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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한글) 신화리·교동리유적
시대 청동기
성격 취락
유적설명(한글)

울산 신화리·교동리유적은 경부고속철도 울산역 역세권 개발사업부지 내에서 확인되었다. 유구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집자리(住居址) 83기를 비롯해서 초기철기(初期鐵器)∼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의 구덩이(竪穴)·지상건물 지(地上建物址)·도랑(溝)·목책렬(木柵列), 통일신라시대(統一新 羅時代)의 돌방무덤(石室墓)·화장무덤(火葬墓)·건물지(建物址), 고려(高麗)∼조선시대(朝鮮時代)의 무덤(墳墓)·도랑(溝) 등 총 471기가 발굴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대형의 세장방형에서 중형 또는 소형의 장방형이나 방형 평면의 집자리까지 다양한 편 이다. 이 유적에서 조사된 83기뿐만 아니라, 바로 인접 한 지역의 발굴 내용을 포함한다면, 신화리·교동리 일 원에는 거의 1,000기에 육박하는 숫자의 집자리가 분포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밀한 시간성 파악이 우선되 어야겠지만, 제한된 공간적 범위 안에서 이와 같은 엄청 난 양의 집자리의 존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시의 마을 규모나 사회조직의 운영 측면에서 흥미로 운 검토대상이 될 것이다. 다만, 마을의 장기존속성을 반영하는 대규모 무덤군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나 집자 리와 관련된 부대시설이 미약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정 치체의 위상이 높은 대규모의 중심 마을로 보기는 어려 울 것 같다. 그보다는 생계경제와 관련한 마을의 이동, 즉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집단의 빈번한 거주역(居住域) 이 동 현상으로 추정하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 다. 앞으로 신화리·교동리 일원의 집자리 자료를 면밀 히 분석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리적인 해석과 설명이 이 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특징 청동기시대 수많은 집자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주요유적 주거지
유적요약설명 인접한 지역의 발굴을 포함하면 주거지가 1000여기에 육박하는 숫자의 집자리가 분포하는데 마을 규모나 사회조직의 운영 측면에 대한 것이나 생계경제와 관련한 마을의 이동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
조사기관 울산문화재연구원
사전명 2010 한국고고학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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