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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이란?

목간 이미지

목간(木簡)은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목재를 다듬어 세장형(細長形)으로 만든 나무판을 말하며, 종이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고대 동아시아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서사재료(書寫材料)이다.
목간은 짤막하게 다듬은 나무판에 의사표시를 위해 글씨를 쓴 것으로 목간이 출토된 유적의 연대나 성격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목간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혹은 그것이 아직 널리 보급되기 이전 시기에 나무를 깎아서 그 위에 먹으로 문자를 쓴 것을 말한다.
목간은 나무판에 문자나 그림을 새기거나 묵서한 것이다.

목간의 기원(起源)

나무를 서사재료로 사용하는 방식은 고대 중국에서 최초로 기원하였는데, 이것이 한반도를 경유해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현재 중국학계에서는 이러한 서사재료를 ‘간독(簡牘)’이라고 부르며, 한국과 일본학계에서는 ‘목간(木簡)’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 나무를 서사재료로 사용하기 전에는, 주로 갑골(甲骨)이나 청동기(靑銅器), 석판(石版) 등에 날카로운 도구로 문자를 새기거나 주조하여 표현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제작이나 기록 · 운반 · 보관 등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쉽게 구하고 간단한 작업으로도 가볍고 부피가 작은 서사재료로 만들 수 있는 나무가 즐겨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나무가 서사재료로 사용되기까지에는 나무에 잘 흡착되는 물감인 먹[墨]과 필기구인 붓[筆]의 발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 중국에서는 붓, 먹, 그리고 나무로 만든 서사재료 등 일체의 문방구가 이미 전국시대(戰國時代 : B.C. 403~221)의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목간의 사용배경

나무는 청동기나 석판보다는 서사재료로써 큰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 부피와 무게로 인해 많은 양의 문자를 기록하는 데에는 여전히 불편한 서사재료라고 할 수 있다. 『사기(史記)』에는 한무제(漢武帝)때 동방삭(東方朔)이란 사람이 지방에서 중앙으로 간단한 상서(上書)를 하는데도, 간독(簡牘)이 무려 3천매나 되어 두 사람을 시켜 겨우 운반해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무 서사재료의 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시에도 나무 서사재료의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帛[비단]이라는 서사재료가 있었다. 책을 세는 수량인 ‘권(卷)’은 본래 이러한 백서(帛書)를 두루마리 형식으로 말아놓은 것을 의미한다. 비단은 가볍고, 필기가 쉽고, 두루마리 형태로 말 수 있어 운반 및 보관을 하는 데도 편리한 아주 좋은 서사재료였지만, 값이 비쌌기 때문에 황실이나 상류계층만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나무의 경제성과 실용성, 그리고 비단의 운반 · 보관상의 편리성 등, 두 서사재료의 장점만을 두루 갖춘 보다 혁신적인 서사재료가 중국에서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종이[紙]다. 종이는 후한시대(後漢時代)에 채륜(蔡倫)에 의해 품질이 개선되면서 서사재료로서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고, 이로 인해 기존에 전적(典籍)을 기록하는데 사용되었던 죽간(竹簡)은 결국 후한시대 이후 점차 소멸의 길을 걷는다. 이는 이 이후부터 종이가 죽간을 대신하여 많은 양의 내용을 기록하는 서사재료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에서는 제지생산(製紙生産)이 경제성을 갖추는 4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나무는 부차적인 서사재료로 전락한다.

6세기 이후 한국과 일본지역에서도 종이와 나무[紙 · 木]가 병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정보는 종이에 서사되었고, 나무 서사재료는 주로 간단한 메모나 발췌용, 그리고 종이에 정서(正書)하기 전의 연습용[習書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종이가 보편화된 뒤에도 나무 서사재료가 애용된 곳도 있다. 나무는 종이보다 내구성이 좋았기 때문에, 세금의 수송이나 창고보관과 관련하여 제작된, 물품의 ‘꼬리표[荷札木簡]’나 신분을 증명하는 통행증[過所木簡] 등 사람의 이동과 관련된 서사재료로 매우 널리 사용되었다.

현재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는 이러한 나무 서사재료를 ‘목간(木簡)’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고대목간은 한국의 경우 소나무[松], 일본의 경우에는 삼나무[杉]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죽간의 출토예가 매우 드문데 이는 중국과 다른 자연환경과도 관련되겠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전적류(典籍類)가 주로 종이에 서사되고, 나무 서사재료는 간단한 메모와 연습용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6세기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는 전적류가 주로 종이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중국처럼 일반나무가 아닌 죽간을 사용하여 서사재료의 부피와 무게를 줄일 필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더욱이 대나무는 일반나무보다 메모용이나 연습용으로는 오히려 부적합하다. 메모용이나 연습용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하며, 뒷면까지도 서사면(書寫面)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대나무보다는 일반나무가 적합하다. 대나무에 글자를 쓰기 위해서는 먹물이 잘 흡수될 수 있도록 하는 살청(殺靑), 한간(汗簡)과 같은 마름질이 필요하다. 또 죽간(竹簡)은 단단한 표피를 갖고 있어, 이 부분에는 묵서할 수가 없다. 중국의 책형죽간(冊形竹簡)에서는 뒷면에 글자를 기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나무의 표피를 가공하지 않은 채 뒷면으로 그대로 사용하면 되지만, 대나무 표피에는 메모나 연습하기가 어렵다. 이로 인해 실제로 중국에서도 종이가 보급된 후한시대(後漢時代) 이후에는 죽간이 점차 사라지고 일반나무로 만든 서사재료가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는 죽간의 용도와 한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목간의 종류

현재 중국에서는 나무 서사재료를 형태 · 재질 · 크기 등을 기준으로 하여「簡(간)」 · 「牘(독)」 · 「(고)」 · 「檢(검)」 · 「(갈)」 · 「符(부)」 · 「券(권)」 · 「棨(계)」 · 「致(치)」 · 「傳(전)」 · 「(폐)」 · 「(참)」등으로 종류를 세분하고, 이들 죽 · 목간(竹 · 木簡)을「簡牘(간독)」으로 총칭하여 부르고 있다.

「簡(간)」은 엄밀한 의미에서 글이 기록된 대나무 조각인 죽찰(竹札) 또는 죽첩(竹牒)으로서 일반적으로 죽간(竹簡)을 가리키고, 이와 유사한 형태와 크기를 취하면서 대나무가 아닌 일반 나무 조각에 글을 기록한 것을 목간(木簡)으로 칭한다.

「牘(독)」은 일반적 죽목간(竹木簡)에 비해 폭이 약간 더 넓은 것으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서판(書版)」으로 풀이하듯이 글을 쓰는 나무판이다. 길이는 일반 죽목간과 유사하지만 폭이 더 넓으며, 끈으로 엮지 않고 독(牘)의 상단부에 구멍을 뚫어 끈을 끼워 사용하거나 아예 구멍이 없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목독(木牘)은 주로 편지 · 계약서 · 초록한 약방문 · 달력 · 통행증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고)」는 다각형의 나무토막 형태로서 3~4면 드물게는 7~8면까지 단면을 내어 글을 쓰도록 하였다. 많아야 두 면까지 쓸 수 있는 일반 목간에 비해 훨씬 많은 글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고()는 비교적 특수한 용도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다. 즉, 군대의 명령서 곧 격서(檄書)의 작성, 아동용 습자 교본의 기록, 기록물의 초안 작성, 글씨쓰기 연습 등의 용도에 쓰였다.

경주 월성해자와 안압지, 부여 능산리사지, 익산 미륵사지 등 전국의 유적에서 고르게 고()형식의 다각형 목간이 12점 이상 발굴된 점은 그만큼 이러한 형식의 목간이 한국 고대사회에 널리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논어(論語)』공야장편(公冶長篇)의 일부 내용이 기록된 김해 봉황동유적과 인천 계양산성 출토 목간의 경우, 목간 소지자가『논어(論語)』를 학습하거나 습자 연습을 위해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檢(검)」은 주로 관청에서 문서나 물건을 우송하는데 사용되는 목독(木牘)의 한 형태로서 용도에 따라 두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일명 서검(書檢)으로서 주로 관청에서 문서나 서신을 우송할 상대방 관청의 이름과 주소 및 전달 방식 등을 기록하는 목독으로서 문서 꾸러미의 제일 겉면에 부착하였다. 둘째는 기밀을 요하는 문서 꾸러미나 물건을 우송하는 데 쓰이는 일명 봉검(封檢)으로서, 내용물의 외부 노출 또는 타인이 내용물을 뜯어보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봉검(封檢)은 목독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윗부분 또는 중간에 요(凹)자형의 홈이 있다.

「(갈)」은 오늘날 화물의 꼬리표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한국과 일본에서 발굴된 하찰간(荷札簡) 또는 부찰간(付札簡)과 흡사한데,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둥그스름하게 깎은 상단부에 먹(墨)으로 검게 칠하거나 거물문양의 빗금이 쳐져 있는 경우로서, 이러한 갈()의 윗면에는 작은 구멍이 하나 또는 두개씩 뚫려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멍을 뚫은 이유는 물품을 담은 상자 또는 바구니에 갈()을 끈으로 묶어두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이러한 형태의 갈()에는 물품명 · 문서명 · 장부 · 무기의 숫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상단 혹은 하단에 구멍이 뚫려 있는 목간은 함안 성산산성(城山山城) 목간 중에서도 발견되는데, 아마도 중국의 갈()과 유사한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형태의 갈()은 상단부 또는 하단부를 삼각형 또는 반원형 모양으로 깎고, 바로 아래 부분의 양 측면을 요(凹)자형 또는 삼각형의 홈을 낸 형태로서 이 역시 각종 물품을 담은 상자 또는 바구니에 갈을 꽂아두거나 끈으로 묶어 두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갈()은 우리나라의 안압지(雁鴨池) · 성산산성(城山山城) · 이성산성(二聖山城) 등에서 출토된 상당수 목간의 형태와 흡사하여 비교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갈()은 주로 진대(晋代)의 묘장에서 발굴되고, 내용 또한 첫 번째 유형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 니아(尼雅)의 진대 묘장에서 발굴된 것 중에는 살아 있는 자가 묘주(墓主)에게 바치는 부장품명[琅]과 묘주에게 문후를 여쭙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 있고, 남창시(南昌市)의 동진(東晋) 시대 묘에서 발굴된 갈()에는 오늘날의 명함과 유사하게 특정인의 관직명(官職名) · 군현향리명(郡縣鄕里名) · 성명(姓名) · 연령(年齡) · 자(字) 등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목갈(木)은 봉검(封檢)과 함께 상자에 붙어 출토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봉검에는 물품 수신인의 주소 · 이름 · 운송방식 등이 기록되고, 목갈(木)에는 상자에 담긴 물품 명칭이나 수량이 기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符(부)」는 사신이나 여행자가 관소(關所)를 통과하거나 관청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제시하는 신표의 일종으로서 원칙상 대나무로 제작되었으나[竹符] 일반 나무로 제작된 것[木符]도 있다.

「券(권)」은 符(부)와 유사한 형태와 용도로 사용되었고, ‘약속을 단단히 묶는다’는 의미로서, 증명서나 계약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였다. 즉, 약속한 내용을 하나의 죽목간 좌우 양측에 기재한 후 이를 양분하여 증명 또는 계약의 양 당사자들이 하나씩 나누어 갖도록 함으로써 쌍방이 계약 또는 증명한 내용을 확약하는 물증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별)」도 符(부)와 유사한 형태와 용도로 사용되었고, 목판의 중앙에 큰 글자를 기재한 후 글자의 중간 부분을 관통하도록 목판을 양분하도록 한 것인데, 이 역시 넓게는 符(부)와 券(권)과 마찬가지로 내용 증명을 하기 위한 것이다.

「(폐)」는 죽목간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 조각이다. 죽목간에 문자를 잘못 기입한 경우 또는 죽목간의 원래 용도가 다 되어 기존 내용을 삭제하고 새로운 내용을 기록할 경우, 기존 죽목간 표면의 일부 또는 전면을 삭제할 필요가 있을 터인데, 지우개가 없는 당시로서는 죽목간의 표면을 칼로 깎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떨어져 나온 것이 폐()로서 1만여 매의 거연한간(居延漢簡) 중에는 폐()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데, 폐()에 기록된 단편적 글자나 문구도 훌륭한 연구 재료가 된다. 한대의 하급 관리를 도필리(刀筆吏)로 칭하기도 하는데, 도(刀)는 죽간의 제작만이 아니라 관리가 기록과정에 발생한 오류를 수정하거나 전면을 삭제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은 글자가 기록되지 않은 백지 상태의 목간으로서, 거연(居延)에서는 하단부가 떨어져 나간 67.8cm의 글자 없는 목간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1척 길이의 표준 목간 3개를 만들 수 있는 참()임을 알 수 있다. 죽목간의 길이는 대체로 기록 주체의 사회적 지위 또는 내용의 중요도나 성격 등에 따라 결정되었다. 중국에서 발굴된 죽목간의 길이는 14~88cm 사이이고, 이중 서적이나 문서를 기록한 죽목간은 대부분 23~28cm 사이인데 23cm의 것이 제일 많다. 이는 진한시대(秦漢時代)의 가장 표준적 죽목간의 길이임은 위에서 언급하였다. 표준적 죽목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원판이 필요한데, 원판의 길이는 3척(약 70cm)으로서 이를「(참)」이라 불렀다.

  • 정보제공부서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 담당자 : 안경화
  • 문의 : 055-211-9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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