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용어명 | 목책(木柵) |
|---|---|
| 설명 | 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이다. 문헌상으로『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부여조(夫餘條)에“성책(城柵)은 둥글게 만들어서 마치 감옥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어 부여(夫餘)에서 방어목적으로 목책을 시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송국리유적에서 확인된 목책은 우리나라 최고의 방어집락으로 청동기시대의 방형주거지를 보호할 목적으로 시설한 것이다. 이 목책시설은 현재 430m 정도 확인되었으나 전체 길이는 커다란 골짜기를 감싸며 설치하여 약2.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 목책(木柵)으로 둘러진 농경지를 기반으로 한 집락의 추정면적은 61ha에 이른다고 한다. 목책을 세우기 위한 기둥구멍[柱穴]은 형태에 따라 평면이 방형(方形) 또는 장방형(長方形)이면서 대형(大形)인 것과 원형(圓形) 또는 방형이면서 중형(中形)인 것, 그리고 평면이 원형 또는 방형이면서 소형(小形)인 것 등 3가지로 구분되며, 기둥과 기둥과의 간격은 지역에 따라 일정하지 않은데 대형의 기둥구멍이 있는 지역은 간격이 220∼240㎝로 넓은 편이며, 그 외 180㎝ 정도로 균일하게 배치된 경우와 간격이 130㎝ 정도로 비교적 조밀하게 배치된 예가 확인되었다. 부여계(夫餘系)인 백제에서도 목책에 관한 활용도가매우 활발하였음을 문헌 및 고고학 자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목책 관련 기사는 모두 30건으로 고구려 4건, 백제 21건, 신라 5건으로 백제가 전체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시대별로는 고구려는 모두 7세기 것이나 그중 2건은 목책인지 불확실하다. 백제는 3세기 이전이 8건이고 4∼7세기는 13건이다. 신라는 3세기 이전이 4건, 7세기가 1건이다. 이와 같이 사료만으로 본다면 삼국 중에서 백제는 목책을 가장 많이 응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몽촌토성, 대전 월평동유적, 보문산성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습지에 목책을 시설한 예가 많이 확인되고 있다.(심정보) |
| 참고문헌 | 송국리 V-목책(1)(김길식, 국립공주박물관, 1993) |
| 구분 | 용어 |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청동기시대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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