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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장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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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안전진단 결과 구조적안전이 우려되어 1999년 해체보수정비가 결정되었다. 이후 전라북도와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대행사업 협약을 체결하고 2001년 10월부터 연구소에서 석탑의 해체조사 및 보수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미륵사지 석탑은 해체가 완료되어 기초부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석탑의 해체는 6층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보강된 콘크리트와 석축까지 모두 해체되었다. 해체 전 석탑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문헌기록이나 자료를 찾기 어려웠으나 해체 및 발굴 조사 과정에서 상세한 자료가 축적되기 시작하였고 건축, 보존과학, 고고학, 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동안의 조사 및 연구 내용은 심포지엄, 공개설명회 등을 통해 관련 전문가 및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으며 해체조사보고서 발간 등 기록보존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고유제 (해체시연) 사진 고유제 (해체시연) 심초석 해체 사진 심초석 해체


사리장엄 발견


2009년 1월 14일, 1층 해체조사를 진행하던 중 심주석 상면 중앙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사리공 주변에는 십자(十字) 먹선과 석회로 밀봉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사리장엄은 사리공 안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사리호, 금세사리봉영기, 은제관식, 청동합 등 다양한 공양품이 일괄로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석탑의 건립시기가 밝혀졌으며 미륵사 창건의 성격과 주체 등이 밝혀졌다.

또한, 출토 유물 편년에 절대연대가 확인됨으로써 당시 백제의 역사와 문화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 출토는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가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최초 발견 모습 사진 최초 발견 모습

유물 출토상황

석탑 1층 심주석 중앙에 방형 사리공(한 변 25cm, 깊이 27cm)을 조성하고 바닥에는 바닥면을 덮을 수 있는 크기의 판유리를 깔고 그 위에 다양한 유물을 차례로 안치하였다. 먼저 사리공 사면에 청동합 6개를 두고 이 합들 사이에는 유리구슬을 채운 뒤 남측에는 은제관식과 금제소형판들을, 북측에는 직물에 싼 칼(刀子) 4자루를 두고, 동측에 1자루, 서측에 2자루의 칼을 각각 올려놓았다. 그리고 남측 벽면에 비스듬히 금제사리봉영기를 올려놓고 정중앙에 사리호를 마지막에 안치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사리장엄 유물목록
사리장엄 유물목록
유물명 크기(cm) 비고
23건 9,900여점 * 사리호 및 청동합 내부유물 포함
1 금동제사리외호 7.7×13 1(일괄) 금제구슬, 유리구슬, 광물, 유기물 등(3,990여점)
2 금제사리내호 2.6×5.9 1(일괄) 금제구슬, 유리구슬, 유기물, 사리 등(275점)
3 유리제사리병 0.9×1.5(잔존부) 1 파편 일괄 포함
4 금제사리봉영기 15.3×10.3×0.13 1 己亥年(639년), 百濟王后 명문, 193자(앞 99자, 뒤 94자)
5 금제족집게 0.8×5 1 금사 등 실을 꼬아 만든 끈 포함
6 금판 1.5×8.3×0.1 내외 18 사주사 명문 3점
7 금괴 2.9×1.9 이하 3 크기 및 형태 각각 다름
8 금제고리 Ø1.5 1
9 금제구슬 Ø0.4 이하 23 화형 6점, 원형 17점
10 금동제고리 2.1(Ø1.4) 1 두 개가 연결된 한쌍
11 금분 - 1 직물 주변에서 수습
12 은제관식 3.7×13.4, 4×13.2 2 1단형, 2단형
13 은제과대장식 2×13.8, 2.1×3.9 2 띠드리개장식 1점, 과판 1점
14 은괴 1.3×1.8 1
15 주석괴 3.6×2.8 1 유리판 위에서 수습
16 청동합 8.3×4.6 이하 6 금제고리, 금제구슬, 금판, 금제이식, 금괴, 유리구슬, 호박, 곡옥, 진주구술, 금속사, 직물, 유기물 등(4,970여점)
17 유리판 23×23×1 1 사리공 내 최하부에 위치
18 유리구슬 Ø1~Ø1.8 566
19 소형유리구슬 Ø0.2~Ø0.4 30
20 도자 2.2×18 내외 7 부식이 심한 상태
21 호박 2.2×1.9, 2.1×1.2 2
22 진주구슬 Ø0.5~Ø0.8 32
23 직물 - 1(일괄) 견직물 및 금사 등, 부식이 심한 상태

1. 금동제사리외호(金銅製舍利外壺) - 높이 13cm 어깨 폭 7.7cm

외호는 보주형(寶珠形) 꼭지가 달린 뚜껑과 긴 목, 둥근 어깨를 지닌 동체(胴體)로 되어 있다. 특히 외호동체는 상하로 나뉘며 아랫부분에 'ㄴ'자형으로 홈을 파고 돌려 끼우는 방식으로 결합된다.
외호 안에는 내호를 비롯해 다양한 색상의 유리구슬과 금제구슬, 향분추정 유기물 등이 채워져있다.

2.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 - 높이 5.6cm 어깨 폭 3.1cm

내호는 외호와 달리 뚜껑과 동체 상부가 일체형이며 금판을 두드려서 만든 단조기법으로 제작되었다. 내호에서는 유리제사리병 파편과 사리 등이 추가로 확인되어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안은 금동제사리외호-금제사리호-유리제사리병의 3중 구조로 밝혀졌다.




3. 유리제사리병(琉璃製舍利甁) - 구연부 직경 4mm 두께 약 0.3mm 유리편 두께 약 0.1mm

내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리제사리병과 사리가 확인되었다. 구연부와 뚜껑 외에는 작고 얇은 수십개의 파편상태로 수습되었다. 사리는 사리병 안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꼭지가 달린 구형(球形)의 뚜껑은 짙은 갈색을 띠고 있다.

좌 - 사리병 구연부 및 뚜껑 / 우 - 사리

4.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 - 가로 15.3cm 세로 10.3cm 두께 1.3mm

백제 왕후가 가람을 창건하고 己亥年(639)에 탑을 조성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발원문으로 미륵사 건립의 성격, 발원자, 석탑 건립연대 등을 알 수 있다. 앞면에 9자씩 11줄로 99자, 뒷면에는 94자를 새겨 전체 193자를 각자(刻字)하였으며 특히, 앞면에는 주사(朱?)를 사용하여 글자를 더욱 선명히 드러나게 하였다.

금제사리봉영기(뒷면)
금제사리봉영기(앞면)

5. 금판(金板)
폭 1.5cm 길이 8.3cm 두께 1mm

손가락 길이의 얇은 금판으로 당시 화폐의 기능을 담당한 금정(金鋌)으로 추정된다. 중부(中部), 하부(下?), 덕솔(德率)과 같은 명문을 통해 당시의 행정체제나 관등을 살펴볼 수 있다.

6. 금제족집게(金製輯)
폭 0.8cm 길이 5cm

족집게 표면은 누름기법 및 어린문(漁麟紋)이 음각으로 장식되었다. 특히, 상부에는 고리가 있고 금사 등으로 실을 꼬아 만든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7. 청동합(靑銅盒)
지름 8cm 높이 4.3cm 내외

사리장엄에서 흔히 사리병과 봉안되는 유물 중 하나로 모두 6점을 수습하였는데 크기와 형태가 각각 다르다. 사리호 주변을 에워싸는 형태로 놓인 것으로 보이며 내부에서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8. 은제과대장식(銀製跨帶裝飾)
과판 폭 2.1cm 길이 3.8cm
띠드리개장식 폭 2cm 길이 13.8cm

허리띠에 사용된 과판과 띠드리개장식이 각각 1점씩 수습되었다. 사리장엄 안치 시 허리띠 없이 장식만 공양물로 안치한 것으로 보인다.

9. 은제관식(銀製冠飾)
폭 4cm 길이 13.2cm
폭 3.7cm 길이 13.4cm

얇은 은판에 좌우 대칭의 도안을 그린다음 끌로 오려내고 장식을 좌우로 접어 'ㅅ자' 모양으로 각지게 만들었다. 중심 줄기에는 곁가지를 내었는데 1단과 2단의 두 가지로 그 끝을 당초문과 꽃봉오리모양으로 장식하였다.

10. 유리판(琉璃板)
가로 23cm 세로 23cm 두께 1cm

사리공 크기에 맞추어 정방형으로 제작되었는데 가장 밑면에 깔아 공양물을 안치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조각으로 파손된 상태이나 백제시대 유리의 제조기술이나 도입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14. 호박(琥珀)
가로 2.9cm 세로 1.9cm
가로 2.1cm 세로 1.2cm

4번 청동합 내에 1점의 호박이 발견되었다. 호박의 보존 상태는 3점 모두 표면에서 내부층까지 미세균열이 심각하게 풍화된 상태이다.

15. 도자(刀子)
가로 2.2cm 세로 18cm 내외

도자는 모두 7점이 확인되었는데, 덮여있던 직물과 함께 부식되어 보존상태가 좋지 못하다. 몸체는 목재로 제작되었으며 양 끝에 금제로 투겁을 씌워 마감하였고 특히 1점은 손잡이인 환두(環頭)에 투조(透彫)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16. 직물(織物)
가로 2.9cm 세로 1.9cm 내외

직물은 청동합 내부 및 사리공에서 도자를 감싸고 유리구슬 주변을 덮고있던 형태로 수습되었다. 금(錦), 라(羅), 사(沙), 능(綾)과 같은 고급 직물을 사용하였다.




청동합 내부 유물
  • 정보제공부서 : 건축문화재연구실
  • 담당자 : 김현용
  • 문의 : 063-836-7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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