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위세품(威勢品)
설명 위세품은 구미권에서 사용하는 ‘Prestige goods’를 번역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위신재(威信財)로 부르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위세품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위세품은 물질적인 생존에는 필요하지 않지만 사회관계의 유지에는 불가결한 생산물이다. 특정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 한정된 소재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고 소재의 다수가 희소성, 내구성 그리고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당사자 사이에만 거래되어 일반인이 입수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위세품은 일상 용품에 비해 그것에 접근하거나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제한되므로 상대적인 희소성이 높다. 따라서 위세품은 그것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정치적·사회적 격차가 따르는, 계층적인 상하 관계를 사회적으로 맺게 하는 물품, 혹은 실체적이지 않지만 그러한 교환 가치를 가지게 된다. 물품의 교환 가치 속에 위신과 권위가 표상되어 있어 그것이 당사자 간의 사회적 관계를 규정한다. 위세품은 사치품과는 달리 물신적(物神的)인 성격을 가진 물품이다. 위세품에는 상대 서열이 있어 그것으로 표상되는 위신이 소유자에게 귀속되어 계층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교역이나 생산을 통하여 집적한 위세품은 최고 권력자가 관리하였고 이러한 물품은 재분배 또는 사여라는 방식으로 그 사회의 지배층에게 공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위세품의 교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다. 위세품은 위세품 질서가 형성된 이후 그것이 흐트러지면서 새로운 위세품이 등장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서양에서는 위세품이 원래 국가 성립 전 단계의 복합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또 발전하였는가를 논할 때 활용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주로 국가 성립 이후의 고분 부장품을 중심으로 지역 지배 과정 등 정치적인 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개념 등으로 확대하여 사용되고 있다. 위세품에는 두 종류가 있다. 우선 실제 생활에 필요한 생산 도구 및 생산 자원, 실제 전투에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무기 및 마구 등은 일상품이 라고 할 수 있으나 철제 농공구, 철정(鐵鋌) 등 철제품은 물자의 장악 및 유통 등과 관련된 역할을 표현하는 부장품으로, 무기류나 마구류는 무력이나 군사력을 표상하는 부장품으로서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즉, 일상품과 위신 및 의장품(儀仗品)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데, 실제로 사용되던 것이 무덤에 부장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일상품이지만 실제로 사용되지 않고 부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지역 집단 안이나 지역 집단 사이 등에서 사회적인 관계를 표상하고자 한 것으로 보아서 넓은 의미의 위세품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따로 구분할 경우 일상품형 위세품으로 부를 수 있겠다. 다음으로 실용성에서 벗어나 정치·사회적 관계를 주로 표현할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복식(服飾)을 구성하는주요 장신구와 장식 대도 등이 있다. 시각적 효과가 강한 이러한 금·은제 위세품은 기본적으로 특정 착장자를 위해 제작된 것이며 그 개인에게만 위세가 배타적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 물품으로서 착장자의 신분을 상시적으로 나타냄과 동시에 신분층(지배 계층) 내에서의 위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준다. 한편 중앙 왕권과 지역 집단이 우열적인 관계에 있지만 완전한 지배-피지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단계에 양자의 정치·사회적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사여(賜與)의 객체인 피장자가 착장하여 위세를 드러내던 물건이므로 착장형 위세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 시대의 대표적인 착장품으로는 관, 대금구, 금동 식리 및 장식 대도 등이 있다. 대부분 피장자의 신분이나 지위와 관련된 복식을 구성하는 물품이다. 재질이나 의장 등을 달리하여 위계를 표현하지만 관등제(官等制)의 정비에 따른 의관제(衣冠制)를 그대로 표상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백제의 경우 웅진기까지의 관식(冠飾), 장식 대도 등은 신분을 표상하는 성격이 강하지만 소유자가 극히 제한적이었고, 중앙의 지배층과 지방의 유력자 사이의 구별이 현저하지 않았으며, 제도화된 틀 안에서 제작이나 배포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위 세품에 포함할 수 있겠다. 한편 위세품에는 중앙의 왕실 공방에서 제작한 것 이외에도 장거리 항해 등 입수에 어려움이 있는 외래 물품이 포함된다. 중국 거울 등 주로 외래 기원의 이러한 물건은 보유에 의미가 있는 보유형 위세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반도에는 보통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백제 고분에 많이 부장된 중국 자기 등을 들 수 있다. 4세기 이전에 주로 활용되었다. 위세품은 착장자 개인 간의 우열이 분명하게 표현된다는 점에서 지배 계층 내의 분화가 심화되는 과정을 살피는 데 유용하다. 한편 위세품은 정치적 동맹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 데 사용된 비실용적인 물건으로 사여의 주체가 지배력을 확대하면서 특정 지역에 대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하위 집단을 통제하기 위한방편으로 지방 토착 세력을 사여의 객체로 삼아 중앙에서 만들어 분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국가 형성기의 위세품은 중앙 권력의 지방 지배력 확산 정도,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 또는 지방 권력 간의 정치적 관계를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사여된 위세품은 체제의 안정과 지방 지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것이 체제의 유지에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었다. 한반도 원삼국 시대의 삼한은 외래의 기성품(旣成品)을 위세품으로 활용하였는데, 중국 혹은 낙랑에서는 동경·동전·허리띠 장식·금박 유리구슬, 중국 동북 지역에서는 청동 솥(銅?), 왜에서 중광형(中廣形) 동모 등 장식용 청동기류·심해산(深海産) 조개 장식 등이 교류를 통해 들어왔다. 백제의 경우 금공품과 외래 물품을 위세품으로 활용하였다. 처음에는 중국 자기와 진식 대금구(晉式帶金具)가 사용되었다. 4세기 후엽부터 본격적으로 자체 생산한 금공품이 나타나는데 금동관, 금동 식리, 장식 대도 등이 있다. 금동관과 금동 식리는 백제 양식을 이룰 정도로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백제의 영역에 편제되어 가는 지역 수장에게 하사되었다. 영역의 확장에 따라 사여의 대상 지역이 점진적으로 남쪽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위세품은 백제의 영역 확장만이 아니라 인접한 정치체인 가야와 왜의 지역 세력에게도 나누어 주어 정치적인 성격 이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입수한 중국 자기 등은 주로 한성기에 지방의 수장에게 사여되었다. 한편 횡혈식석실이 보편화되어 고분에 부장을 거의 하지 않는 단계에 나타나는 은제 관식, 대금구 등은 위세품과 성격을 조금 달리 한다. 백제의 경우 6세기 중엽 이후 신분 질서가 정비되어 관등(官等)이 체계화된 이후 의관제와 관련되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물품은 따로 신분 표상품(身分表象品)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신라의 경우 본격적인 금공품이 등장하기 이전에 왜에서 경옥(硬玉) 원석을 수입한 후 경옥제 곡옥으로 가공하여 재래의 핵심 위세품이었던 수정제 곡옥을 대체하는 위세품으로 쓰기도 하였다. 4세기 후엽부터 5세기라는 한정된 시기에 중앙 권력인 사로의 대표적 착장형 금공품인 관(出字形), 대금구, 장식 대도 등이 낙동강 이동(以東) 지방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고총이 집단적으로 축조되는 것과 연관되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낙동강 이동 양식 토기의 통일성 강화와도 연동된다. 신라의 위세품은 경주 내부, 경주와 지방 사이에서 재질 등에 차이를 두어 신분제에 기반한 위계를 보여 준다. 경주와 동일한 신분제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던 다른 지역들의 경우 경주 지역의 복식 제도가 준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위세품은 신라의 지역적 확산에 따른 사여품의 성격도 가진다. 위세품 사여를 통한 지배형태는 현지 세력을 해체시키지 않고 그들을 이용하여 지방 통치를 도모하는 것이다. 통제와 결속의 상징적 수단으로 관·허리띠 장식·귀걸이 등 복식을 사여하였으며, 철 생산 및 무구류 소유와 같은 생산 기반 일부 및 군사적 기반은 직접 통제하였다. 이사금(尼師今) 시기의 자율성이 강한 지배와 중고기(中古期) 이후의 영역적 지배를 이어주는 과도적인 성격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라에서 각 지방에 출현하 는 대형 무덤 중 금동관, 허리띠 장식, 귀걸이가 출토되는 분묘는 5세기 중엽~6세기 초엽에 집중된다. 그러다가 지증왕 6년(505년)의 주군제(州郡制) 실시로 지방관의 파견과 지방에 대한 영역적 지배가 관철된다. 가야의 경우 금관가야에서는 중국, 북방 및 왜 등에서 입수된 진식 대금구, 청동 그릇·투구류·마구류, 파형동기(巴形銅器)·통형동기(筒形銅器)·옥류·석제품 등이 위세품으로 사용되었다. 5세기 이후 대가야로 세력의 중심이 이동된 이후에는 용봉문 환두대도가 주요한 위세품으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대가야 금공품은 고령과 합천에 집중되어있고, 관·대금구·식리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금공품을 사여하여 각 지역 세력을 지방 지배 체제에 편입시키고 그들을 매개로 국가 권력을 관철하는 지배의 방식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은 되지만 신라처럼 정형화되지는 않았다. 이것은 대가야 왕권의 한계이다. 이처럼 신라, 가야 및 백제에서는 4세기 후엽을 기준으로 이전에는 보유형이면서 외래 기원의 위세품이 주로 사용된 것에 비해 그 이후에는 복식을 구성하는 주요금공품인 착장형 위세품을 각 왕권에서 생산하여 사여하였다. 일본의 고훈(古墳) 시대에도 동경(銅鏡), 벽옥제 완식(碧玉製腕飾), 장식 대도 등 생활필수품이 아닌 것이 유통되어 기나이(畿內) 지방의 중앙 권력이 각지 수장의 정치적 지위를 보증해 주는 증표로 사용되었는데, 필수품과 이러한 위세품의 유통 장악이 정치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위세품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고훈 시대 전기인 3세기 중엽~4세기 대에는 삼각연신수경(三角緣神獸鏡)을 비롯한 동경, 소환두대도(素環頭大刀) 등 철제 무기류, 각종 완륜형 석제품(腕輪形石製品)이, 중기인 5세기에는 철제 갑주류鐵製甲?類, 화문대신수경畵文帶神獸鏡 등 동형경군同型鏡群, 명문 있는 철검·철도 등이, 후기인 6세기 이후에는 장식 대도와 금동제 마구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열도 규모에서 광역적으로 위세품 시스템이 성립한 것은 고훈 시대 초두로 , 대형 전방후원분을 중심으로 한 장송 의례의 창출과 연동하여급속히 진행되었다. 고훈 시대 전·중기의 위세품 시스템은 야마토大和 왕권이 위세품의 입수·분배의 센터로서기능하는 가운데 각지 수장층의 죽음 및 상위층의 세대교체를 계기로 한, 위세품의 입수를 둘러싼 각지의 상위층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경합 관계로서 진행된 과정이었다. 고훈 시대 후기에 이르러 친족 관계의 변화 등 여러 가지 변화와 연동하여 실질적인중앙 집권적 정치 지배 체제의 기반이 정비되어 갔다. 위세품 생산은 왕권의 생성·유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세계 보편적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왕권이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면 이러한 위세품 생산 조직은재분배를 목적으로 새롭게 창설된 조직으로 발전 혹은통합되어 버린다. 김낙중
참고문헌 威信財システムの成立·?容とアイデンティティ(?田淳一?, 東アジアの古代?家論, すいれん?, 2006), 신라고고학연구(이희준, 사회평론, 2007), 장신구 사여체제로 본 백제의 지방지배(이한상,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영산강유역 고분 연구(김낙중, 학연문화사, 2009)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유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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