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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명(한글) | 강누리유적 |
|---|---|
| 시대 | 청동기~고려 |
| 성격 | 취락 |
| 시군구 | 경상남도 산청 |
| 유적설명(한글) |
산청 강누리유적은 남강의 지류인 경호천변의 충적지 에 형성된 대규모 생활유적으로, 하천개수 공사지역에 포함된 산청 읍청정(揖淸亭)(경상남도문화재자료 290호) 부지를 조사하면서 드러났다.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유 구 23기,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유구 13기, 고려시대 (高麗時代) 유구 83기, 시기미상의 유구 14기 등 모두 133기 의 유구가 발굴되었으며, 이 밖에 후속 조사가 이루어진 100여 기를 더한다면 유구의 총 수량은 230여 기가 넘는 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범위가 8,500m2 인 점을 감안 하면, 조사지역 내에서 확인된 유구의 밀집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구는 집자리(住居址) 8기를 비롯하여 구 덩이(竪穴) 10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돌덧널무덤(石槨墓) 2 기 등 모두 23기가 분포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말각방형이며 중앙에 구덩이 있는 집자리로서 이른바 ‘휴 암리형 주거지(休岩里型 住居址)’에 속하는 형식이다. 돌널 무덤은 반파된 상태로 드러났는데, 여기에서는 굽혀서 매장한 듯한 인골의 다리부분만 남아 있었다. 돌널(石棺) 에서 출토된 유물은 중앙의 서쪽 바닥 쪽에서 돌화살촉 (石鏃) 4점이, 북서쪽 모서리 쪽에서 돌칼(石劍)과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가 1점 있다. 돌덧널무덤(石槨墓)은 2기 모두 주축이 남북방향으로 1호 돌덧널무덤은 천석을 4단 가 로쌓기(平積)하여 장벽과 단벽을 축조한 반면에, 2호 돌 덧널무덤은 1단은 세로쌓기(竪積)하고 2단을 가로쌓기 한 형태이다. 2기 모두 주검 받침돌(屍床石)을 마련하였지 만 1호 돌덧널무덤은 빈틈없이 깐 데 비해, 2호 돌덧널 무덤은 3개의 주검 받침돌을 머리, 엉덩이, 다리로 추정 되는 위치에 깐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돌덧널무덤에서는 붉은간토기, 돌칼(石劍), 돌화살촉(石鏃)과 곱은옥(曲玉)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강누리유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구 는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걸치는 집자리 및 건물 지(建物址), 구덩이(竪穴), 소성유구(燒成遺構) 등으로 그 수가 100여 기를 넘는 점에서 대규모 마을이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 특징 | 일제강점기 유교 정자터에서 발굴된 주거의 흔적 |
| 주요유적 | 주거지, 수혈, 석곽묘, 석곽묘 |
| 유적요약설명 | 조사지역 내에서 확인된 유구의 밀집도는 상당히 높으며 청동기시대 유구에서 굴지장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
| 조사기관 | 한계례문화재연구원 |
| 사전명 | 2010 한국고고학저널 |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