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돌널무덤(石棺墓)
설명 고인돌(支石墓)과 함께 청동기시대의 묘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지하에 1매 혹은 여러 매의 판돌(板石)로 돌상자처럼 널을 짠 무덤이다. ??석상분(石箱墳)?? 혹은 ??돌널무덤(石棺墓)??이라고도 한다. 한편 그 자체로 독립된 무덤을 구성하는 단순형 이외에 고인돌 또는 돌무지무덤(積石塚)의 하부구조를 구성하는 것을 결합형이라고 하여 돌널무덤 범주에 포함시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고인돌의 하부구조가 되는 결합형을 돌널무덤의 범주에 넣기는 곤란한 반면, 적석묘역(積石墓域)을 한 결합형은 일단 돌널무덤의 형식에 넣어도 무리가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고인돌도 돌널무덤과 동일한 구역에서 공존하는 경우가 있어 서로 완전히 관계없는 별개의 무덤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돌널무덤과 고인돌의 관계에 대해서는 우선 첫째로 전자가 점차 후자의 형식으로 발전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는 북한학자들이 북한의 침촌형(沈村型, 碁盤式)고인돌의 여러 하위 형식의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다. 지하의 돌널무덤이 점차 지상으로 노출되면서, 한편으로 덮개돌(上石)이 거대화되는 것이 묵방리형고인돌(墨房里型支石墓), 그리고 나아가 오덕형(五德型, 卓子式)의 지상형(地上形)고인돌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반도는 원래 고인돌 지역으로서 돌널무덤은 처음에 이질적 존재로 존재하다가, 기반식(南方式)이나 개석식(無支石式)고인돌의 출현과 함께, 분묘의 기본적인 구조가 된 것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인돌과 돌널무덤은 결국 주민들 자체의 차이가 아닌 빈부 또는 계급의 차이로 보고 있다. 이 돌널무덤에는 흔히 판돌 뿐 만 아니라, 괴석(塊石)이나 냇돌(川石)로 벽을 쌓은 돌덧널무덤도 함께 포함시키기도 하나, 구조의 차이가 있으므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널(棺)은 시체를 담는 궤이고, 덧널(槨)은 다시 널(棺)을 담는 외관(外棺)이다. 따라서 안치된 널이 내부에서 확인되어야 덧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무널(木棺)은 썩어 없어져 원래 덧널이면서 널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 다. 한편 널과 덧널을 판돌과 덩이돌이라는 석재를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판돌로 짰다고 해서 전부 널이거나, 덩이돌로 되었다해서 덧널이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판돌로 짠 매장구조물에서 실제로 널이 확인되는 예가 거의 없으므로, 일단 이를 돌널무덤이라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단순형의 돌널무덤을 평면구조만으로 살펴볼 때, 대체로 다음 4가지 형식이 있다. 첫째형은 한반도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돌널무덤이 이에 속하는데, 가장 안정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평남 북창 대평리(大坪里), 경남 진양 대평리(大坪里), 신촌리(新村里)의 돌널무덤이 대표적인 예이다. 둘째형은 전체모양이 사다리꼴로 앞서 형식의 돌널에 유물을 매납할 수 있는 전용의 부장칸이 추가된 것이다. 따라서 첫째형의 변형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남 판곡리(板谷里) 돌널무덤이 이에 속한다. 셋째형은 돌널의 짧은 벽이 외부에 축조된 형태로 평북 강계 풍룡동(豊龍洞)과 경남 고성(固城) 솔섬의 돌널무덤이 대표적이다. 이 형식은 돌널의 규모가 크고, 평면형태가 세장(細長)한 것이 특징이다. 넷째형은 네 벽의 접합부분이 상자와 같이 정확하게 짜 맞추어진 형식으로 부여 송국리(松菊里) 돌널무덤 등 수 매의 판돌형(板石型)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돌널무덤은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상류지방에서는 청동기시대 초기인 안드로노보(Andronovo, B.C. 약 1700~1200년경)에서 시작하여 카라숙(Karasuk, B.C. 약 1200~700년경)와 타가르(Tagar, B.C. 700~200년)기에 걸쳐 발견되고 있다. 시베리아 돌널무덤은 머리쪽이 넓고 발쪽이 좁아지는 두광족협식(頭廣足狹式)이 특징인데, 한반도 돌널무덤도 이를 따르고 있는 것이 많다. 단순형의 돌널무덤 중에서 각 1매의 판돌로 된 돌널무덤의 예로는 압록강 유역의 강계시 풍룡리 돌널무덤을 들 수 있는데, 머리 쪽의 너비가 다리쪽의 2배가 되는 전형적인 두광족협식이다. 부장품으로 청동단추와 시투안샨쯔식(西團山子式)의 검은 긴목항아리(長頸 壺)가 나왔다. 같은 강계시의 공귀리 돌널무덤은 수 매 판돌식으로 중심널(主棺) 옆에 작은 널을 잇대어 만들어 부모와 자식이 합장된 돌널무덤으로 추정된다. 두만강 지류의 延吉 小營子에서는 100여 기의 돌널무덤이 발굴되었다. 석회암층을 편평하게 판 다음, 장방형(長方形)으로 석회암 판돌을 세워 네 벽으로 하고 그 위에 여러 장의 판돌을 가지런히 덮은 형식이 많다. 그 중에는 부부합장이 여러 기 있다. 한반도로 내려오면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을 부장한 돌널무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금강유역의 충남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과 대동강 유역의 황해도 배천 대아리(大雅里) 돌널무덤이 있다.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은 암반을 파내고 수 매의 판돌로 짜 만든 것으로, 부장품은 전형적인 비파형동검과 간돌검(磨製石劍), 돌화살촉(石鏃) 그리고 붉은간토기(紅陶) 등이 출토되었다. 대아리 무덤은 1매의 판돌로 짠 돌널무덤으로, 비파형 후기단검, 청동화살촉 등이 부장되었다. 더 시기가 내려와 돌널무덤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이 부장된 예로 황해도 천곡리(泉谷里) 무덤이 있는데, 한벽의 일부를 잡석으로 보완하였다. 돌널무덤의 가장 늦은 형식으로는 고성 솔섬의 예가 있다. 이 돌널무덤은 각 1매의 판돌로 네 벽을 짜맞춘 것으로 부장품으로는 원삼국기(原三國期)에 속하는 회색 연질의 주머니호가 출토되었다. 결합형 돌널무덤으로서 적석묘역이 둘러져 있는 예는 요녕지방에서는 崗上 무덤과 樓上 무덤이 대표적이다. 강상(崗上) 무덤은 동~서 28m, 남~북 20m의 장방형 묘역 안에 23기의 무덤이 있는데, 가운데 무덤 1기는 주위에 다른 무덤과 달리 판돌로 정성들여 다듬은 판돌형 돌널무덤이었다. 이 무덤에서는 전형적인 비파형동검을 비롯하여 다량의 청동기가 나왔다. 로우상(樓上) 무덤은 동~서 30m, 남~북 24m로 모두 10여 기의 무덤이 있는데, 그중 중심에 있는 무덤 2기도 규모가 크고 판돌로 잘 다듬은 돌널무덤이었다. 부장품으로는 변형 비파형동검과 함께, 각종 무기, 마구류 (馬具類)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강원도 춘천 천전리(泉田里)에서 적석으로 둘러 쌓인 판돌식 돌널무덤이 확인된 바 있다.
참고문헌 韓國의 古墳(金元龍, 敎養國史叢書 2, 世宗大王記念事業會, 1974), 韓國 石棺墓의 硏究-東北亞 石棺墓文化의 傳統(李鍾宣, 韓國考古學報1, 韓國考古學會, 1976)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사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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