게 존재하며, 구 주변에는 주혈들이 드문드문 존재한다. 박순발 교수(충남대학교)는 이러한 시설을 항축?築 시설로인식하였다. 즉 구상유구는 성토대지를 조성하기 위한 기초시설로 격자 모양의 구에 나무기둥을 박아 틀을 만들고 그 틀에 흙을 부어 성토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항축 시설은 대개 성을 쌓을 때이용하는 방법으로, 선사시대 한반도에서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가 없다. 구상유구에서는 슴베가 있는有莖式 돌화살촉石鏃이 확인되어 구상유구가 청동기시대에조성되었음을 알려준다. 만약 이 구상유구가 항축 시설이라면 항축 시설의 기원이 청동기시대까지 올라가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이청규 교수(영남대학교)는 구상유구가 다세대 지상식 건축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구상유구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이번 송국리 유적 19·20차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집자리 및 주혈, 구상유구와 함께 선사시대 유적에서 사례가 극히 드문 성토대지가 확인되었다. 아직까지의 조사 결과로는 성토대지의 조성 시기·방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조성 시기·방법은 물론 폐기시기, 주체 세력 등과 같은 성토대지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성과가 도출될 수있을 것이다. |
| 특징 | 청동기시대 대지조성의 흔적 |
| 주요유적 | 주거지, 석관묘, 옹관묘, 인공대지 조성 구역 |
| 유적요약설명 | 성토대지란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평탄한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선사시대 유적에서는 그 사례를 찾기 힘들지만 유적에서 성토대지가 확인되었다. |
| 조사기관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
| 집필자 | 김경택주동훈박병욱 |
| 사전명 | 2015 한국고고학저널 |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