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용어명 | 중도동 고인돌(春川 中島洞 支石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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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 강원도 춘천시 중도동에 위치한다. 1982년 강원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것으로 4기의 고인돌〔支石墓〕을 발굴 조사하여 1기의 파괴 고인돌이 수습·확인되었다. 파괴된 고인돌은 중도의 서북측 가장자리에 해당한다. 발굴된 4기 가운데 1호는 뚜껑돌〔上石〕 일부를 ‘ㄱ’자 모양으로 남긴 것으로 장벽석 2매와 단벽석 2매로 된 돌널〔石棺〕이 위치하는 탁자식(卓子式)의 구조를 지닌 것이다. 뚜껑돌의 원래 크기는 250×210×450㎝이다. 돌널 바닥은 서측벽에 붙어서 얇은 판돌〔板石〕 2매를 깔고 그 위에 잔자갈을 깔았고 동서 950㎝, 남북 800㎝에 달하는 넓은 타원형의 적석(積石)을 마련하였다. 돌널 내부에서는 13점의 대롱옥〔管玉〕과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편 2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적석 밑에서 1점의 덧띠토기〔粘土帶土器〕 구연부편이 발견되었다. 2호는 1호와 적석의 가장자리를 맞대고 있다. 뚜껑돌은 크기가 90×312×220㎝으로 대형 괴석(塊石)이다. 적석은 북동-남서 방향의 타원형으로 장축은 880㎝, 단축은 660㎝이다. 적석의 상부와 틈새에서 민무늬토기〔無文土器〕편, 돌검〔石劍〕편, 돌끌〔石鑿〕편이 출토되었다. 뚜껑돌 밑에는 잔자갈만이 깔려있었고, 유물은 1호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한 대롱옥 3점이 발견되었다. 3호는 중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 전체적인 구조는 1호와 같으며 뚜껑돌의 형태는 말각삼각형이고 크기는 270×480㎝이다. 적석은 동서로 장타원형으로서 640×440㎝의 크기이다. 4매 판돌로 된 돌널 내부 바닥에는 잔자갈이 깔려있었다. 1호와 마찬가지로 양 장벽석의 뿌리는 적석 하단보다 더 깊고 뿌리 옆에 몇 개의 돌을 괴고 있다. 돌널 내부에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뼈의 잔재가 확인되었고 적석 사이에서는 민무늬토기편, 붉은간토기편, 돌도끼〔石斧〕편이 발견되었다. 이 밖에도 중도에서는 화장(火葬)된 소아의 뼈가 묻힌 소형 고인돌 1기도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러한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나머지 고인돌의 공통성은 광역 의 적석부를 조성한 정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광역의 적석을 조성한 소위 적석부가고인돌(積石附加支石墓) 유형은 중도의 상류인 천전리에서도 확인되는데, 북한강 유역의 독자적인 유형으로 설정이 가능하다. (노혁진) |
| 참고문헌 | 중도 지석묘 발굴보고(중도선사유적발굴조사단, 중도발굴보고서, 1982), 중도 진전보고 4(국립중앙박물관, 1983), 중도 고인돌 발굴조사보고(강원대학교박물관, 1984) |
| 구분 | 용어 |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청동기시대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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