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정문경(精文鏡)
설명 정문경(精文鏡)(고운무늬거울)은 우리나라 초기 철기 시대에 유행한 구리로 만든 거울로 세문경(細文鏡)(잔줄무늬거울), 다뉴정문경(多?精文鏡), 다뉴세문경(多?細文鏡)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거울은 뒷면에 꼭지(紐)가 두 개 혹은 세 개가 달려 있어 다뉴경(多?鏡)이라고 하며, 꼭지가 하나뿐인 중국의 한경(漢鏡)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다뉴경은 현재까지 모두 110여 점이 출토되었으며, 문양의 거친 정도에 따라 조문경(粗文鏡)(거친무늬거울)과 정문경으로 구분된다. 정문경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출토되는데, 세형동검 문화(細形銅劍文化)(한국식동검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50여 점, 일본에서 12점이 확인되어 도합 60여 점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정문경은 동북아시아 청동기 문화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다뉴경은 1913년 일본 야마구치(山口) 카지쿠리하마(梶栗浜) 석관묘에서 처음 출토되었으며, 이후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역에서도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다뉴경 연구는 일본학계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한국학계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정문경이 조문경보다 앞선 것으로 보기도 하였지만 1960년에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유적이 보고되면서 지금과 같이 조문경이 정문경보다 앞서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지금까지 다뉴경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뒷면에 새겨진 문양과 주연부(周緣部) 형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거울면(鏡面)의 형태, 즉 거울면이 평면인지, 볼록인지, 오목인지와 관련시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청동기 제작 기술은 주로 돌로 만든 용범(石范)을 이용하였고 점차 흙으로 만든 용범(土范)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다뉴경도 예외가 아니어서 조문경을 주조한 돌로 만든 용범이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서 모두 발견된다. 정문경의 용범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傳) 논산 정문경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를 보면, 이 거울이 사형(砂型)으로 주조된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정문경은 흙으로 만든 용범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정문경의 형식 분류와 변천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예산 동서리와 부여 구봉리의 정문경을 가장 빠른 형식으로 보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문제는 전 논산이나 화순 대곡리 정문경과 같은 최고 수준의 정문경을 어느 단계로 볼 것인가이다. 1990년대 이후의 연구 성과들은 대체로 전 논산 정문경을 늦은 형식으로 보고 있지만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의 전개 과정과 결부시켜 보면 이러한 형식의 정문경이 이른 시기일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러한 최고 수준의 정문경을 늦은 시기로 보기 시작한 것은 일본학계인데, 그 이유는 야요이 문화(彌生文化)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즉, 야요이 문화는 북부 규슈(北部九州) 지역에서 긴키(近畿)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므로 북부 규슈 지역에서 출토된 정문경의 형식을 긴키 지역 출토품보다 이른 형식으로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긴키 지역에서 출토된 오아가타(大縣) 정문경이나 나가라(名柄) 정문경이 늦은 형식이 되며, 이와 유사한 전 논산이나 화순 대곡리 정문경도 늦은 형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과정과 잘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향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정문경은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에서 발생한 특징적인 거울이기 때문에 세형동검 문화의 분포권, 즉 청천강 이남의 한반도와 세형동검 문화가 파급된 일본 열도에서 출토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정문경이 출토된 중요한 유적으로는 예산 동서리, 부여 구봉리, 전 논산, 화순 대곡리, 대동 반천리, 신천 용산리, 횡성 강림리, 양양 정암리, 아산 궁평리, 논산 원북리, 전주 효자동, 완주 갈동, 함평 초포리, 화순 백암리, 함흥 이화동, 봉산 송산리 솔뫼골, 장수 남양리, 경주 조양동, 사천 월성리 유적 등이 있다. 정문경의 경면 형태는 볼록한 것, 평면인 것, 오목한 것으로 구분된다. 뒷면의 문양은 기본적으로 모두 태양문(太陽文)(햇살무늬)이다. 뒷면 중앙에서 약간 위쪽으로 치우쳐 꼭지(瘤)가 2개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래쪽에 하나 더 추가되어 3개인 것도 있다. 주연부는 모두 반원형(半球緣)이다. 배면 문양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크게 내구와 외구로 구분되는 2구식과 내구, 중구, 외구로 구분되는 3구식이 있다. 문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햇살이 비치는 모양의 대향삼각문(對向三角文)이 베풀어져 있는 외구이다. 외구문양은 사선으로 가득 채워진 것, 한쪽은 사선이고 다른 한쪽은 평행선으로 가득 채워진 것, 한쪽은 사선이나 평행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다른 한쪽은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꼭지가 2개인 정문경의 문양은 외구가 사선, 또는 사선과 평행선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꼭지가 3개인 것은 한쪽에는 사선이나 평행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다른 한쪽은 빈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정문경의 크기는 지름 8~22㎝인데, 8~11㎝의 소형, 12~15㎝의 중·소형, 15~18㎝의 중대형, 19~22㎝의 대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외구가 사선으로 가득 채워진 정문경은 대형, 중형, 소형이 모두 있지만 외구 한쪽이 평행선인 정문경은 중형과 소형만 있고, 외구 한쪽이 빈 공간인 정문경은 중·소형과 소형만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외구의 문양 구성은 뒷면의 꼭지 수량뿐 아니라 거울의 크기와도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정문경은 일본 열도에서도 지금까지 11개 유적에서 12점이 출토되었다. 북부 규슈 지역 및 그와 인접한 야마구치(山口) 현에서 9점이 출토되었으며, 긴키 지역에서 2점, 주부(中部) 지역에서 1점이 확인되었다. 일본 열도에서 출토된 정문경은 모두 오목경이며 철기가 공반되지 않고 있다. 또한 전체적인 크기와 문양 구성이 한반도에서 출토된 정문경과 동일하다. 예를 들면 꼭지가 2개인 정문경은 외구가 사선으로 가득 채워지거나 한쪽은 평행선을 가득 채운 것이 대부분이고 꼭지가 3개인 것은 한쪽은 사선이나 평행선으로 채우고 다른 한쪽은빈 공 간으로 남아 있는 것과 함께 한쪽에는 사선을, 다른 한쪽에는 평행선을 채운 것도 있다. 또한 정문경의 크기, 크기와 문양과의 관계도 한반도 출토품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 열도에서 발견된 정문경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유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정문경은 동서리 유적에서 조문경과 함께 출토되기 시작하며 구봉리 유적에서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로 보아 정문경이 등장하는 시기는 기원전 3세기 전엽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문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는 이보다 조금 늦은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이며 기원전 2세기까지 이러한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후반부터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며 기원전 1세기에 들어서면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되었다. 즉, 기원전 1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는 경주 조양동 5호묘의 다뉴경은 문양이 사라졌다. 따라서 정문경은 한반도 중서부 지역의 세형동검 문화에서 처음 등장하여 주변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2세기 초에는 일본 열도에까지 파급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에 이르러 한경(漢鏡)이 보급되면서 사라지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문경은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과정과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한반도를 넘어 일본 열도까지 파급되었기 때문에 일본 열도 야요이시대의 청동기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해서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반도는 물론 일본 열도까지 분포하고 있는 정문경은 한국의 세형동검 문화가 일본 열도에 파급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세형동검 문화가 일본 열도에 정착한 이후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상호 관계와 교류 양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조진선)
참고문헌 多?細文鏡の型式分類と編年(宮里修, 考古學雜誌92卷1號, 2008), 다뉴경 형식의 변천과 분포(이청규, 한국상고사학보 67, 한국상고사학회, 2010), 한반도 삼한·삼국 시대 동경의 고고학적 연구(이양수,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多?精文鏡を通して見た細形銅劍文化期の韓半島と日本列島の交流(趙鎭先, 古文化談叢 71, 九州古文化硏究會, 2014)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유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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