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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명(한글) | 평거 3·4지구 유적 |
|---|---|
| 시대 | 청동기 |
| 성격 | 취락 |
| 시군구 | 경상남도 진주 |
| 유적설명(한글) |
청동기시대의 농경 농경農耕의 사전적 의미는 ‘논과 밭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 일’로 작물을 심고 가꾸고(관 리) 수확하는 것을 말하며, 주로 식량생산을 위한 경작활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농경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 중기에 들어와 수렵·어로·채집 활동과 함께 생계경제 활 동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다가 점차 그 비중이 높아져 청동기시대에는 가장 중요한 생 계경제 형태 중 하나가 된다. 즉,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부터 작물을 길러서 식량을 생산 하는 생계방식으로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다. 논과 밭은 식량을 생산하는 가 장 대표적인 농경형태로 자연에서 식량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자연人工自然’ 공간에서 작물을 길러서 생산한다. 이러한 생계방식의 변화는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는 인간생존에 가장 필요한 식량을 안정적으 로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착생활이 보다 강화되어 취락이 점차 발전하게 되었다. 취락의 발전은 그에 속한 사회구성원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외형 적인 변화가 함께 일어나며, 이러한 변화는 정신적인 변화를 동반하여 다양한 문화양상 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농경은 취락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 이자 경제력이 된다. 농경유적의 입지와 분포현황 우리나라에서 경작유구耕作遺構가 본격적으로 조사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 이고 청동기시대의 경작유구가 확인되고 조사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중반 이후부 터이다. 따라서 아직 경작유구에 대한 자료와 연구 성과들은 많이 부족한 편이다. 특히, 선사시대의 경작유구는 조사예가 많지 않고 지역적으로도 편중偏重되어 있어 향후 많은 경작유적들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농경유적은 크게 논유적과 밭유적으 로 구분되며, 최근에는 함께 출토되는 예가 증가하고 있다. 논과 밭은 재배작물의 종류 가 다르고 경작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유적의 입지양상에 차이가 있다. 논은 기본적으로 벼를 재배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벼 재배에 적합한 지역에 입지하게 된다. 벼는 물속에서 성장하는 작물로서 물의 확보가 용이하고 물을 가둘 수 있는 토양 및 지 형조건에 입지하게 된다. 따라서 일정한 입지 패턴과 특징을 가진다. 이에 비해 밭은 물 이 상시적으로 필요하지 않고 재배작물이 다양하며, 토양 및 지형조건도 까다롭지 않다. 따라서 밭은 비교적 자유로운 입지조건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논과 밭의 입지 특징은 조사된 유적에서도 잘 확인된다. 논은 주로 충적지沖積地의 배후습지背後濕地나 계곡부溪谷部의 평지平地에서 확인되는데, 주변에서 물의 확보가 용이하고 토양에 점토와 실트가 많아 물을 가두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밭은 대부분 강변 충적지의 자연제방대自然堤防垈에서 확인되고, 구릉이나 다른 지형에서는 잘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청동기시대 밭의 입지 특징이 아니라 밭유적 조사의 한계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밭은 지표면에서 만들 어지며, 단단한 구조물이 아닌 주변의 흙으로 조성된다. 또한 항시 노출되어 있어 교란 이 자주 일어나므로, 폐기된 이후에는 그 흔적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구릉지역은 퇴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지형으로 밭의 원형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퇴적 현상이 빈번히 일어나는 충적지에서 밭이 많이 확인되는 것이다. 구릉지역에서 밭이 만 들어지고 경작된 것은 주변에 분포하는 집자리住居址에서 출토되는 곡물의 흔적이나 농 경도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논과 밭의 전국적인 분포현황을 살펴보면 대부분 영남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조 사 여건의 한계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발굴조사가 인위적 형질변경形質變更에앞선 구제발굴救濟發掘로 유적을 선택적으로 선정하여 조사할 수 없고 영남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경작유구의 입지가 용이한 지역에 개발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 는 다른 지역에서도 논과 밭이 확인되고 있고, 시대는 다르지만 최근 확인되는 경작유구 들은 전국적인 분포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향후 경작유구는 앞서 살펴본 입지양상에 따 라 전국적인 분포양상을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청동기시대의 농경활동 농경활동의 고고학적 증거 농경활동의 고고학적 증거는 직접적인 증거와 간접적인 증거로 구분된다. 가장 적극적 인 증거는 경작유구인 ‘논’과 ‘밭’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농경의 특성상 지속적인 경작과 유구가 지상에 설치되는 관계로 외부교란 요인이 많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유적에서 경작유구의 형태나 구조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또한 논과 밭의 입 지가 다르고 형태와 구조도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유구성격에 맞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 하다. 이는 완벽한 형태나 구조를 가진 경작유구를 현장조사에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 에 각각의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논은 계단식階段式 논과 소구획小區劃 논으로 구분되지만 기본적으로 논둑이나 단차를 통해 각 논면을 구분할 수 있으며 물꼬水口, 수로, 제방, 저수지 등을 통해서 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밭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 만, 청동기시대 밭은 기본적으로 이랑밭(두둑과 고랑)으로 경계구와 경계둑을 이용하여 밭과 밭을 구분한다. 따라서 이러한 논과 밭의 각 요소들을 확인하여 경작유구의 직접적 인 형태와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간접적인 증거는 경작활동에 필요한 농기구나 재배작물인 출토곡물, 그리고 농 경관련 기념물이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농기구는 주로 돌과 나무를 이용하여 제작되는데,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즉, 신석 기시대에 성행하던 석제石製 굴지구堀地具가 청동기시대로 들어서면서 급격히 줄어들고 나무를 벌채하고 가공하는 도끼石斧, 자귀手斧, 대패날刃, 돌끌石鑿 등과 같은 목제 가공용 도구의 종류와 수량이 크게 증가한다. 돌을 가공하여 직접적으로 농기구로 사용하기보다는 나무를 가공하여 만든 목제 농기구의 사용이 증가하였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석제 농기구는 점차 목제 농기구로 대체된 것으로 생각된다. 개간과 기경 에 사용되는 목제木製 굴지구는 목제 괭이로 청동기시대에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석제 굴지구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수확구인 돌낫石鎌 과 반달돌칼半月形石刀은 벼를 베거나 이삭을 따는 용도의 특성으로 목제로 대체되기 보다는 농기구로서 더 발달된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반달돌칼에 비해 돌낫은 수확구收穫具 보다는 잡초나 잔가지를 처리하는 용도가 더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만드는 곡물 가공구인 갈돌石棒과 갈판은 청동기시대에도 사용되지만 신석기시대에 비해 수량이 점차 줄어들며, 나무로 만든 절구와 공이로 점차 대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목제 농기구는 청동기시대의 석제 농기구를 대체하면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활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부식에 약한 목재의 특성상 현재 잔존하는 목제 농기구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농경활 동의 결과물인 곡물은 주로 집자리나 경작지에서 탄화된 채로 출토되거나, 저습지에서 원형으로 출토되며, 일부는 토기 제작 시 바닥이나 몸체부에 곡물이 찍힌 흔적으 로 확인되기도 한다. 곡물의 출토는 농경활동의 증거뿐만 아니라 재배작물의 종류까 지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이외에 농경활동이 기록된 흔적을 통해서도 확 인할 수 있다. 암각화나 농경문청동기에 새겨진 경작모습을 통해서는 보다 사실적인 경작양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농경기념물과 농경의례 흔적을 통해서는 농경과 관련 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간접적인 증거들은 경작유구를 이해하는 데 보조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보다 농경활동의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청동기시대 전기와 후기의 농경활동 청동기시대의 농경활동은 시기에 따라 크게 전기前期와 후기後期로 나눌 수 있으며, 농경 형태는 논경작과 밭경작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시기에 따른 논과 밭의 경작 활동을 진주晉州 평거동平居洞유적(평거 3-1지구, 평거 4-1지구)을 중심으로 살펴보도 록 하겠다. 신석시시대의 농경 전통은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농경기술의 발달과 다양한 작물의 보급으로 보다 성숙된 농경활동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재 청동기시대 전기의 경작유적은 출토사례가 적어 대략적인 농경양상만이 파악된다. 논은 주로 구릉사면 말단부 개석곡저開析谷底나 범람원의 배후습지에 입지하며, 계단식 논과 소구획 논의 형태 로 경작된다. 논에는 관개시설인 수로와 물꼬水口가 설치되며 대체적으로 소규모로 경작 된다. 밭도 논경작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주로 집자리 주변에 배치되면서 대부 분 소규모 텃밭이나 화전경작火田耕作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전경작은 고고학적 자료가 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렵지만,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나타나는 초기의 농경형태이며, 또한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서 유리한 농경형태이기 때문에 청동기시대 전기에 성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기의 취락이 구릉에 주로 분포하는 것도 중요한 증거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청동 기시대 전기의 재배작물은 쌀, 조, 기장, 보리, 밀, 콩, 팥 등 모두 7종류이다. 청동기시대 전기의 농경은 신석기시대보다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지만 아직 활발한 농경활동은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부분의 경작활동도 소규모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경작활동을 통해 생산된 잉여생산물은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 에 외부로 유통하기보다는 주로 취락쪙칼 내에서 소비하는 자급자족의 형태가 많았을 것 으로 생각된다. 또한 자급자족의 생계경제 형태라도 모든 식량을 경작유구(논과 밭)에서 해결하지는 못한 것으로 생각되며, 수렵·채집 및 어로활동도 중요한 식량 확보 수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후기가 되면 충청도지역을 중심으로 한 송국리형 문화의 등장과 확산으 로 농경활동과 더불어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전기에 비해 다수의 집자리, 환호環壕, 야외노지野外爐址, 고상건물지高床建物址, 논과 밭 등으로 구성된 중심취락이 곳 곳에서 나타난다. 논은 개석곡저나 중소하천의 배후습지에 주로 입지하며, 형태는 계단식 논과 소구획 논으로 전기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양화됨을 알 수 있다. 또한 관 개시설도 이에 따라 다양화되고 발전한다. 관개시설 중 가장 큰 규모는 안동安東 저전리苧田里유적에서 확인된 ‘저수지’로 농경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진주 평거 3-1지구유적과 진주 평거 4-1지구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논은 비교적 남은 상태가 양호하여 논의 입지, 구조, 특징 등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진주 평거 3-1지구유적의 청동기시대 논은 A지구의 배후습지에 입지하며, 크게 가부분과 나부분 의 2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층위는 지형에 따라 1층과 2층으로 구분된다. 1층은 가부분과 나부분에서 분포하며, 2층은 가부분에만 분포한다. 1층 논의 가부분은 미지형의 경사 를 따라 조성된 계단식 논으로 일정부분 단段을 이루면서 다시 소구획되어 있다. 평면형 태는 장방형, 세장방형, 부정형 등이다. 논의 구조는 논둑, 논면의 단차, 수로, 물꼬水口 등이 확인되며, 특히, 돌무지積石, 도랑溝, 작은 돌널무덤小型石棺墓 등이 논의 가장자리 에서 확인된다. 이는 경작과 관련된 의례양상으로 보인다. 논은 총 91면이 확인되며, 전체면적은 2,177m2이다. 나부분은 소구획 논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이다. 논면의 규모는 길이 3∼5m, 너비 2∼2.5m 정도이며, 논둑은 폭 20∼30cm, 높이 3∼7cm 내외이다. 논의 구조는 논둑, 논면의 단차 등이 확인된다. 논은 약 105면 정도가 분포했 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편, 그물추漁網錐, 돌화살촉石鏃, 끌石鑿 등이 있다. 진주 평거 4-1지구유적의 청동기시대 논은 평거 3-1지구유적의 청동기시대 논 과 입지형태가 같고, 층위는 크게 1층과 2층으로 구분된다. 1층 논은 소구획 논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이며, 길이 3∼5m, 너비 2∼2.5m의 크기이다. 논둑은 폭 20∼ 30cm, 높이 2∼5cm 내외이다. 2층 소구획 논으로 일부만 확인되었으며, 평면형태는 (세)장방형과 부정형 등이다. |
| 특징 |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농경생활 |
| 주요유적 | 밭 |
| 유적요약설명 | 진주 평거 3,4지구 유적에서 확인된 논은 논의 입지, 구조, 특징 등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밭은 청동기 후기가 되면 대규모의 경작지가 만들어지고, 재배작물의 종류 또한 전기에 비해 다양해진다. |
| 조사기관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 집필자 | 윤호필 |
| 사전명 | 2010 한국고고학저널 |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문의 : 042-860-9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