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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명(한글) | 성산리유적 |
|---|---|
| 시대 | 청동기 |
| 성격 | 취락 |
| 시군구 | 충청남도 당진 |
| 유적설명(한글) |
당진 성산리유적은 석문방조제와 인접한 당진시의 북서쪽 해안가 저구릉 상에 위치한다. 지난 4년여의 발 굴조사를 통해서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원삼국(原三國)~백 제百濟,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마을유적과 백제시대 산성(山城) 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마을은 1.1㎞범위의 여러 구릉상에 분 포하는데, 집자리(住居址) 91기와 구덩이(竪穴) 37기가 발굴 되었다. 그리고 일부 집자리 및 구덩이에는 굴·동죽·가 리비·소라 등으로 구성된 조개더미貝塚가 퇴적되어 있었 다. 출토된 유물은 역삼동식ㆍ흔암리식 민무늬토기(無紋土 器)가 대부분이고 돌칼(石劍), 돌도끼(石斧), 돌화살촉(石鏃), 주형 (舟形)ㆍ삼각형(三角形) 등의 돌칼(石刀), 모룻돌 등이 있으며, 모 룻돌 주변에서는 석기(石器) 제작과 관련된 많은 양의 돌 조각薄片과 미완성 석기(半製品)가 검출된다. 취락은 청동기시대 전기 후반부터 후기까지 형성되 었으며, 농경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어로와 채집의 비중 도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석기를 활발 하게 제작한 집단으로서, 차령산맥 이북의 해안권에서 는 중심취락에 해당한다. |
| 특징 | 조개류를 즐겨먹으며 다양한 석기 제작 |
| 주요유적 | 주거지, 수혈, 패총 |
| 유적요약설명 | 취락은 청동기시대 전기 후반부터 후기까지 형성되었으며, 농경을 중심이기도 하지만 어로와 채집의 비중이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
| 조사기관 | 충청문화재연구원 |
| 사전명 | 2011 한국고고학저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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