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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명(한글) | 고대리유적 |
|---|---|
| 시대 | 청동기~초기철기 |
| 성격 | 취락 |
| 시군구 | 강원도 양구 |
| 유적설명(한글) |
2012년 8월 양구군 고대리 일대에서 하천환경 정비사업에 앞서 정밀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발 굴조사는 153일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 조사를 통해 고대리 고인돌 떼 주변으로 대규모의 선사시 대 유적이 분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양구 지역에서 1987년 상무룡리 구석기유적 발굴조사 이후 양구에서 확인된 최초의 대규모 청동기/철 기시대 마을유적이다. 양구는 서천(西川)과 수입천(水入川)이라는 두 줄기의 큰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북동쪽에서 발원한 서 천 西川은 남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곡류하고, 북서쪽에서 발원하는 수입천은 남쪽으로 흘러 내 려와서 서천과 합류되어 북한강(北漢江) 본류로 유입 된다. 지금까지의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 자료를 보면 양구 지역에서 확인된 선사시대 유적 및 유 물산포지 38개소 중 22개소가 서천을 따라 분포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942~1944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과 화천읍 사이에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파로호가 조성되고, 화천과 양구 지역의 3개면 20여 개 마을과 인근 지역 38.9㎢가 수몰되었는데, 양구는 서천 유역 인근 마을이 수몰되었다. 1987년 북한강 상류에 평화의 댐을 건설할 때 그 하류인 화천댐의 수문을 개방하자 수몰지역의 바닥이 드러나게 된다. 강원대학교박물관과 경희 대학교박물관에서 합동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양구의 구석기시대의상무룡리유과 청동 기시대(靑銅器時代)의 공수, 고대리 고인돌 (支石墓群) 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상무룡리 2지구 에서는 다량의 흑요석기가 출토되었는데, 정밀분 석 결과 양양 오산리, 양평 교평리, 연천 전곡 등지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백두산 흑요석임이 알 려져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이동경로에 대한 연구 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고인돌은 모두 27기로, 그 중 5기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춘천 중도와 그 일대에서 조사된 것들과 동일한 형식이다. 가장 큰 것은 덮 개돌의 무게가 25톤에 달한다. 공수리 고인돌 떼는 1992년 발굴조사를 실시 한 후 현재의 양구선사박물관으로 이전 복원하 여 전시 중에 있다. 고대리 선사유적 2011년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양구읍 일원에 위치한 서천을 수변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 을 세우고 공사에 앞서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였 다. 조사 결과 4개 공사구간 중 고대리 일원에 매 장문화재가 존재할 가능성이 제시되어 2012년에 표본조사와 정밀발굴조사로 이어졌고, 2012년 8 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153일 동안 실시된 발 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유구 212기가 확인되었다. 서천 유역의 북쪽에 형성된 해발 180m 내외의 충적대지에 입지한 고대리유적에서는 청동기 · 철 기시대(鐵器時代)에 형성된 마을유적이 39,720㎡에 이르는 넓은 공간에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대리 청동기시대 마을 고대리 마을 유적은 대부분 집자리와 구덩유구 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 도랑유구와 석기 공방으로 추정되는 유구, 그리고 그 주변으로 5개 의 묘역이 따로 마련된 것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 대 집자리는 90기로 모두 장방형계로 규모, 내부 시설, 출토유물 등의 특징으로 크게 4개 형식으 로 분류가 가능하다. 집자리 우선 1식은 6기로 장축길이가 10m 이상의 대 형 집자리이다. 장축방향은 강의 흐름과 동일한 남동- 북서 방향으로 1식과 2식의 집자리를 제외 한 70여기의 집자리는 장축이 남서-북동을 향하 면서 일정 간격을 두고 넓게 분포한다. 평면형태 는 세장방형으로, 내부에 불규칙한 바닥다짐이 확인된다. 화덕자리(爐址)는 2개에서 5개까지 시설 되어 있는데 대부분 둥근 구덩이 형식(竪穴式)이나, 13 · 75호는 방형의 돌둘림식화덕자리(圍石式爐址)가 함께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1식의 집자리에서 주로 순수 구멍무늬토기(孔列 紋土器)와 항아리모양토기(壺形土器)가 함께 출토되었는 데, 18호에서만 구멍무늬+짧은빗금무늬(短斜線紋)토 기편이 확인되어 다른 형식의 집자리보다 이른 시 기에 해당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함께 출토된 유물 로는 간돌칼(石劍), 돌창(石槍),만입촉(灣入鏃) 이단슴베 식화살(二段頸式石鏃),조갯날도끼(蛤刃石斧), 반달돌(半 月形石刀),갈돌(砥石), 원석, 원판형석기(圓板形石器), 옥 장식품(玉飾) 등이 확인된다. 2식은 장축길이가 2~10m 내외의 중형 집자리 로 총 27기가 있다. 조사구역 중앙에 밀집분포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 주를 이룬다. 장축방향 은 남서-북동향이 주를 이루나 8기는 남동-북서 향을 하는데, 내부시설과 유물의 내용면에서 상호 큰 차이가 없다. 바닥다짐은 단벽 한쪽 또는 양쪽 끝에 치우친 위치에 장축을 따라 길게 늘어진 점 질토로서 매우 치밀하고 단단하게 조성되었다. 화덕자리는 바닥다짐을 하지 않은 곳에 설치하 였는데, 주로 둥근 구덩식 화덕자리가 1기의 집 자리 당 2기 확인되며, 최대 3기까지 관찰되었다. 53호 집자리는 1식처럼 장축이 남동-북서향으로 그 내부에 구덩식과 함께 원형의 돌둘림식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1식에서 확인된 돌둘림식 화 덕자리는 방형인 것에 반해 53호 집자리의 것은 평면형태가 둥근 형태이다. 13기 집자리에서 점토 다짐구역 내에 작업공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확 인되었다. 2식의 출토유물로 순수 구멍무늬토기와 붉은 간토기(赤色磨硏土器)가 주를 이루고, 그 밖에 항아리 식토기, 돌창, 일단슴베식화살촉, 이단슴베식화 살촉, 대팻날도끼片刃石斧, 주상편인석부柱狀片刃石斧 , 그물추(漁網錘) 등이 확인되었다. 3식은 장축길이가 3~8m 내외의 중형 집자리 로 총 19기가 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 주를 이 루나 방형도 5기가 확인되었다. 2식과 달리 일정 간격을 두고 넓게 분포하며, 장축방향은 모두 남 서-북동으로 강의 흐름과 직교한다. 북쪽 단축벽 근처에는 흔히 ‘이색점토다짐’ 으로 불리는 구역이 마련되어 있는데, 내부에 작업구덩이(作業孔) 시설하 고, 점토다짐구역 반대쪽 단축 벽쪽으로 구덩식 화덕자리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북한강 유역에 서 흔히 확인되는 이른바 천전리식 집자리로 유 물은 순수 구멍무늬토기가 주를 이루며, 붉은간 토기, 항아리모양토기, 돌화살촉, 조갯날도끼, 홈 자귀 , 가락바퀴 , 석제 그물추 등이 함 께 출토되었다. 4식의 집자리에는 장축길이가 5m 이하인 방형 위주의 소형 집자리 25기가 해당된다. 장축방향 은 남서-북동이고, 수기씩 군집을 이루며 분포한 다. 점토다짐은 14기에서만 확인되며, 화덕자리는 한쪽 단벽에 치우쳐 시설되어 있다. 구멍무늬토기 와 함께 붉은간토기, 간돌칼, 돌화살촉, 굴지구 등 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처럼 양구 고대리유적에서는 순수 구멍무늬 토기가 집자리의 형식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확 인되었으며, 이와 함께 항아리형토기, 붉은간토기 가 출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개 형식 집자리 의 조성 시기는 그 특징과 중복관계로만 보면 1식 이 가장 이른 것으로 확인되며, 소량이지만 구멍 것이 확인되었다. 제1 묘역은 생활공간과 연접해 있어 일부 집자 리와 중복된 상태로 모두 3기의 도랑무덤이 확인 되었는데, 평면형태를 볼 때 세장방형 2기, 장방 형 1기로 구분된다. 세장방형의 도랑무덤은 장축 방향이 남동-북서이고, 일정 간격을 두고 분포한 다. 교란으로 인해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는 삭평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1기의 상부에 청동기시 대 2 · 4식의 집자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장방형의 도랑무덤은 남-북향을 하고 있으며, 내부에서 확인된 유구로서 이중 판석이 깔린 구 덩이가 매장주체부로 추정된다. 별도의 구덩유구 역시 도랑의 방향과 일치하여 매장주체부일 가능 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랑에서 조갯날도끼 이외 에 출토된 유물이 없어 조성 시기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나, 인근 춘천 천전리, 중도, 홍천 철 정리 등 유적의 예를 보면 모두 천전리식 집자리 보다 이른 단계의 유구로 추정된다. 제2 묘역은 도랑무덤이 위치한 묘역에서 남쪽 으로 약 40m 거리에 위치한다. 고인돌로 이루어 진 묘역으로 이곳에서 9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 무늬(孔列紋)+짧은빗금무늬(短斜線紋)토기편이 출토되어 다른 형식과 구분된다. 2 · 3식은 내부 구조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나 갖추어진 시설과 집자리의 규모, 형태, 유물 등에서 모두 북한강 유역에 널리 분포하는 천전리식 집자리와 유사하다. 4식은 형태로만 보면 춘천 중도, 화천 거례리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후기 단계의 집자리 와 유사하나, 후기 단계의 소형 집자리의 표지유 물인 점토대토기가 확인되지 않았고, 구멍무늬토 기가 주를 이루어 차이점을 보인다. 또한 중복관 계를 볼 때 4식은 2 · 3식보다 먼저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어 춘천 중도, 화천 거례리유적의 소형 집 자리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현상과는 차이가 있다. 즉, 고대리유적의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1식→4식 →2 · 3식의 순서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분묘 고대리의 청동기시대 분묘로 도랑무덤과 고인 돌이 확인되었으며, 생활공간과 분리된 묘역에 위 치한다. 묘역은 생활공간의 동쪽 2곳, 중앙 1곳, 북쪽 2곳에서 각각 독립된 공간(1~5묘역)을 이룬 것이 확인되었다. 제1 묘역은 생활공간과 연접해 있어 일부 집자 리와 중복된 상태로 모두 3기의 도랑무덤이 확인 되었는데, 평면형태를 볼 때 세장방형 2기, 장방 형 1기로 구분된다. 세장방형의 도랑무덤은 장축 방향이 남동-북서이고, 일정 간격을 두고 분포한 다. 교란으로 인해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는 삭평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1기의 상부에 청동기시 대 2 · 4식의 집자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장방형의 도랑무덤은 남-북향을 하고 있으며, 내부에서 확인된 유구로서 이중 판석이 깔린 구 덩이가 매장주체부로 추정된다. 별도의 구덩유구 역시 도랑의 방향과 일치하여 매장주체부일 가능 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랑에서 조갯날도끼 이외 에 출토된 유물이 없어 조성 시기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나, 인근 춘천 천전리, 중도, 홍천 철 정리 등 유적의 예를 보면 모두 천전리식 집자리 보다 이른 단계의 유구로 추정된다. 제2 묘역은 도랑무덤이 위치한 묘역에서 남쪽 으로 약 40m 거리에 위치한다. 고인돌로 이루어 진 묘역으로 이곳에서 9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 다. 이 중 5기는 개석식으로, 구덩이를 판 후 판석 을 이용하여 매장주체부를 만들고 외벽은 할석 으로 뒷채움하여 매립한 형식으로 모두 길이 1m 이내의 소형 분묘이다. 탁자식 고인돌은 2기가 확 인되었는데, 1기는 덮개돌이 유실된 상태로 확인 되었다. 덮개돌이 확인된 고인돌은 2m 내외의 길 이로 소형 분묘이다. 제3 묘역은 조사지역의 중하단에 위치한 것으 로 앞서 지표상에 노출된 고인돌 떼(강원도 기념 물 제9호)이다. 근접한 곳에 밀집한 2식의 집자리 보다 다소 높은 층에 조성되어 있어 그 축조 시기 가 다소 늦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점에는 원래 8기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3기만 잔존한다. 제4 묘역은 조사지역 북서쪽에 위치한다. 개석 식 고인돌 1기가 확인되었는데, 매장주체부가 이 단 굴광 형태로서 지상에 장축으로 할석 2매를 놓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렸다. 제5 묘역은 북서쪽에 치우쳐 개석식 고인돌이 확인되었는데, 제2 묘역의 개석식과 매장주체부 의 형태는 동일하나 구덩이의 범위가 넓고, 매장 주체부 주변의 상부를 할석으로 적석積石한 것이 특징이다. 이들 고인돌에서는 부장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내부퇴적토와 주변에서 민무늬토기편이 소량 수 습되었을 뿐이다. 제5 묘역의 고인돌은 춘천 중도 유적의 사례로 보아 천전리식 집자리의 상층에 조성되어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 특징 | 남한 북단 양구 서천의 청동기와 철기시대 마을 |
| 주요유적 | 주거지, 지석묘 |
| 유적요약설명 | 양구지역의 선사유적은 주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들인데 고대리의 청동기?철기시대의 마을유적을 정밀발굴하게 되었다. |
| 조사기관 | 강원문화재연구소 |
| 집필자 | 이나리/정상민 |
| 사전명 | 2013 한국고고학저널 |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