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번호제도 개선 (2021년) 이전 발간자료에 수록된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한 자료로 지정번호가 일부 표기되어 있을 수 있는 점 이용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적명(한글) 춘천 중도유적
시대 청동기
성격 분묘
시군구 강원도 춘천
유적설명(한글)

춘천 중도유적은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면서 형성된 하중도河中島(강 가운데에 강물의 속도가 늦어지면서 만들 어진 섬)에 만들어진 유적이다. 원래는 섬의 북서쪽을 통하 여 춘천분지로 이동이 가능하였으나 1967년 의암댐이 만들 어지면서 현재와 같이 상중도上中島와 하중도下中島의 2개 섬 으로 분리되었다. 중도유적은 1970년대 후반부터 알려졌으 며,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중도 1호 주거지가 조사 된 이래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10여 차례 이상 진행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이 분 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2013~15년)의 중도유적에 대한 조사는 이 지역에 레고랜드 테마파크와 관광시설 조성계획에 따라 실시되었 으며,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 고려문화재연구원 (원장 김병모),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 한백문화 재연구원(원장 서영일), 한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조원창) 등 5개 조사기관이 연합하여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조기~중기에 이르는 생활유적과 함께 묘 역식지석묘墓域式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돌로 세우거나 쌓아서 만든 관) 등 무덤유적, 삼국~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밭 (경작유구) 등을 확인하였다. 춘천지역의 지석묘는 1915년 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조 사되었으며, 중도유적에서는 1981년 중도선사유적발굴조 사단에 의해 지석묘 2기가 조사되었고, 이 중 2호 지석묘 에서 적석시설積石施設(돌을 여러 겹 쌓은 시설)이 확인되어 묘역식지석묘가 분포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 서는 묘역식지석묘(석관묘 포함) 101기가 확인되었으며, 주거지와 따로 떨어진 곳에 열을 지어서 축조된 것과 주거 지가 위치하고 있는 곳에 흩어져서 축조된 것이 모두 확인 되었다. 묘역식지석묘는 시신을 안치하는 돌널石棺을 만든 후 그 위에 강돌과 깬돌을 깐 묘역시설墓域施設이 추가된 것으로 써 이 묘역시설은 무덤의 영역을 표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묘역식지석묘는 대체로 청동기시대 중기에 이르러 널리 확산되며, 상석上石(윗돌)을 받치는 지석支石(기둥돌)이 사 라지고 묘역시설 위에 바로 상석이 놓이는 개석식蓋石式(덮 개돌 방식)의 축조 비율이 높아진다. 중도유적에서 상석이 남아 있는 묘역지석묘는 모두 개석식으로 만들어졌다. 묘 역시설의 형태는 (장)방형이 주를 이루고, 원형은 비교적 크기가 작은 것에서 확인된다. 석관은 위치에 따라 지하식地下式(석관이 지하에 위치)과 지상식地上式(지상 즉, 묘역시설에 위치)으로 구분된다. 그 리고 축조방식에 따라 판석板石(얇고 편평한 돌)을 세워서 만든 조립형組立形과 강돌이나 깬돌을 쌓아서 만든 석축형石 築形으로 구분된다. 조립형 석관은 석관과 묘광墓壙(무덤구 덩이) 사이를 강돌을 채워 보강한 예가 많다. 석관을 덮은 개석蓋石(덮개돌)은 주로 판석이 사용되었는데, 개석을 두 겹二重으로 덮은 것도 확인되었다. 유물은 돌화살촉石鏃, 돌창石槍, 돌칼石劍 등 석기류가 많이 부장되며, 관옥管玉(대롱모양의 구슬) 등도 소 량 확인된다. 묘역시설에서는 깨 진 토기편과 돌도끼石斧가 출토되 기도 하는데, 토기를 깨 어 넣는 행위는 일반적으 로 장송의례葬送儀禮(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하는 행사, 또는 사회적 풍습)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한강문화재연구원에서 조 사한 29호 지석묘에서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1점이 상석 바로 아래에 서 출토되었는데, 슴베부분(손잡이 에 연결되는 부분)과 검劍 의 아랫부분만 남아있다. 이 지석묘는 시신을 안치하는 공간(석관)을 따로 만들지 않고 묘역시설과 상석만 설치하였는데, 이는 이 지역 일대 가 무덤지역임을 표시하는 일종의 묘표석墓標石(공동무덤 지역임을 알려주는 돌로 만든 시설)으로써의 기능을 하였 으며, 동시에 의례가 행해진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또한 4호 지석묘에서는 8~10세로 추정되는 어린아이 의 머리뼈와 다리뼈가 옆으로 누워진 채 확인되었고, 35 호 지석묘에서도 머리뼈와 치아 일부가 수습되어 각각 서 울대 해부학교실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에서 DNA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다. 중도유적의 묘역식지석묘(석관묘 포함) 중 주거지와 중 복되어 있는 것은 모두 묘역식지석묘가 주거지를 파괴하면 서 축조되어 있었다. 주거지의 축조 연대가 대부분 청동기 시대 중기에 해당됨을 감안하면 묘역식지석묘의 축조가 청 동기시대 중기의 어느 시점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묘역식지석묘에서 나온 인골과 목탄의 AMS연대와 도 부합되는데, 4호 지석묘와 24호 지석묘의 인골, 30호 지 석묘의 목탄시료에 대한 방사성탄소(AMS)연대들은 기원 전 5세기 또는 그 이전에 해당할 만큼 청동기시대로는 늦 는 것이다. 이번 중도유적의 묘역식지석묘 조사를 통해서 묘역식지 석묘의 구조와 축조방법, AMS연대에 대한 자료 등을 확보 하였고, 앞으로 발굴조사가 마무리되면 정밀한 연구검토 와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묘역식지석묘에서 수습 된 고인골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면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식생활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징 묘역식 지석묘가 무리를 지어 확인
주요유적 묘역식 지석묘, 수혈
유적요약설명 묘역식 지석묘의 구조와 축조방법, AMS 연대에 대한 자료 등을 확보하였고, 묘역식 지석묘에서 수습된 고인골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면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식생활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사기관 한강문화재연구원
집필자 최종래
사전명 2014 한국고고학저널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춘천 중도유적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부가자료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