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신석기시대 토기문화(新石器時代 土器文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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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한반도 신석기시대의 토기문화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토기의 기형과 문양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문화는 크게 몇 개의 지역군으로 나눌 수 있다. 압록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 두만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 청천강 이남에서 대동강 및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지역, 강원 영동을 중심으로 한 중동부지역, 충청·전라·경상도 내륙을 중심으로 한 남부 내륙지역, 전라·제주도를 포함하여 경상도 해안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지역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서북과 동북 지역은 시종일관 평저의 기형을 유지하지만, 그 이남지역은 전기 또는 중기에 첨·원저 토기문화로 변화한 후 신석기시대 종말기까지 이러한 기형을 유지한다. 시간적으로는 기원전 약 10,000년 전부터 기원전 1500년 전후한 시점까지를 포함한다. 각 지역별로 세분화된 편년의 분기설정은 동일하지 않지만 크게 보아 한반도 전역은 고산리식토기로 대표되는 초창기, 융기문이나 압날·압인문계 토기 등으로 대표되는 조·전기 단계, 침선문으로 대표되는 중기 단계 및 침선문의 퇴화, 무문양화, 이중구연토기 등으로 대표되는 후·만기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고토기를 반출하는 초창기의 유적은 현재 제주도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고산리유적을 필두로 김녕리, 강정동 등 제주의 북부와 남부를 포괄하는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초창기의 토기는 점토에 섬유질 비짐을 혼입한 무문양 토기인 고산리식토기로 대표된다. 기형은 직립(直立)에 평저(平底)를 기본으로 한다. 소수이기는 하나 점열문계 ‘之’자문이나 집선문 등도 확인되고 있다. 식물섬유질이나 동물털을 비짐으로 혼입하는 것은 아무르유역이나 일본 열도의 고토기에서도 확인되는 현상이다. 아직 본토에서는 이 단계의 토기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후기 구석기시대 최말기로 편년되는 유적들에서 양면가공의 석촉 등 새로운 문화요소가 확인되는 양상으로 보아 향후 발견 가능성이 높다. 서북지역은 기본적으로 압록강 대안의 요녕지역과 유사한 토기상을 보인다. 서북지역 토기문화는 평저토기전통에 속하는데 크게 4기로 나눌 수 있다. 서북지역 1기는 의주 미송리동굴유적으로 대표되는 ‘之’자문토기가 있다. ‘之’자문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의 요녕과 길림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토기로 그 최남단이 한반도 서북지역인 것이다. 압록강 대안에서는 요녕 후와유적 하층에서 양호한 자료가 확인된다. 서북지역 2기는 침선문토기 단계이다. ‘之’자문토기에서 완전히 일변하여 동체에 횡침선을 시문하고 저부에 자돌문(刺突文)을 시문하는 토기가 특징적이다. 압록강 대안의 후와유적 상층이나 요중지역의 마성자유적 등에서 같은 단계의 양호한 자료가 확인된다. 서북지역 3기는 미송리, 당산하층 등에서 보이는 침선계 횡주어골문으로 대표된다. 이 단계는 대체로 요동반도의 오가촌기에 병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북지역 4기는 당산유적 상층으로 대표되며 덧무늬를 가로 혹은 세로로 시문하고 사이에 침선을 섞은 토기가 특징적인데 요중지역의 편보문화 토기계통으로 생각되고 있다. 다만 당산유적 상층에 대해서는 청동기시대로 보려는 시각도 존재해 논란이 있다. 서북지역 마지막 단계는 신암리1기로 대표되는데, 긴 목이 달린 토기에 뇌문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하학문이 시문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태토에 흑연이 비짐으로 포함되는 것이 이 시기 토기의 특징 중 하나이다. 동북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선사시대 유적조사가 이루어진 곳으로 유명한데 이 지역 토기문화의 실상이 잘 알려지게 된 것은 서포항 유적의 발굴을 통해서이다. 동북지역 역시 서북지역과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평저토기 전통을 유지하는데, 서포항유적을 기준으로 크게 5단계로 나뉜다. 서포항1기는 구연과 동체부를 중심으로 압날문을 시문한 평저토기가 대표적이다. 많은 자료가 알려지지 않아 명확한 성격을 알기 어렵지만 두만강 대안의 연해주지역 조사성과를 참고하면 서포항1기는 러시아 보이스만문화와 같은 성격이며 연구자에 따라 보이스만2기 또는 5기와 병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서포항2기는 1기에 비교할 때 외반구연토기가 등장하고 점 열횡주어골문이나 침선계 횡주어골문 등이 등장하는 변화가 관찰된다. 역시 보이스만문화 단계와 병행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동북지역에서 토기문화에 큰 변화가 보이는 것은 서포항3기부터이다. 이 단계에는 횡주어골문이나 사선대문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침선문토기가 유행하고 곡선계의 타래문토기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연해주에서는 자이사노브카문화 단계로 불리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성과에 의하면 자이사노브카문화 이른 단계에 승문 압날에 의한 승선문토기가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서포항4기는 3기의 전통이 유지되는 가운데 자돌문이나 침선문이 기면에 횡으로 복합되는 문양이 유행하고 특히 뇌문토기가 유행하였다. 뇌문토기는 서북지역과 병행관계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토기로 연해주 남부 자이사노브카문화 단계에서도 잘 보인다. 이 단계에는 기종도 분화하여 천발(淺鉢) 또는 완형토기에 굽이 달린 기형이 유행한다. 서포항5기는 무문화가 현저히 진행되고 뇌문도 간략화하며 각목문토기가 등장하는 등, 앞 단계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며 청동기시대 토기의 특징을 많이 보인다. 따라서 최근에는 이 시기를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이해하는 연구자가 많다. 중서부지역은 첨저의 빗살무늬토기가 처음 등장하여 유행한 곳이다. 대동강과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다. 북한의 궁산문화지역에 해당하며 크게 4단계로 구분된다. 궁산1기는 첨저포탄형 기형에 구분계 문양배치를 특징으로 한다. 구연과 동체, 저부에 각각 다른 문양을 시문하는 구분계 시문방식은 궁산1기에 출현하여 2기까지 유행하며 중서부 이남 각지로 확산된다. 구연문은 점열문이나 단사선문, 조문(爪紋) 중심이며 동체부에는 종주어골문이 주로 시문된다. 저부는 사선대문이나 횡주어골문, 방사상문 등이 시문된다. 봉산 지탑리 1지구가 대표적 유적이다. 궁산2기는 1기와 동일한 기형이지만 문양에서 곡선계의 점열타래문이나 중호문이 유행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와 함께 구연문과 동체문 사이에 부가문 시문이 유행한다. 동 체부에는 횡주어골문이 점차 증가한다. 지탑리 2지구유적, 봉산 마산리유적, 연천 삼거리나 서울 암사동 유적이 대표적이다. 궁산3기는 다치구에 의한 횡대구획과 삼각집선문 등이 교대 시문되는 금탄리1식토기가 등장해 유행한다. 기형도 원저화가 진행되고 동체가 부푸는 변화가 엿보인다. 그러나 금탄리1식토기는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유행하며 한강유역에서는 같은 단계에 여전히 구분계시문토기가 주를 이루는데 특히 동체부에 장대화된 찰과상 다치횡주어골문을 시문하는 것이 유행한다. 이 문양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서해안까지 분포하는 지역성이 강한 문양이며 암사동이나 미사리, 시흥 능곡 등에서 다량 확인된다. 궁산4기는 이 지역 마지막 단계에 해당되는데 동일계 횡주어골문을 중심으로 한 금탄리2식토기가 유행한다. 무문화가 현저히 진행되며 외반구연과 부푼 동체 등 기형상의 변화도 뚜렷하다. 중부 서해안일대에서는 동체상반부까지만 문양이 시문되는 토기가 유행한다. 궁산4기는 평양 남경유적 발굴을 계기로 궁산3기의 특징이 잔존하는 4기와 금탄리2식토기 및 무문화가 현저한 5기로 나뉘어 설명되고 있다. 중서부지역은 주변과 비교할 때 전기 후반이 되어서야 첨저토기가 등장하는 양상으로 그 이전 단계의 토기문화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동부지역은 평저토기와 첨저토기가 시기를 달리하여 나타나는데 크게 5기로 구분된다. 조기는 융기문토기와 압날문계 평저토기로 대표되며 양양 오산리, 고성 문암리 등을 통해 그 양상이 알려졌다. 융기문토기는 남해안과 그 특징을 같이 하는데 반해 압날문계 평저토기는 기형과 문양상에서 연해주 등 북쪽지역과의 관련성이 강하다. 오산리 최하층이나 문암리 하층에서 확인된 이 토기는 최근 융기문토기보다 선행하여 출현하고 일정기간 공존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전기는 오산리식토기로 대표되어 왔다. 오산리식토기는 구연부를 중심으로 압날문계 문양을 시문한 토기이며 저부에 비해 구연부가 넓게 벌어지는 기형상 특징이 있다. 최근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오산리식토기와 연결되는 압날문계 평저토기가 융기문토기와 공존한다는 것이 점차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중동부지역에서는 전기 단계의 토기가 정확히 어떤 양상인지가 오히려 불분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지역 중기는 첨저빗살무늬토기의 출현을 특징으로 본다. 토기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중서부지역과 동일하며 지역적 특징으로 종주어골문이 부가문화하거나 강상리유형 토기가 공반되기도 한다. 또한 중서부계 토기에 뒤이어 남부지역 태선문토기의 특징을 가지는 단계로 이행한다. 이러한 양상은 양양 지경리과 강릉 초당동 유적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 지역의 후·만기는 침선계 문양이 퇴화하고 단사침선문토기가 등장하며 무문화가 진행되는 등, 남해안지역과 변화의 흐름이 기본적으로 같지만 아직 정식 조사된 유적이 거의 없다. 최근 고성 철통리유적에서 처음으로 주거지가 조사되었는데, 토기는 중서부의 후기 단계와 성격을 같이 하는 것으로 중동부지역 후기 이후에도 여전히 중서부와 남부지역 계통 토기가 병립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남해안지역은 시기별로 특징적인 토기문화가 발달하는데, 크게 5기로 구분 가능하다. 조기는 융기문토기를 표지(標識)로 한다. 융기문토기는 중동부해안에서 남해안에 분포하며 그 중심은 남해안이다. 평저를 기본으로 하며 소형토기 등 일부는 원저가 나타나기도 한다. 융기문은 주로 동체부를 중심으로 시문되며 그 형태에 따라 평행융기문과 기하학적 융기문으로 대별된다. 융기문은 가로나 세로방향으로 구획을 한 후 문양을 시문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구획의 엄격성은 융기문토기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약해진다. 전기는 자돌과 압인시문기법으로 시문한 영선동식토기가 유행한다. 원저를 기본으로 하며 문양은 주로 구연부에만 집중된다. 문양형태는 횡주어골문을 기본으로 조압문, 격자문, 거치문 등이 단독 혹은 조합되어 시문된다. 영선동식토기 후반에 중서부지역 계통의 압날단사선문토기가 소량씩 나타난다. 중기는 수가리Ⅰ식토기로 대표되는데, 구연과 동체부에 서로 다른 문양을 시문하는 구분계시문방식이 특징적이다. 또한 문양에 두터운 침선 이 사용되어 이 단계의 토기는 태선문토기로 통칭되기도 한다. 구순(口脣)으로 갈수록 두터워지는 비후(肥厚)구연 역시 이 단계의 특징이다. 수가리1식토기는 기본적으로 중서부계통의 구분계 단사선문 토기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구연부에 삼각, 능형, 제형의 집선계 문양이 많이 시문되고 동체부에 단치횡주어골문(短齒橫走魚骨文) 이외의 문양이 보이지 않는 점 등 중서부지역과 다른 지역적 특징도 강하게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대형 토기의 비율이 증가하고 유물의 양 역시 급증하여 유적 규모면에서 커지는 특징이 있다. 후기는 수가리Ⅱ식토기로 대표되는데 동체문양이 소실되고 구연문 단독으로 시문되는 것이 기본을 이룬다. 문양의 정연성도 퇴화되고 침선 굵기도 가늘어진다. 사격자문이나 삼각집선문 등이 주로 시문되는 문양형태이다. 말기는 율리식토기(이중구연토기)로 대표되는데, 이제 문양이 거의 사라져 이중구연부나 구연 근처에만 간략한 단사침선문 위주의 문양이 남거나 아예 무문화한다. 홑구연토기 역시 유사한 변화상을 보인다. 말기 토기는 회색조의 어두운 색조를 가지며 사질성 태토가 증가하는 등 이전 단계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남부 내륙지역은 기본적으로 남해안지역과 토기문화의 큰 흐름을 같이 하지만 이른 단계의 유적이 상대적으로 잘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융기문토기는 거창 임불리, 청도 오진리, 김천 송죽리 유적을 비롯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영선동식토기 역시 송죽리, 경주 황성동 등 일부에 국한된다. 내륙지역에 유적 점유가 본격화되는 중기 단계부터 수가리Ⅰ식토기가 등장한다. 내륙의 중기 토기는 서부경남을 중심으로 뇌문이나 능격문이 확인되는 등 해안지역과 지역차를 보이기도 한다. 후기에는 이러한 차이가 확대되어 내륙에서는 주로 봉계리식토기가 유행한다. 봉계리식 토기는 외반구연 첨저를 기본기형으로 하며 동체 상반부 이하에는 문양이 시문되지 않는다. 격자문을 중심으로 조우문, 점열문, 능격문 등이 주요 문양이 된다. 봉계리식토기 단계 후반에 이중구연토기가 처음 출현하게 되어 말기의 주요한 형태가 된다. 이상에서 보듯이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문화는 대하천 및 해안을 중심으로 크게 몇 개의 지역군으로 묶이며 시간적 변화를 보인다. 변화의 획기는 대략 신석기시대 중기부터라 할 수 있는데, 침선계토기문화의 확산 및 유행으로 의미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반도 전체에서 확인되며 나아가 중국 동북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에서도 유사한 변화상이 확인된다. 침선문토기문화로의 변화는 생업상의 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임상택) |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강의?개정 신판?(한국고고학회, 사회평론, 2010)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
만족도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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