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상무룡리유적(楊口 上舞龍里遺蹟 / Sangmuryong-ri Site)
설명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에 위치한다. 화천댐이 생기기 전에는 허수리로 불렸다. 원래는 파로호에 수몰되었던 지역인데 1986년 평화의 댐 공사로 파로호의 물을 빼내면서 바닥이 드러나게 되었다. 1987년 파로호 퇴수 지역 유적 조사로 찾게 된 유적이다. 발굴조사는 1986년에 1차, 1988년에2차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차 발굴조사에는 경희대학교 박물관이 참여하여 상무룡리 Ⅱ지역을 조사하였다. 상무룡리유적은 수입천과 서천이 만나는 지점에 발달한 하안단구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에 15곳 이상의구석기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발굴이 여러 지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층위도 조금씩 다른데, 강원대학교가 발굴한 1지구의 층위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겉흙층(Ⅰ층) - 찰흙층(Ⅱ층) - 모래질찰흙층(Ⅲ층)- 자갈층(Ⅳ층) - 기반암 풍화층(Ⅴ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찰흙층에 1유물층이 있고, 자갈층과 모래질찰흙층 사이에 2유물층이 존재한다. 찰흙층과 모래질찰흙층의 경계에는 토양쐐기구조가 관찰된다. 또한 자갈층과 모래질찰흙층에는 망간이 집적되어 있어 찰흙층(Ⅱ층)과 구분될 뿐만 아니라 퇴적 환경이 따뜻하고 습했던 기후 조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경희대학교 발굴 지역의 층위는 겉흙층(1층) - 미갈색 진흙층(2층) - 갈색 진흙층(3층) - 검붉고 성근 진흙층(4층) - 흑갈색 진흙층(5층) - 암반풍화토(6층)로 구분되었다. 갈색 진흙층(3층)에서는 흑요석 석기가 나오고, 검붉고 성근 진흙층(4층)에서는 석영제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강원대학교에서 발굴한 석기는 모두 2,718점(1유물층 868점, 2유물층 1,850점)이며, 여기에 지표 채집한 3,694점의 석기를 더하면 6,412점이다. 대부분의 유물은 석영으로 만들어졌으며(97~99%), 대형의 몸돌석기인 찍개, 여러면석기, 주먹대패, 주먹찌르개, 주먹도끼 등의 석기가 우세하다. 그 외에 반암, 화강암, 사암, 흑요석 등으로 만든 돌날몸돌 및 돌날, 돌날을 소재로 잔손질한 석기, 좀돌날몸돌 , 뚜르개, 찌르개 등의 석기 구성은 상부에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층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경희대학교에서 발굴한 지역에서는 흑요석으로 만든 세석기가 다량 출토되어 주목된다. 좀돌날, 새기개, 밀개, 긁개 등이 집중 분포되어 있다. 특히 보고서에서 새기개로 분류되었던 석기가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 중심부에서만 발견된다고 알려진 히로사토형 좀돌날몸돌(14,000 BP 전후한 시기)과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매우 독보적인 유적으로 평가된다. 유적의 연대에 대하여 몇 가지 의견이 제시되어 있는데, 먼저 최복규는 석기의 형태와 지층에 따라 1유물층은 후기 구석기시대(5만~2만 년 전), 2유물층은 중기 구석기시대 또는그보다 이른 시기(12만~7만 년 전)로 보았다. 손보기·한창균은 2유물층이 마지막 간빙기 초 즉 125,000 BP이며, 1유물층은 마지막 빙하기 초 또는 18,000 BP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선복은 대체로 6만~3만 년 전 사이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연대 폭에 있어 다소 차이는 있으나 중기 구석기시대(강원대 발굴 지점)와 후기 구석기시대 최말기 단계(경희대 발굴 지점)의 문화적인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는 대규모 유적이라는 점에는 견해차가 없다. (최복규)
참고문헌 상무룡리-파로호퇴수지역발굴조사보고-(강원대학교박물관, 1989)
구분 유적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구석기시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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