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신석기시대 주거지(新石器時代 住居址)
설명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주거지는 자연·지리적 조건에 따라 9개의 지역권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먼저 동북지역은 전기(서포항 Ⅰ·Ⅱ기)에 해당하는 주거지의 경우 대부분 원형이고, 중기(서포항 Ⅲ기)는 방형이 주류를 이루며, 후기(서포항 Ⅳ·Ⅴ기)에는 방형과 함께 장방형이 등장한다. 주거지의 규모는 이른 시기에는 대부분 4∼5m 내외로 중소형에 해당하나, 중기의 연변 흥성유적(8∼10m 내외)과 후기의 나선 서포항유적(5∼7m 내외), 연변 금곡유적(6m 내외)에서는 주거지의 평면형태 변화와 함께 대형화되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주거지의 내부시설 중 화덕자리는 서포항유적의 경우, 돌두름식[圍石式]과 구덩식[竪穴式]의 구조가 시기와 상관없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무산 범의구석유적의 경우 화덕자리가 확인된 모든 주거지에서 돌두름식 화덕자리만이 확인되며, 흥성과 금곡 유적에서는 구덩식의 화덕자리만이 존재하고 있어 유적 간에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다. 기둥구멍 배치는 기둥구멍이 확인된 전·중기의 유적에서는 대부분 벽가 혹은 원형 배열을 이루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후기의 범의구석유적에서는 주거지 내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정형성이 확인된다. 이와 같은 기둥구멍 배치는 지붕의 가구방식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발전된 형태의 지붕구조를 지녔을 것으로 판단된다. 출입구시설은 전기에 해당하는 서포항 3호주거지에서는 계단식의 구조가 확인되었으며, 중기의 흥성유적에서는 내부에 경사진 구조와 계단식으로 돌출된 구조, 후기의 금곡유적에서는 내부에 경사진 구조의 출입구시설이 확인되었다. 이 밖에 서포항유적의 8호와 18호 주거지에서 기둥을 받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석이 조사되었으며, 흥성유적의 87AF16호 주거지에서는 기둥구멍 안에 돌을 넣어 초석 역할을 한 구조가 확인되었다. 또한 금곡유적에서는 주거지 내부에 불씨를 저장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덩이들이 조사되었다고 하나, 그 용도는 정확하지 않다. 서북지역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주거지 유적 중 전·중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매우 소수에 불과하여 주거지의 변화양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비교적 다수가 조사되었는데,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 주를 이루며, 주거지의 규모는 4∼8m 내외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주거지 내부시설 중 화덕자리는 요녕 석불산유적에서는 돌두름식, 용연리와 반궁리, 요녕 후와(상층) 유적에서는 구덩식의 화덕자리만이 확인된다. 기둥구멍 배치는 중기의 후와(상층)유적에서 조사된 F10호와 F40호 주거지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정형성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기둥구멍 배치는 동북지역의 범의구석유적과 동일한 양상으로 동북지역과 서북지역의 주거지 간의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대동강·황해도지역의 전기에 해당하는 주거지는 대부분 원형과 방형의 평면형태를 띠는데, 온천 궁산유적에서는 원형, 봉산 지탑리와 마산리 유적의 경우에는 대부분 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중기에는 일부 원형과 방형이 존재하나 정형화된 장방형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청단 소정리유적에서 조사된 중기 주거지는 모두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돌출된 복도식의 출입구시설과 내부공간분할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후기의 주거지 역시 중기와 마찬가지로 장방형이 대부분인데, 중기의 장방형보다 규모가 일부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주거지 내부시설 중 화덕자리는 돌두름식과 구덩식의 구조가 시기와 유적간의 차이 없이 사용되고 있다. 화덕자리의 형태는 시기에 따른 변화양상이 보이는데, 전기에는 원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중기로 가면서 방형이 등장하고, 후기에 이르면 장방형으로의 변화양상이 보인다. 기둥구멍은 전기에는 일부 원형배열이 확인되며, 중기의 주거지에서는 4주식 기둥구멍 배치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후기의 주거지까지 이어진다. 출입구 시설은 일부 주거지에서만 확인되고 있는데, 전기에는 반원형으로 돌출된 구조이거나 내부에 계단형태를 띤다. 그러나 중·후기의 주거지에서는 주거지의 평면형태 변화와 함께 길게 돌출된 복도식의 구조를 띠고 있어 시기에 따른 출입구시설의 변화 가 보인다. 그 밖에 대동강·황해도지역 신석기시대 주거지의 특징은 내부에 토기를 거꾸로 박아 놓은 시설이 설치된 것인데, 궁산유적과 지탑리유적, 마산리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또한 대동강·황해도지역 중·후기 주거지의 특징 중 하나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이며, 주거지 내부를 분할하여 사용한 구조나 흔적이 평양 남경유적과 소정리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거지의 건축학적 측면에서 보아도 한 단계 발전된 것이다. 특히 장방형의 평면형태와 주거지 기둥배치에 따른 내부 공간분할흔적은 주거지의 지붕구조와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서 원추형이나 사각추형의 지붕구조에서 맞배지붕으로의 변화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중부 내륙지역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전기에는 원형과 방형이 대부분이며, 연천 삼거리유적의 경우 조사된 6기의 주거지가 모두 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에서는 원형은 감소하고 방형이 주류를 이룬다. 주거지의 규모는 시기와 관계없이 4∼6m 내외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주거지의 내부시설 중 화덕자리는 전기에 해당하는 서울 암사동과 삼거리 유적에서는 모두 돌두름식의 구조이며, 후기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유적에서는 구덩식의 구조를 띠고 있어 시기에 따른 화덕자리 구조에 변화가 나타난다. 그러나 후기의 남양주 호평동 지새울유적과 파주 당동리유적에서는 구덩식, 돌두름식, 돌무지식[集石式]의 각기 다른 구조를 가진 화덕자리가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전기의 주거지에서는 화덕자리가 주거지의 중앙에 위치하나, 후기에서는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확인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기둥구멍은 전기 유적인 암사동과 삼거리 유적에서 확인되듯 이른 시기의 주거지에서는 대부분 4주식의 기둥배치를 보이며, 후기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거나 불규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입구시설은 전기 유적에서 일부 반원형의 돌출된 형태와 내부에 계단 혹은 경사진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러한 반원형의 돌출된 출입구시설은 대동강·황해도지역의 전기에 해당하는 주거지에서도 확인되고 있 어 이른 시기의 신석기시대 주거지 출입구 형태의 하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밖에 암사동유적에서는 토기를 거꾸로 박아 만든 저장움이 확인되고 있어 주목되는데, 이러한 저장움 성격에 대해서는 낟알을 저장하거나, 도구를 저장하던 장소(지탑리유적 1·2호 주거지)로 보고 있다. 북·남한강유역의 신석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에 조사된 유적으로 대부분 중기 이후의 유적으로 판단된다. 이 지역의 주거지 유적은 대개 강가의 충적대지에 위치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동굴이나 바위그늘을 활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원형과 방형이 주류를 이루며, 규모는 한 변의 길이가 4∼5m 내외이다. 화덕자리는 돌두름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둥구멍은 대부분의 주거지에서 확인되지 않으나, 춘천 신매리와 정선 아우라지 유적의 주거지에서는 벽가 배열의 양상을 보이며, 영월 주천리유적 22호주거지에서는 4주식을 띠고 있어 특징적이다. 중부서해안지역의 전기에 해당하는 인천 운서동Ⅰ유적의 주거지는 대부분 방형의 형태를 띠며, 일부 장방형과 원형이 확인되고 있다. 주거지의 규모는 4∼6m로 중기의 주거지보다 상대적으로 큰 편에 속한다. 화덕자리는 구덩식으로 주거지의 중앙에 위치한다. 기둥구멍은 4주식이 기본 배치를 이루며, 일부 벽가 배열 양상도 관찰된다. 출입구시설이 확인된 주거지에서는 돌출구조를 띤다. 주거지 내부공간을 확장한 듯 한 단시설이 대부분의 주거지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구조로 중부서해안지역의 이른 시기, 혹은 운서동Ⅰ유적의 특징적인 양상으로 파악된다. 중기에 해당하는 주거지는 방형의 평면 형태에 4주식 혹은 4주식에 보조기둥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를 띠며, 화덕자리는 주거지 내부의 중앙에 아무런 시설도 하지 않은 구덩식이 설치되어 있다. 주거지의 규모도 3∼5m 내외로 대부분 중소형에 해당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타 지역의 주거지와 구분되는데, 중부서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적인 분포 양상을 보이고 있다. 후 기의 주거지는 앞 시기에 방형이 주류를 이루던 것과는 달리 방형·원형·장방형 등 다양한 형태를 띠며, 규모는 3∼5m 내외의 중소형과 6∼9m 내외의 중대형이 혼재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 화덕자리는 구덩식과 돌두름식이 모두 확인되나, 일부 구덩식과 돌두름식 화덕자리가 동시에 확인되는 주거지에서 구덩식이 돌두름식 구조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중부서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 주거지의 화덕자리는 구덩식에서 돌두름식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둥구멍 배치는 이른 시기의 주거지에서 정형화되어 있는 4주식이 지속적으로 확인되나, 불규칙하게 다수가 확인되거나 벽가 배열의 양상도 있어 다양한 패턴을 띠고 있다. 중부동해안지역의 전기에 해당하는 고성 문암리와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는 주거지의 평면형태가 대부분 원형과 방형이며, 중·후기의 주거지는 원형은 거의 사라지고 방형으로 정형화 되어가고 있다. 특히 후기에 해당하는 고성 철통리유적에서는 모두 방형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는데, 중부동해안지역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주거지 유적 중 유일하게 구릉지역에 위치하는 특징을 보인다. 주거지의 규모는 전기의 오산리 A·B지구유적과 문암리유적은 비교적 소형에 해당하여 지름 3∼4m 내외이나, 오산리 C지구유적에서는 주거지의 규모가 7m 내외로 기존에 확인된 주거지보다 크다. 중기의 주거지는 5∼6m 내외가 대부분이며, 후기에 이르면 주거지의 입지변화와 함께 규모도 다시 작아져 3∼4m 내외가 주류를 이룬다. 주거지 내부시설 중 화덕자리는 전기의 문암리와 오산리 유적은 모두 돌두름식 구조를 띠며, 주거지의 중앙에 원형·방형·장방형·오각형 등의 다양한 형태로 확인된다. 오산리 C지구유적에서는 장방형의 형태에 중간에 격벽시설이 갖추어진 화덕자리가 확인되어 특징적이다. 중기 유적들 역시 화덕자리는 대부분 돌두름식이나 양양 가평리와 지경리 일부 주거지(5·9호), 후기의 철통리유적에서는 구덩식의 구조가 확인되었다. 규모와 평면형태는 앞 시기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나 후기에 이르면 50 ㎝ 내외의 원형으로 주거지의 규모와 함께 화덕자리의 규모도 작아지는 양상이 관찰된다. 기둥구멍은 전기에 해당하는 유적 중에서는 오산리 A지구유적 2호주거지와 오산리 C지구유적 3호주거지에서만 확인되고 있는데, 벽가 배열을 이루고 있다. 중기 유적에서는 없는 것과 불규칙한 것이 대다수이며, 일부 벽가 배열이 확인된다. 그러나 후기의 철통리유적에서는 기본적으로 4주식의 기둥배치를 보이고 있어 특징적이다. 충청 내륙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주거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 주거지는 대부분 중기에 해당하는 유적들이며, 주거지의 구조와 입지 및 내부공간 활용 등에서 많은 공통점이 확인된다. 이 지역 주거지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7∼10m 내외로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규모가 큰 편이다. 또한 내부시설 중 화덕자리는 구덩식이며, 주거지의 중앙(생활공간)에 위치한다. 이 밖에 주거지의 길이방향이 등고선의 흐름과 나란하며, 돌출된 출입구시설, 내부공간분할 등의 특징과 구릉상에 1기 혹은 2기만이 존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의 주거지들은 '대천리식주거지'로 불리고 있다. 남부 내륙지역의 신석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분기에 따른 주거지의 평면 형태에 있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중기에 해당하는 주거지는 장방형이 대부분으로, 후기의 유적에서는 원형이 주류를 이룬다. 주거지의 규모는 중기의 김천 송죽리나 진주 상촌리 유적에서는 7∼10m 내외이며, 후기의 합천 봉계리나 거창 임불리 유적은 3∼5m 내외의 규모로 중소형에 해당한다. 화덕자리의 위치는 중기에서는 주거지의 중앙에 위치하며 원형인데 반해, 후기의 주거지에서는 중앙에 위치한 것과 한쪽으로 얼마간 치우친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 기둥구멍은 중기의 주거지는 벽가 배열 혹은 불규칙한 것이 다수를 차지하나, 후기에 해당하는 주거지에서는 없는 것과 불규칙한 것이 대부분이다. 송죽리유적에서는 주거지 외부에 저장구덩이 위치하고 있으며 하나의 세트관계로 이 저장 구덩은 도토 리 저장구덩이다. 남해안지역 전기에 해당하는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화덕자리의 경우 여수 돌산 송도패총은 돌두름식, 하동 목도패총은 구덩식의 구조가 확인되었다. 화덕자리의 규모는 주거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편인데, 지름 1∼1.5m 내외가 주류를 이룬다. 송도와 목도의 주거지는 모두 조개더미층 내에 주거지를 조성한 공통점이 확인된다. 또한 부산 동삼동과 목도 패총에서는 기둥구멍만 확인된 유구가 있어 주목되는데, 목도패총은 기둥구멍 수가 6개로 오각형을 이룬다. 동삼동패총에서도 다수의 기둥구멍이 조사되었으며, 조개더미유적의 최하층인 기반층에서 확인되었다. 이들 기둥구멍은 주거지 혹은 기타 부속 건물과 관련된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중기에 해당하는 동삼동 1·2호 주거지는 남해안지역에서 조사된 조개더미 유적의 주거지 중 가장 잔존상태가 양호하며, 주거지의 구조뿐만 아니라 출토 유물을 통해 당시 신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1호는 방형, 2호는 원형을 띠며, 추정 규모는 5∼6m 내외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2호주거지의 것으로 생각되는 기둥구멍은 주거지 벽면을 따라 20㎝ 전후의 기둥구멍을 1열로 배치하고, 그 안쪽으로 말각방형상으로 설치하였다. 주거지의 내부시설 중 특징적인 것은 내부에 도랑과 단시설의 존재이다. 단시설은 주거지의 한쪽 벽면에 높이 20㎝ 정도로 마련하였는데, 단과 주거지의 상면 사이에는 도랑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 작은 구멍을 설치하였다. 도랑의 기능은 주거지 내의 배수용으로 추정되며, 도랑 내부에 작은 구멍이 설치되어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른 용도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경주 봉길리유적에서는 방형의 주거지 3기가 조사되었으며, 동남해안지역의 사구지대에서 조사된 유일한 신석기시대 주거지 유적이다. 주거지의 규모는 다른 남해안지역의 주거지에 비해 작아 3∼5m 내외이며, 2호주거지에서 돌두름식의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다. 기둥배치는 벽가 배열과 외부에 일정한 간격의 기둥구멍이 확인되어 주목된다. 이는 대부분의 중부동해안지역을 비롯한 사구지대에서 조사된 주거지의 경우에는 기둥구멍의 발견예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구자진)
참고문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주거지의 지역권설정과 변화양상(구자진, 한국신석기연구13, 한국신석기학회, 2007), 서·남해안지역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유적의 주거지 의미(구자진, 한국신석기연구18, 한국신석기학회, 2009), 한국 신석기시대의 주거지와 마을 연구(구자진, 숭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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