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지석(砥石)
설명 석기, 금속기, 옥기, 골각기 등의 기물(器物)을 연마(硏磨)해 형태를 다듬고 표면을 매끄럽게 갈무리하며 예리하게 날을 세우는데 사용되는 숫돌을 말한다. 선사 시대~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는 도구의 하나이다. 구석기 시대 타제석기(打製石器)에도 일부 마연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지석을 사용했을 것이지만, 마제석기가 보편화된 신석기 시대부터 널리 사용되며 청동기 시대에는 대부분의 취락 유적에서 출토된다. 초기 철기~통일 신라 주거지에서도 출토 사례가 많은데, 특히 이 시기에는 가평 대성리, 경주 황성동, 대구 봉무동, 익산 왕궁리 유적 등 철기나 금·은·청동·유리 공방지에서 다수 출토되었다. 분묘에 지석이 부장되기 시작하는 것은 기원전 2세기 무렵으로, 논산 원북리, 김천 문당동, 대구 팔달동, 경산 조영동, 창원 다호리 유적 등의 목관묘(토광묘)에서 확인되었다. 원삼국 시대에는 용인 상갈동, 경주 구정동·사라리, 울산 대안리, 김해 대성동 유적 등의 목곽묘에서 출토되었으며, 삼국 시대에는 화성 왕림리 횡혈식석실묘, 경주 황남대총 남분(적석목곽분), 경주 상계리 333번지 유적 석곽묘 등에서 출토되었다. 지석은 길이 20㎝를 기준으로 소형과 대형으로, 형태를 기준으로 봉형(棒形), 판형(板形), 걸이형(佩形) 등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분류가 어려운 중간 형태의 것들도 많다. 봉형은 출토 사례가 가장 많고 크기도 다양한데, 길고 세장하며 너비가 비슷한 네 면을 모두 마연면(磨硏面)으로 사용해 중앙부가 잘록해진 형태이다. 판형은 장방형이나 부정형의 평면 형태를 가지며 비교적 큰 것이 많아 바닥에 고정시키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팔달동88호 목관묘 출토품은 사암제의 한쪽 면에 직경 0.5~1.9㎝의 구멍 19개가 파여져 있고, 합천 옥전 28호 목곽묘 출토품 2점은 반원상(半圓狀)의 좁은 홈이 길게 나 있거나 직경 3.0~5.5㎝의 원형 마연 홈 10개가 있어 옥(玉)이나 석구(石球) 제작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걸 이형은 얇고 세장한 형태로, 크기가 작고 한쪽에 직경 05~1.0㎝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많아 휴대용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후한 시기의 창원 다호리와 3세기대 용인 상갈동, 충주 금릉동, 5~6세기대 경주 황남대총 남분·황성동·상계리, 상주 헌신동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으며, 분묘의 충전토나 목개(木蓋) 위, 유물 부장 칸, 시상 하단 등에서 출토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갈동 9호 주구목관묘, 금릉동 90·118호 토광묘, 대구 서변동 138호분 석곽묘, 경주 강변로 15호 적석목곽묘 등과 같이 피장자의 허리춤에서 출토된 사례가 많다.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3점의 은제 허리띠에 구멍이 있는 지석이 요패(腰佩)에 매달린 채 출토되어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서 필요시 철기 등의 무디어진 날을 벼리는데 사용하였음을 보여 준다. 지석은 무덤에서 도자, 족집게, 유리구슬, 수정제 다면옥 등 휴대용 공구 및 장식품과 공반되기도 하고 집게, 망치, 끌 등의 단야구와 공반되기도 하며, 100여 점의 철촉이나 마갑(馬甲)·마주(馬?), 철모(鐵?), 주조괭이 등 다량의 철기와 공반되는 경우도 있다. 출토 위치도 충전토 위나 안, 목개 위, 시상 하단, 유물 부장 칸, 피장자의 허리춤(요패) 등으로 다양하다. 따라서 그 의미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우선 지석이 도자 등 휴대용 공구나 장식품을 연마하는 데 사용되는 일상 용품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단야구와 공반되는 경우는 피장자의 신분이 야철 장인(冶鐵匠人)으로 볼 수 있다. 다량의 철기류와 공반되거나 최고 지배층의 화려한 은제 요패에 장식된 지석은 피장자의 위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시상하단이나 충전토, 목개 위 등 다양한 위치에서 출토되는 것은 다양한 매장 의례(埋葬儀禮)에 지석이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완주 상운리 고분군의 분구묘·목관묘 중 20여 기의 매장 주체부에서 약 56점의 단야구가 출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석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역적·시기적으로 지석 부 장에 대한 관념이 달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고대 사회에서 지석은 본래의 기능인 기물의 연마뿐만 아니라 피장자의 신분·위세를 나타내거나 매장 의례에 사용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김권일)
참고문헌 황남대총 남분 발굴조사보고서(문화재연구소, 1994), 충주 금릉동 유적(충북대학교박물관, 2007), 용인 상갈동 유적(고려문화재연구원, 2008), 상운리Ⅰ·Ⅱ·Ⅲ(전북대학교박물관, 2010)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유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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