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용어명 | 곡옥(曲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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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 곡옥은 곱은옥 혹은 구옥(勾玉)으로도 불리며 구부러진 모양의 옥으로 한쪽 끝에 매달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한반도에서 곡옥은 청동기 시대부터 확인된다. 주로 천하석(天河石)으로 만들어졌다. 천하석은 유리질의 광택이 있고 주로 녹색을 띠지만 짙은 정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벽옥제의 관옥과 함께 목걸이, 가슴 장식, 귀걸이, 머리 장식 등에 사용되었다. 출토 위치로 보아 곡옥 2점이 세트를 이루는 경우는 귀걸이(耳飾), 곡옥 1점이나 다수의 관옥은 목걸이(頸飾)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처음에는 형태가 정형성을 띠지 않아 한쪽 측면 중앙에 ‘V’자형을 마련한 반월형과 한쪽 측면이 만곡한 초승달형은 시원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곡옥형 옥은 주로 송국리문화 단계에 유행하였다. 세형동검을 비롯한 각종의 청동기와 세문경이 공반되는 시기에는 부여 연화리 출토품처럼 가운데에 깊고 큰 홈이 있는 반월형 곡옥이 함께 나온다. 이후 천하석제 곡옥은 나오지 않고 원삼국 시대가 되면 수정, 호박, 마노, 유리 등으로 재료가 변화되고 형태도 ‘C’자형으로 정형화된다. 한편 흙이나 돌로 곡옥이나 환옥을 모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조품이 만들어진 것은 옥이 귀하여 돌이나 흙으로 대신 만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지만 복골, 비실용적인 소형 토기로 미루어 제사 공헌품으로 사용하기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 시대 옥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것은 비취 곡옥의 출현이다. 비취는 경도가 6~7, 비중이 3.30~3.36인 휘석(輝石)의 일종으로 경옥(硬玉)을 말한다. 한반도에서 비취 곡옥은 부산 복천동 80호분 출토품처럼 300년 전후처음으로 출현하기 시작하여 복천동 38호분, 4세기 전반의 김해 양동리 304호분에서도 발견되었다. 이 시기의 비취 곡옥은 한반도 내에서 산지가 확인되지 않는 점, 재질과 제작 기법이 일본 열도 출토품과 동일한 점, 야요이(彌生) 시대 전기 말부터 출현하여 고훈(古墳) 시대 전기에도일본 열도 전역에 분포하는 점, 비취 곡옥이 출토된 복천동 38 호분에서 마노제 화살촉, 김해 대성동 18호분에서녹색 응회암제 방추차형 석제품과 벽옥제 관옥과 같은 일본 열도산 문물이 공반되는 점 등으로 보아 일본 열도와의 교류를 통해 가야 지역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5세기 이후의 양상을 고려할 때 경옥제 곡옥을 사용한 위세품 체계의 중심지를 신라로 보기도 한다. 5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는 신라·가야·백제 지역에서 비취 곡옥이 대량으로 출현한다. 특히 신라의 금관·허리띠·목걸이·가슴걸이·귀걸이 등 장신구에 장식으로 부착되는데 왕릉급 무덤인 경주 황남대총 북분·천마총·금관총·서봉총 출토 금관에 최상급의 일본 열도산 비취 곡옥이 수십 점씩 달개 장식으로 부착되는 등 대량 부장되는 특징을 보인다. 천마총 금관에는 관테와 입식에 모두 56점의 비취 곡옥이 달려 있는데, 곡옥은 ‘생명·탄생’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열도의 비취 곡옥은 고훈 시대 전기 말에서 중기 초에 이전 시기의 투명하고 선명한 녹색을 띠는 양질의 것에서 흰색의 투명도가 낮은 것으로 변한다. 이러한 양상은 신라 지역에서도 확인되는데, 황남대총 북분에서는 투명도가 높은 비취가 사용되다가 점차 불투명한 것으로 바뀌다가 가장 늦은 시기의 금관총에서는 흰색의 불투명 비취가 사용되었다. 백제 지역에서도 서남부의 해안이나 도서 지역에서 발견된 왜계(倭系) 고분이나 이의 영향을 받아 축조된 5세기 중엽 이후의 고분에서 비취 곡옥이 발견되고 있다. 6세기가 되면 백제 지역에서도 비취 곡옥의 사용이 증가하기 시작하는데 공주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송산리 고분군, 나주 신촌리 9호분·대안리 9호분 등에서 다수 확인되었다. 삼국 시대의 왕릉급 대형 고분에서는 비취·수정·호박 등으로 만든 곡옥의 머리에 금모 장식(金帽裝飾)을 씌운 금모 곡옥(金帽曲玉)이 출토된다. 황남대총 남분과 천마총의 금모 곡옥은 금허리띠의 띠드리개(腰佩) 끝을 장식하고 있으며, 금관총이나 금령총에서는 관식을 장식하고, 경주황오동 5호분이나 무령왕릉에서는 금귀걸이의 드림 장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 또한 무령왕릉과 부여 왕흥사지목탑지에서는 곡옥과 분리되어 있는 금모 장식이 여러 점 출토되었는데, 모자형, 탄환형, 관형(管形) 등 모양과 크기가 모두 달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모 장식은 얇은 금판만으로 만든 단순한 것과 금판의 표면에 누금 기법으로 금선과 금알갱이를 하나하나 붙여 기하학문·능형문·원형문 등을 표현하고 적색이나 녹색의 안료를 감입하여 장식한 화려한 것이 있다.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일본 열도와의 교류 관계를 보여 주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데 그중에 모자곡옥(母子曲玉)도 있다. 모자곡옥은 옥·활석을 반월형으로 갈아 만든 곡옥의 일종으로 크기는 대략 10㎝ 내외이다. 구부러진 몸체의 등과 배 또는 옆구리에 곡옥을 축소한 것 같은 작은 자옥(子玉)이 여러 개 붙어 있는 형태이며 한쪽 끝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끈을 통과시켜 어딘가에 매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옥으로도 제작되나 대부분경도가 낮아 가공하기 쉬운 활석(滑石)이나 납석(蠟石)으로만들어졌다. 모자곡옥은 일본에서 고훈 시대인 5~6세기경에 크게 성행하였는데, 전국에 걸쳐 20개소에서 250여개체가 출토되었다. 대부분 단독으로 출토되거나 발견되었다. 때로는 제사용 공헌물로 고분, 주거지, 제사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용도는 패식용(佩飾用)보다는 특수한 기원(祈願)을 위한 제사 시의 공양물 또는 부장품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자라는 형태가 상징하듯이 다산·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활석제 모자곡옥이 8점 알려져 있는데 주로 영남과 호남 등 남부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 부여 군수리, 순천 월산리, 광양 용강리 4호 주거지, 신안 압해도, 고흥 방사 유적 39-4호 주거지, 울진 덕천리 24호 횡구식석실묘 등에서 발견 혹은 출토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활석제 모자곡옥은 출토 사례가 드문 반면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많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우리나라에서도 출토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활석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암석이라는 점에서 활석제 모자곡옥 자체는 일본에서 창안된 것이지만 일부는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김낙중) |
| 참고문헌 | 선사·고대 옥의 세계(복천박물관, 2013) |
| 구분 | 용어 |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유물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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