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용어명 | 용범(鎔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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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 쇠붙이(金屬)를 녹여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만들려는 물건의 모양대로 속이 비어 있는 틀이 필요한데, 용범(鎔范)(거푸집)은 이 틀을 일컫는 말이다. 주형(鑄型)·형(型)·형틀이라고도 한다. 용범의 소재는 크게 돌(石范)과 흙(土范)으로 대별할 수 있다. 중국의 중원 지역에서는 이리두(二里頭)나 은허(殷墟)와 같은 상 대(商代)의 유적은 물론 서주(西周)와 동주(東周) 시대에도 주로 흙으로 만든 용범으로 청동기를 주조하였다. 그러나 중국 동북 지역부터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는 비파형 동검 문화권에서는 돌로 만든 용범으로 청동기를 주조하였다. 이러한 청동기주조 기술은 세형동검 문화에서도 지속되지만 전(傳) 논산 출토 정문경(精文鏡)(고운무늬거울)이 사형(砂型)으로 주조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흙으로 만든 용범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 야요이 문화(彌生文化)의 청동기도 대부분 돌로 만든 용범으로 주조하였다. 돌로 만든 용범의 재질은 대부분 활석(滑石)이며, 편암(片巖)이나 사암(砂巖), 각섬석암(角閃石巖)으로 보고된 사례도 있다. 비파형 동검 문화의 용범들은 중국 동북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출토되고 있다. 서구대대{시거우다뒤이(西溝大隊)}와 산만자{산완쯔(山灣子)}, 탑만촌{타완춘(塔灣村)} 등에서는 비파형 동검의 용범이 출토되었으며, 강상{강상(崗上)}, 이도하자{얼다오허쯔(二道河子)} 등에서는 동부를 비롯한 공구류의 용범들이 확인되었다. 한반도에서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선형동부(扇形銅斧), 부채날도끼 용범이 출토되었다. 세형동검 문화기에는 10여 개소에서 다양한 종류의 용범이 확인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傳) 영암 출토 용범을 들 수 있는데, 두 짝 모두 남아있는 6조 12점과 한 짝만 남아 있는 1점, 한 짝의 파편만 남아 있는 1점으로 모두 8조 14점이다. 여기에는 세형동검(細形銅劍), 꺾창(銅戈), 창(銅?)과 각종 도끼(銅斧) 및 끌(銅鑿), 바늘(針), 낚싯바늘(釣針) 등 11종 26점의 주형(鑄型)이 새겨져있 다. 완주 갈동 1호 토광묘에서는 세형동검과 꺾창 주형이 새겨진 용범 1쌍이 토광의 단벽 쪽에 부장된 채 출토되었다. 용범은 청동기가 현지에서 제작되었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중국 동북 지역에서는 비파형동검 문화 단계부터 청동기가 활발하게 주조되었으며, 한반도에서는 비파형 동검 문화 단계부터 청동기가 주조되기 시작해 세형동검 문화 단계에 이르면 전국 각지에서 청동기가 주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조진선) |
| 참고문헌 | 한국 선사시대 청동기 제작과 거푸집(이건무,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지 2,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2005), 전 영암용범의 연대와 출토지(조진선, 호남고고학보 25, 호남고고학회, 2007),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거푸집과 청동기(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2011) |
| 구분 | 용어 |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유물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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