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설명 |
이 무덤은 대동강으로 흘러드는 무진천의 하구에 있는 정오다리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알려졌다. 짜임새는 수직으로 내려판 무덤 구덩이 안에 장방형
의 나무곽을 만들고 거기에 널 하나를 넣고 묻은 나무곽무덤으로 기원전 2세기 말~기
원전 1세기 초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좁은놋단검(세형동검), 좁은놋창을 비롯한 청동 및 철제의 무기무장, 마
구, 수레부속, 치렛거리(장신구), 토기, 은도장 등 110여 점의 유물이 드러났다.
거북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도장에는 소전체로 된 "부조예군(夫租濊君)"이라는 글자
가 새겨져 있어 이로부터 이 무덤을 일명 "부조예군"무덤이라고도 한다. "부조"는 고
조선의 중심지였던 왕검성의 동쪽에 있던 영동땅의 한 개 지방을 의미한다. 영동땅에
는 예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무덤 주인공은 부조지방의 예사람들의 우두머리로 있던
귀족으로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평양지방에 와서 묻혔다고 보아진다.
무덤에서 드러난 좁은놋단검, 좁은 놋창을 비롯한 무기류들과 마구 및 수레부속 등
유물 갖춤새 전반은 기원전 2세기의 여러 유적에서 알려진 것과 같다.무덤 짜임새와
껴묻거리(부장품)들은 기원전 1세기 이후 평양 부근 문화의 실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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