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주머니호
설명 원삼국 시대 영남 지방의 목관묘에 부장되는 토기 종류 중의 하나로 그릇의 외형이 주머니를 연상시켜 주머니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쓰시마(對馬島)를 제외하면 영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출토된 바가 없기 때문에 주머니호는 진·변한 지역의 고유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 경주 조양동 유적에서 와질토기 주머니호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무문토기 홍도(紅陶)에서 기원한 기종일 것으로 막연히 추정해 왔다. 그러나 대구 팔달동과 월성동, 경산 임당동, 창원 다호리, 성주 백전·예산리 목관묘군 등에서 무문토기 단계의 소형 옹, 대부소 옹, 혹은 발형토기와 같은 그릇 종류 가운데에서 기형의 변화를 거쳐 무문토기 주머니호로 정형화되었음이 분명해졌다. 무문토기 단계의 주머니호는 바닥에 낮은 굽이 있거나 평저의 기형을 가지며 대부분 마연정면(磨硏整面)하고 침탄법(浸炭法)으로 소성하여 표면이 흑색의 광택을 지닌다. 와질토기로 제작되면 바닥이 원저화(圓底化)되는 변화를 보이며 그릇 표면이 흑색을 띠기도 하지만 다양한 환원 소성의 조건에서 회색이나 회백색의 색조를 갖기도 한다. 그릇의 외형은 1차 성형의 공정에 따라 결정된다. 와질토기 주머니호는 보통 바닥과 그릇 윗부분을 따로 만들어 부착하는 성형법을 취하기 때문에 부착 부위에서한 번 꺾여 올라가는 형태를 가진다. 기원전·후 시기에 등장하는 와질토기는 이전 무문토기의 기형과 많이 닮았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형이 옹형이 아니라 목이 축약된 호형토기에 가깝게 된다. 점차 바닥에서 꺾여 올라가는 부위가 상승하고 목이 더 축약되면서 소형 단경호와 비슷하게 되고 늦은 시기의 것은 경부가 크게 외반하여 나팔상으로 벌어지게 된다. 1~2세기의 목관묘가 많이 조사된 경산 신대리, 김해 대성동, 경주 황성동, 울산 대안리 등의 목관묘군 출토 와질토기 유물군에서 주머니호의 기형 변천이 잘 살펴진다. 특히 말기에 속하는 주머니호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유물로는 김해 대성동 주변 제Ⅰ지구 13호묘, 양동리 99호 목관묘 출토품이 있다. 한편 대부분의 와질토기 주머니호는 마연정면된 것이 보통이지만 늦은 시기가 될수록 경부를 회전 정면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는 단경호와 같은 다른 호형토기의 제작 기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소멸할 때까지 타날 기법만은 적용되지 않는다.(이성주)
참고문헌 진·변한지역 분묘 출토 1~4세기 토기의 편년(이성주, 영남고고학 24, 영남고고학회, 1999), 다호리유적의 편년(안재호, 한국고대사와 고고학-학산김정학박사송수기념논문집, 학연문화사, 2000), 대구·경북지역 목관묘유적의 전개양상(이나영, 영남문화재연구 21, 영남문화재연구원 2008), 경북지역 전기와질토기의 변천과 지역성(이원태, 한국고고학보 86, 한국고고학회, 2013)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유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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