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주얼

조사 개요

문화유산 개관

몽골의 남서부에 위치한 고비 알타이 아이막은 몽골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사회 기반시설이 열악하여 다른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많이 이루러지지 못한 지역이다. 몽골 동부지역과 달리 척박한 산악 지대로 북서쪽은 호보드 아이막, 북동쪽은 자브항 아이막, 남동쪽은 바잉 홍거르 아이막 과 접해있다. 남서쪽과 남쪽은 중국 영토로 위구르 자치구와 접해 있다. 인구 64,000명, 남북길이 611km,동서길이 419km이며 총 18개의 솜, 83개의 박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143,200km2로 남한 면적의 1.4배이다.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지형상 위치는 북서쪽에서 내려오는 알타이 산맥의 남동쪽 끝자락에 해당한다. 이 지맥은 고비 알타이 아이막을 북서-남동 방향 으로 비스듬히 횡단하면서 지나가는데 이에 따라 북부, 중부, 남부의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중부지역은 최고 해발 3,000km~3,500km 정도의 지맥이 관통한다. 북동쪽과 남서쪽의 지맥은 최고 해발이 약4,700km에 이르기도 한다. 반면 가장 낮은 곳의 해발은 963km로 고도차가 매우 크다. 이러한 높 은 산에 의해 북부의 샤하르 솜, 하룐 솜, 비게르 솜, 중부지역의 보가트 솜에는 분지가 형성된다. 큰 강은 없으나 산계곡부를 따라 흐른 물이 저지대에 모여 호수를 이룬 곳이 일부 지역에서 확인된다.

교통로는 수로 울란바토르를 기준으로 타이샤르오 델게르 솜을 통해 진입하게 되고 북부의 호브드아이막으로는 다르비 솜을 통해 연결된다. 남서부의 중국 위구르 자치구로 통하는 곳은 알타이 솜과 보가트 솜을 통해 연결된다.

몽골의 시대구분은 석기시대(구석기,신석기 시대),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를 선사시대로 구분하고 흉노가 등장하는 기원전 260년경 부터를 역사 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각 시대의 고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석기시대 유적은 거의 모든 아이막에서 확인되었으며 주거지와 석기 공방이 확인된 유적이 800여 곳에 이른다. 이중 구석기 시대는 약 80만 년 전~12, 000년 전까지 지속된다. 70~80만 년 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바안홍고르 아이막 울지트 솜 나린골 유적, 바얀릭 솜 차간 아고이 유적 등이 있다. 또한, 돈드고비 아이막 고르완사이한 솜 야르흐 올 유적에서는 30만년 전의 석기 공방이 확인되었다. 여기서 혹인된 석기는 남아시아, 유럽, 아프 리카의 전기 구석기시대 아슐리안 주먹도끼, 찌르개와 유사하여, 1970년대 많은 지지를 얻었던 뫼뷔우스 이론을 반반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유명하다. 후기에 이르면 동굴벽화와 바위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호브드 아이막 망한 솜 호이드 쳉헤린 아고이, 이시긴 톨고이, 보얀트 솜 찬드마니 하르 우주 르, 오브스 아이막 사길 솜 하드 우주르, 헨티 아이막 바트시레트 솜 라샨 하드유적등이 대표적이다. 그림의 소재는 메머드, 혹소, 야생 염소, 산양, 야생낙타, 코뿔소, 사슴 등이다.

신석기시대는 12,000년 전~기원전 3,000년까지 지속되는데, 다른 지역과 달리 자연기후로 인해 농경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다. 이 시기의 도구는 갈판, 공이 등의 식물 가공 도구와 사냥을 위한 결합식 석기가 있다. 토기는 전부가 난형이며, “X” 자 문양이 새겨진 토기가 확인된다. (체벤도르지,2008, 『몽골의 선사시대』 , 『돌에 새긴 유목민의 삶과꿈』, 국립문화재연구소)

청동기시대(기원전 3,000년 ~ 기원전 1,000년)부터 초기철기 시대(기원전 1,000~기원전 600년)는 유목경제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다양한 문화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톤힐 솜 탐칭 무덤군
톤힐 솜 탐칭 무덤군 사진

먼저 몽골 초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히르기수는 돌을 쌓아 만든 원형 유구와 이를 중심으로 돌을 이용하여 원형 또는 방형의 테두리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또, 테두리 바깥쪽으로는 몇 개의 돌을 이용하여 고리형으로 배치한 원형이나 방형의 작은 부속시설들이 확인된다. 부속시설은 히르기수르의 크기에 따라 유규의 남쪽에 일렬이나 여러 열로 배치된다.

여기에서는 말머리와 다리뼈가 부장되며 불로 태운 흔적도 관찰된다.

이 밖에 히르기수르의 중심 유규에서 바깥 석렬까지 방사형으로 돌을 배치하거나 일정한 구역에 돌을 깔아 마치 도로와 같은 시설을 만든 복잡한 구소의 것도 확인된다.

석렬의 형태, 부속 유규 배치 등 구조적 성격에 따라 여러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30여 가지 형태로 분류되기도 한다. 규모는 중심 적석 유구의 경우 높이가 1~5m이고, 지름은 6~20m까지 다양하다.

중심 유규 바깥에 둘러져 있는 석렬의 길이도 지름이 15~60m에 이르며, 부속 유규는 지름이 1.5~4m 정도인 것이 있다. 중심 적석 유구 아래에서는 확인된 예가 적고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유적의 성격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조성 연대는 기원전 2,000년 중엽에서 기원전 1,000년 초엽으로 편년으로 되어 몽골의 청동기 시대 유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

부가트 솜 샬루인 공 유적 사진 부가트 솜 샬루인 공 유적
돈드고비 지역의 판석묘

판석묘는 강과 하천 유역 인근의 산 남쪽 기슭이나 초원 한가운데 군집하여 나타난다. 땅을 파서 시신을 안치한 다음 크고 두터운 판석으로 매장주체부를 덮은 뒤 흙을 채우고 무덤 주변으로 판석을 세워 만들었다.

주로 몽골의 동부와 중부지역의 동쪽에 분포하는데 분포범위는 러시아 남바이칼 지역과 중국 내몽골 동북부 지역까지 이어진다. 군집 양상은 최소 10여 기 미만에서 최대 100~200여 기까지 확인된다.

형식은 지표면에 노출된 외형에 따라 나뉘는데, 주로 비슷한 크기의 판석을 이용하여 일종의 장방형 석곽을 만든 것과 석곽의 네 모서리에 석상처럼 길쭉한 돌을 세운 형태의 것이 가장 많이 발견됐다. 규모는 대체로 4.5x2.5m 정도이다.

돈드고비 지역의 판석묘 사진 돈드고비 지역의 판석묘(서울대학교박물관 2008 『몽골 초원에 핀 고대문화』 전재)

다양한 외형에 비해 지하의 매장 주체부는 단순한 움무덤이 대부분이며, 일부 석관 시설을 말과 양의 머리나 견갑골 등이 출토되기도 한다. 부장품으로는 청동 및 골제 화살촉, 청동 칼 또는 청동 투구, 단추 모양 청동 장식, 숟가락 모양 청동 장신구, 연주형 장식, 동물 모양 패식 목걸이 등이 확인된다. 연대는 주변 지역 출토 유물과 비교 연구와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3세기부터 기원전 14세기까지 존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룐 솜 하난 암각화

암각화는 현재까지 약 200여 곳에서 확인되며, 해마다 그 수가 늘고 있다, 몽골의 동부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역에서 확인되는데 대체로 바위가 많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입지하고 있다.
암각화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는데 당시에는 주로 붉은 안료 등을 이용하여 그렸다면 청동기시대는 주로 바위에 새기는 방식을 채택한다.
처음에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위주로 하였으나 점차 동물을 양식화하여 그리는 기법이 주가 되었다.

주요 대상은 야생염소, 사슴, 맹수류, 말, 낙타, 소, 사람의 활동인데 몽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들과 이와 관련한 사람들의 생계경제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밖에도 탐가라하여 씨족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표현들도 확인된다.

하룐 솜 하난 암각화 사진
오시긴 우부르 사슴돌과 세부문양

사슴돌은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 시대에 걸쳐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 세워진 거석기념물로 4면에 사슴을 비롯한 여러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슴돌은 약 800여 기로, 이중 550여 기가 몽골에서 확인된다. 형태는 긴 돌을 4면으로 다듬고 상하세부분으로 나누어 무늬를 새긴다. 상단부에는 해와 달을 동그란 고리형태로 새기고, 그 아래에 점선이나 띠를 새겨 하늘로 박차고 오르는 듯한 힘찬 다리를 특징으로 한다. 여러 마리의 사슴이 표현되는데 사슴 한 마리가 입석 4면 전체에 새겨지지도 한다. 사슴 이외에 멧돼지나 말 등의 동물이 함께 표현된 것도 있으나 극히 드물다. 하단부에는 도끼, 단검, 망치 또는 창 등 전사가 착용하던 무기나 숫돌, 곡괭이 등의 도구류가 사슴돌에 새겨진 허리띠에 매달린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 새겨진 무기의 형태를 통해 연대를 추정하기도 한다. 규모는 대체로 높이가 1~4m로 다양하며 줄 초원이나 작은 언덕에 1~2기 혹은 여러 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청동기시대의 리르기수르나 판석묘 등과 함께 어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용도는 매장 풍습과 조상숭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무기가 새겨진 점에 주목하여 전사를 위한 기념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오시긴 우부르 사슴돌과 세부문양 사진
찬드만 목곽묘 23호 평면도
찬드만 목곽묘 23호 평면도 사진

찬드만 유적은 몽골 북서부지역이 초기철기시대 무덤유적이다.
유적은 러시아 경계에 오브스 아이막의 중심 도시인 올람곰에서 서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찬드만 산에 위치한다.
몽골과 소련의 공동 역사 문화 조사단이 1972년과 1974년에 57기의 무덤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이 중 55기는 초기철기시대, 2기는 흉노시대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1981년에는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에서 10기를 추가로 조사하였다.
무덤은‘ㅍ’자 형태의 목곽으로 내부에는 별도의 시설이 확인되지 않으며 규모에 따라 2~10명까지 여러 명을 일렬로 안치하였다. 바닥에는 전체적으로 돌이나 목판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하거나, 시신이 안치된 부분에만 돌을 깔기도 하였다. 파장자의 머리 아래에는 석침이 놓였으며 피장자들은 서로 바짝 붙은 상태로 다리를 구부려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부장품은 토기, 목기를 비롯하여 청도 단검, 도끼, 거울, 칼, 화살촉 및 각종 동물 장식 등이 있다.

대체적으로 알타이 산맥 서쪽의 스키토-시베리아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지역적 특징이 일부 확인된다.
고인류학 분석 결과 찬드만 고분군의 피장자는 주로 몽골인계통과 유럽인 계통이 섞여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연대는 출토유물 비교연구결과에 따라 기원전 7~4세기로 편년된다. (서울대학교박물관, 2008, 『몽골 초원에 핀 고대문화』)

역사시대는 몽골지역이 본격적으로 중구 사료상에 등장하는 흉노시대(기원전 209년~기원후 156년)부터 이다. 흉노는 기원전 8~3세기에 번성했던 스키토-시베리아 유형 문화의 뒤를 이으면서 강력한 철제무기, 마구, 금은 장식품 등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고대문화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학계에서는 내몽고 일대에서 발견된 유목 문화(오르도스계 문화) 가운데 한(漢)나라 시기의 문화를 흉노문화로 이해하고 이들이 서주(西周)시기부터 북중국에 거주하던 유목인 문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흉노 문화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특히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노용’을 유적발굴조사는 흉노문화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흉노 유적은 무덤과 성지 등의 형태로 확인된다. 무덤은 외곽을 따라 원형이나 방형으로 돌을 쌓으며 무덤 구덩이는 깊은 편이다. 돌로 석곽이나 관을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목관이나 목곽에 피장자를 안치한다. 목관과 목곽의 안과 밖에 부장품을 두고 목곽 위쪽에는 동물뼈가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대형 무덤인 경우 이중으로 목곡을 설치하였으며 이런 구조의 무덤은 묘도 시설을 두고 깊숙하게 무덤 구덩이르 마련하였는데 칠기, 청동기 등을 포함한 중국계 유물고 다양하고 화려한 금은 제품이 부장되었다. 이 경우 부장되는 무덤 구조 등에서 중국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

성지유적으로 대표적인 것은 바이칼 남쪽 이볼가 성이다. 이성은 사각형 평면을 가진 토성이며 주위에는 해자가 있다. 지상 건축물과 수혈주거지가 모두 확인되었는데 주거지 내에서 온돌 시설도 발견되었다. 흉노 유적의 분포는 고유의 유목 전통을 유지하며 한(漢)과 대치했던 북흉노 영역에서 대규모 무덤이나 성지, 주거지 등의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데 반해 중국에 의존하여 유목적 전통을 상실하고 안정적 생활을 영유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남흉노 지역에는 유적의 수가 많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2009, 『도르릭나르스 흉노무덤』)



파지릭 문화

파지릭 문화는 스키토-시베리아 유형의 하나로서 주로 알타이 산악지역에 분포하며, 기원전 5~3세기를 중심연대로 한다. 19세기 초엽 시베리아 고분에서 출토된 유목 문화의 황금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수집된 소위 ‘표트르 대제(Пётр I) 컬렉션’을 통해 러시아 및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192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1954년에 ‘파지릭 문화’라는 공식 명칭이 부여되었다. 파지릭 문화는 기본적으로 정주 문화가 아닌 유목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파지릭 문화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러시아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몽골, 프랑스, 독일 등 몇몇 국가에서 공동연구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파지릭 문화 사진

처음 단계의 연구는 파지릭 고분 및 고분 출토유물 자체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점차적으로 파지릭 문화의 시간적 위치와 형질인류학적 특징 등을 밝혀내기 위한 학제간 복합 연구로 전환되었으며, 이를 통해 파지릭 문화의 존속 기간, 분포 범위 등 기본적인 사항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파지릭 문화의 사회 구조, 장송 의례와 신앙 등 파지릭인들의 정신세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파지릭 고분에서 확인되는 문물 교류의 실체 파악도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하룐 솜 하난 암각화

몽골 개관

몽골은 아시아의 중앙 내륙에 위치한 국가로 수도는 울란바토르이다. 한국의 도(道)에 해당하는 21개의 아이막(Aimag)과 그 하부에 군(郡)과 면(面)에 해당하는 348개 솜(Sum)과 박(Bagh)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경은 남쪽으로 중국, 북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 카자흐스탄과 맞대고 있다. 국경선의 총 길이는 8,162km, 동서 2,394km, 남북1,259km이다. 전체 면적은 1,564,116㎢로 대한민국 면적의 약 15.7배가 된다. 인구는 2017년 기준 306만명이며, 전체 인구 중 약 110만명이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거주한다. 종족 구성은 몽골족이 94.9%로 대다수를 차지하며, 그 외 투르크계(5%), 기타(0.1%)로 구성되어있다. 종교는 라마교가 90% 이고, 이슬람교도 5% 정도 차지하고 있다.


몽골의 행정구역 명칭
몽골 행정구역 지도 이미지 - 아르항가이 (Arkhangai), 바잉을기 (Bayan-Olgii), 바잉홍거르 (Bayankhongor), 볼강 (Bulgan), 다르항올 (Darkhan-Uul), 도르노드 (Dornod), 도르노고비 (Dornogovi), 돈드고비 (Dundgovi), 고비알타이 (Govi-Altai), 고비숨베르 (Govisumber), 헹티 (Khentii), 호브드 (Khovd), 후브스굴 (Khovsgol), 엄너고비 (Omnogovi), 오르홍 (Orkhon), 어워르항가이 (Ovorkhangai) ,셀렝게 (Selenge), 수흐바타르 (Sukhbaatar), 터브 (Tov), 오브스 (Uvs), 자브항 (Zavkhan)

전반적인 지형은 평균해발 약 1,580m의 고원지대로 사막이 전국토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서부의 알타이 산맥부터 동남부의 평원지대까지 펼쳐져 있다. 중부와 동부는 목축에 적절한 초원지대가 넓게 형성되어 있고 서부는 높고 험준한 산악 지대가 펼쳐져 있다. 서쪽 끝에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에 솟아있는 후이틍 어르길이라는 봉우리가 최고 4,366m, 동부평원지대가 최저지대로 해발 522m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다.

세부지형을 살펴보면 중부의 초원지역, 동부의 산악지역, 남부의 사막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지형구분은 몽골 내외부로 연결된 산맥의 위치와 진행방향에 따라 구분된다. 이 중 서부지역의 알타이 산맥(해발 3,350~4,250m)은 몽골 남부 고비사막에서 서 시베리아 평원까지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1,600km정도 이어진다. 이 산맥에 의해 몽골 서부의 카자흐스탄, 남서부의 중국(위구르 자치구), 북서부의 러시아와 자연 경계를 이루게 된다. 북서 지역의 샤안 산맥(해발 3,000m)은 총 길이 1,750km로 서시베리아 평원에서 몽골의 서북쪽 국경 인근까지 이어진다. 중북부 지역의 항가이 산맥(해발3,650m)은 몽골 중북부 지역에 넓게 형성된 산맥으로 샤안산맥과 동일하게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뻗어있다. 이 산맥은 알타이 산맥, 샤안산맥과 함께 몽골 서부와 북부의 산간지역을 이룬다. 북동쪽에 위치한 헨틴 산맥(해발 2,400m)은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있다. 가장 규모가 작은 산맥으로 주변은 울창한 숲과 초원지대가 형성되 있다. 마지막으로 몽골 동쪽 끝에 위치한 대흥안령 산맥(해발 1,000m)은 총 길이 약 1,500km이며 남북방향으로 이어져 중국 동북3성과 자연경계를 이룬다.

몽골의 수계는 북부 산악지역을 통과하여 바이칼호로 이어지는 셀렝게강, 수도 울란바타르 주변을 흐르는 툴강, 항가이 산맥에서 발원하여 셀렝게 강과 합류하는 오르콘강, 서부지역의 자브한강, 테스강 등이 있다. 몽골에 위치하는 대부분의 강은 몽골 북부의 시베리아 저지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모두 북류하여 바이칼호나 아무르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산지를 따라 흐르기 때문에 하천의 유속은 비교적 빠르다. 셀렝게 강은 몽골 중북부에 위치한다. 항가이 산맥과 헨티산맥에서 발원하여 바이칼 호로 흘러 들어가며 유역 길이 1,024km이다. 오르콘 강은 셀렝게 강의 남서쪽 항가이 산맥에서 발원하여 북쪽의 셀렝게 강과 합류한다. 발원지부터 합류하기 전까지의 길이는 총 1,124km이다. 오논 강은 몽골 동북부에 위치한다. 헨티산맥에서 발원하여 북쪽의 흑륭강과 합류한다. 몽골 국경 내의 유역 길이는 818km, 유역 면적은 94,010㎢이다. 헤룰렌 강은 몽골 동북쪽에 위치한다. 헨티산맥의 남쪽지역에서 발원하여 북쪽의 흑룡강과 합류한다. 몽골 국경 내의 유역길이는 1,264km이다.

고비사막은 몽골의 남부 지역에 동서로 넓게 위치한다. 몽골과 중국에 걸쳐 있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막으로 모래보다는 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규모는 남서쪽에 북동쪽까지 약 1,610km이고 북쪽에서 남쪽까지 약 800km이다.

기후는 강수량이 적고 기온의 변화와 온도 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겨울은 춥고 맑으며 건조하여 거의 눈이 내리지 않으며 평균기온은 -26~-18℃이다. 여름은 따뜻하고 짧으며 평균기온은 17~23℃이다. 연간 강수량은 북부 산악지대는 350mm이고 고비 사막은 100mm인데, 강수량의 3/4이 7~8월에 집중되어 있다.

식생으로는 시베리아 낙엽송시더소나무류자작나무류가문비나무류 등이 있다. 북부 삼림에는 스라소니큰뿔사슴말코손바닥사슴흰표범멧돼지담비와 아시아산 붉은사슴 등이 서식한다. 산간 분지의 초원과 강유역에는 마못과 몽골가젤영양이, 반(半)사막지역에는 낙타야생양야생말곰 등이 산다. 또한 광물 자원도 풍부하여 석탄철광석주석구리아연몰리브덴인회암텡스덴금형석준보석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몽골의 역사

몽골지역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BC3세기경 흉노족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할 때 부터이다. 흉노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연(燕)조(趙)진(秦)의 북쪽에 분포하여 한 대 전기까지 강성하며 중앙아시아에 최초의 유목 제국을 건립했던 북방 유목민족이다. 흉노에 대한 기록은 중국 「사기」 「흉노열전」 , 「한서」 「흉노전」 , 「후한서」 「남흉노전」 등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뤄지고 있는데, 역사사에서 이들의 존재는 기원전 4세기부터 뚜렷한 실체로 등장하고 있다. 전국시대 이후 흉노의 세력이 더욱 강성해지자 연(燕)조(趙)진(秦)의 나라는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북쪽 변방지역에 장성을 쌓아 아들을 방어하고자 하였다. 기원전 221년 대륙을 통일한 진의 시황제는 장군 몽염과 30만 병사를 보내 오르도스 지역에서 흉노를 몰아내고 만리장성을 건설한다. 그러나 진 말기의 혼란을 틈타 흉노의 두만 선우가 오르도스 지역을 되찾고, 아들 묵특 선우(기원전 209~기원전 174)에 이르러 동방에 있는 동호를 토멸하고 서방의 월지를 패주시켜 북아시아 전 영토를 병합하였다. 기원전 200년에는 한 고조 유방을 묵특선우가 산서성의 평성에서 포위하여 승리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평성(平城)의 치(恥)’라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흉노와 한은 형제의 맹약을 맺게 된다. 이러한 화친은 60여년간 지속되면서 흉노는 동서 교역로의 상권까지 장악하여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굳건히 한다.

그러나 한 무제대에 이르러 흉노의 내분과 서부 진영 혼야왕와 일축왕의 투항(기원전 60년)하면서 흉노는 동서로 분열되고, 선제대에는 다섯 선우가 병립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기원후 48년 후한 대에는 남북으로 분열되기에 이른다. 남흉노는 한에 내속하면서 유목민의 성격을 잃어간다. 반면 북흉노는 고비사막 북쪽에 머무르면서 남흉노와 전쟁을 벌이는 한편 후 한과도 적극적인 교역활동을 한다. 그러나 북흉노는 점차 남흉노에게 밀려 몽골 오르혼강 서쪽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세력이 크게 축소되 간다. 이 과정에서 흉노는 점차 중국과 다른 이민족에게 동화되어 갔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흉노영역도
흉노영역도 이미지 (국립중앙박물관, 2009, 「도르릭나스르 흉노무덤」.전재)

흉노가 붕괴되는 2세기경에는 동부지역에서 들어온 선비가 일시적으로 흉노 세력을 대신하지만 곧 약화되고 몽골지역은 한동안 공백 상태에 빠져든다. 이후 5세기 초 유연이 등장하여 몽골 초원을 통일하면서 다시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중국 북부지역을 통일한 북위의 견제로 크게 발전하지 못한다. 이후 6세기 중반 알타이 산맥에서 초원으로 진출한 돌궐(투르크)이 투르크계 유목부족을 통합하고 552년 유연을 몰아내면서 새로운 유목국가를 건설하였다. 이 시대을 일반적으로 돌궐 제1제국이라 부르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투르크 유목민의 시대가 전개된다. 돌궐은 서위, 북주, 동위, 북제로 분열된 북중국의 상황을 이용하여 활발한 교류와 함께 대외 확장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거란, 에프탈, 사산조 페르시아를 패퇴시키고 동로마제국과도 교섭을 벌였다. 그 결과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동으로 대흥안령 산맥부터 서로는 현재 우즈베기스탄 초원지대에 이르는 거대한 유목제국을 이룩했다. 돌궐제국은 7세기 초에 동서로 분열되면서 동돌궐은 630년, 서돌궐은 647년에 각각 당(唐)에 붕괴되어 기미지배를 받게 된다. 이후 돌궐은 당(唐)의 지배를 약 50여년간 받다가 680년 초에 다시 몽골초원에 복귀해 국가를 재건한다. 이시기를 돌궐 제 2제국이라고 하는데 약 60여년 저도 유지된다.

돌궐은 740년 경 왕위 계승 분쟁으로 와해되고 뒤를 이어 위구르가 몽골초원에 새로운 유목국가를 건설한다. 이후 안사의 난으로 약화된 당을 도와 혼인관계를 맺는 등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위구르는 840년 경 계승 분쟁 중 키르기즈의 공격으로 붕괴된다. 이때부터 몽골 지역의 투르크 족은 서방으로 이주하여 투르키스탄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형성하게 된다. (정재훈,2008, 「몽골의 고대 투르크 비문」 「돌에 새긴 유목민의 삶과 꿈」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13세기에 칭기스 칸이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타타르족을 패퇴시킨 뒤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만 연안 지역 및 카프카스 남부를 차례로 정복했다. 1234년 칭기스 칸의 후계자인 오고타이는 중국의 금(金)나라를 정복했고, 1279년 칭기스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 원을 건립하였다. 몽골 최후의 칸인 리그단 칸(1604~34 재위)은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만주족에 대항하여 그들의 본거지를 지키기 위해 많은 몽골 부족을 통일했다. 그가 죽은 뒤, 몽골족은 만주족에 정복되어 중국 청(淸)나라의 일부가 되었다.

1912년에 청나라가 몰락한 뒤 몽골의 군주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 대한 몽골의 독립을 선언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제정이 무너지자 몽골은 다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러시아 내전 때인 1920년에 벨라루스군 5,000명이 몽골을 침략했다. 그러자 담다니 쑤흐바타르가 모스크바의 불셰비키 정부의 지원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러시아 적군(敵軍)의 도움을 얻어 벨라루스군을 격퇴시켰으며, 1921년에는 중국인들마저 몰아냈다.

1924년 11월 26일 몽골 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이때부터 소련과 몽골은 정치경제문화이념적으로 밀집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중소 관계가 악화되자 몽골과 중국의 관계도 더욱 나빠졌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어 1986년에는 몽골과 중국 사이에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다. 이후 1990~1991년 동유렵과 소련을 휩쓴 민주화 혁명에 동참해 주요 정치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2000년에는 헌법개정으로 의회와 내각의 권력을 대폭 강화하여 의원내각제적 성격을 강화하였다. 대한민국과는 1990년 3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1990년 6월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한국 비교 연표

한국 비교 연표

목적

우리 연구소에서는 한민족의 기원을 비롯하여 선사와 고대 한국과 몽골의 문화 교류상을 밝히기 위해 2008년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와 협약을 맺고 2009년부터 몽골 문화유산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몽골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 위치와 특유의 자연 환경으로 인해 인류 문명의 발전과 동서양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인류 문명 발전에 있어서 몽골지역은 유목경제를 기반으로 국가 단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국가 단계로 나아가는 일반적인 사회 발전 양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몽골지역은 전 세계 고고학자들에 의해 그러한 사회발전이 가능했던 원인과 과정을 밝히기 위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몽골은 선사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교류의 한 축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몽골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연구는 구석기 암각화, 히르기수르, 사슴돌, 파지릭 고분, 판석묘, 찬드만유적, 흉노무덤 등이 진행되었다. 이 중 암각화, 히르기수르, 판석묘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문화상과 유사하여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흉노무덤은 중국 사서의 한(漢)나라와 흉노 관계 기사를 고고학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문화의 전파와 교류 측면에서 청동기의 전파와 관련하여 청동 유물에 대한 연구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몽골지역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연구와 깊은 관련을 맺으며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관련 조사 성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1997년부터 몽골 셀렝게강, 헤를렝강 유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1998년에는 우굴룩칭골 유적에서 석기시대 유물을 수습하였고, 1999년에는 이흐 후틀 유적에서 히르기수르와 몽골시대 무덤, 토기, 기와 가마터를 발굴조사 하였다. 2000년에는 모린 톨고이 고분군, 2001년에는 호드긴 톨고이 고분군, 2006~2010년에서 도를릭나르스 고분, 2012~2016년에는 흉노시대 취락인 고아 도브 성터를 조사하였다. 이러한 조사성과를 바탕으로 2007년에는 ‘초원의 대제국 흉노’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2008년에는 한-몽 공동학술조사 1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지속적으로 몽골과 관련된 특별전과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07년부터 몽골 서북부지역과 고비-알타이지역의 암각화를 조사하여 한국의 청동기시대 암각화와 주제 및 양식의 천연성과 고구려 고분 벽화의 개마무사도와 동일한 도상의 암각화를 확인하였다. 2012년에는 알타이문명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몽골 알타이 산맥에 위치한 바양울기 아이막의 민족과 언어, 고고유적과 조형예술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중앙문화재연구원과 동서문물연구원은 2016년부터 원형 적석의 중형급 흉노 무덤의 구조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치헤스틴 저 흉노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연구성과와 함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6~2007년까지 몽골 각 지역의 주요 암각화와 사슴돌에 대한 탁본조사를 실시하여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와 몽골의 친연성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연구성과가 주로 흉노무덤과 암각화에 한정되어 있고, 조사지역 또한 몽골 동부와 중부 지역으로 제한되어있어 선사와 고대 몽골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확장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그동안 현지 여건상 상대적으로 문화유적에 대한 정보가 덜 알려진 몽골 서부의 고비-알타이 아이막에 대한 문화유적의 분포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몽골은 문화유적의 효율적인 관리와 보존 계획 수립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고비-알타이 아이막과 몽골 서부지역의 고고유적 자료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 연구소에서는 이러한 조사를 통해 전체적인 유적의 분포 현황과 특징을 살핌으로서 향후 관련 연구의 기초자료를 확보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비-알타이 아이막 고고유적 조사 이후 환경의 변화에 따른 영구동토층의 감소로 인하여 고산지역에 축조된 파지릭 고분이 파괴되기 이전에 연구의 진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되었고, 2015년부터 현재까지 몽골 알타이 산악지역에 위치한 바양울기 아이막의 파지릭 고분에 대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추진체계

추진체계 표

조사경과

2008년
  • 협약체결
    • - 2008.9.30.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와 「한몽 문화유산의 연구 및 보존을 위한 공동연군」협약 체결
2009년
  • 고고유적 지표조사
    • - 기간 : 2009. 6. 4 ~ 2009. 7. 4
    • - 대상지역 : 몽골 동부~중부지역에 위치한 찬드마니 솜, 비게르 솜, 하룐솜, 바양 올 솜
    • - 조사내용 : 29개 유적 307개 유구조사
  • 고고유적 발굴조사 : 찬드마니 솜 샤하르 털거이 7호분
  • 인류유적학민속분야 공동 조사
    • - 기간 : 2009. 8. 19 ~ 2010. 9. 1
    • - 조사내용 : 몽골 고비-알타이 아이막 현지인의 DNA 연구용 자료 확보
2010년
  • 고고유적 지표조사
    • - 기간 : 2010. 8. 24 ~ 2010. 9. 17
    • - 대상지역 : 몽골 중부 ~ 서부지역에 위치한 하룐 솜, 투그르그 솜, 보가트 솜
    • - 조사내용 : 52개 유적 313개 유구조사
  • 인류유전학 조사
    • - 기간 : 2010. 8 13 ~ 2010. 8. 30
    • - 조사내용 : 몽골 동부 도르노드 아이막 현지인의 DNA 연구용 자료 확보
  • 보고서 발간 : 「몽골의 문화유산」 I
2011년
  • 고고유적 지표조사
    • - 기간 : 2011. 8. 6 ~ 2010. 8. 21
    • - 대상지역 : 몽골 서북부지역에 위치한 보카드 솜, 통힐 솜, 다르비 솜
    • - 조사내용 : 109개 유적 1,383개 유구조사
  • 인류유전학 조사
    • - 기간 : 2010. 8 29 ~ 2010. 9. 9
    • - 조사내용 : 몽골 중부지역 현지인의 DNA 연구용 자료 확보
  • 보고서 발간 : 「몽골의 문화유산」 II
2012년
  • 협약 체결 갱신(2012. 4. 26)
  • 국제학술포럼 개최(2012. 4. 27) : 「한몽 문화유산 공동연구 국제학술 포럼」
  • 보고서 발간 : 「몽골의 문화유산」 Ⅲ
  • 몽골의 문화유산 정보시스템 구축
2013년
  • 고고유적 지표조사
    • - 기간 : 2013. 8. 1 ~ 2013. 8. 28
    • - 대상지역 : 몽골 서부 고비-알타이 아이막의 후흐머리트 솜, 바양 올 솜, 자르갈란 솜, 타이시르 솜, 델게르 솜, 예슨볼락 솜, 에르덴 솜, 촉트 솜, 샤르가 솜
    • - 조사내용 : 278개 유적, 2,316개 유구조사
2014년
  • 고고유적 지표조사
    • - 기간 : 2014. 6. 8 ~ 2014. 6. 22
    • - 대상지역 : 몽골 서부 고비-알타이 아이막의 자르갈란 솜, 알타이 솜
    • - 조사내용 : 47개 유적, 649개 유구조사
  • 고고유적 발굴조사
    • - 기간 : 2014. 6. 8 ~ 2014. 6. 22
    • - 대상지역 : 몽골 서부 고비-알타이 아이막의 자르갈란 솜 주르흐 올 유적
    • - 조사내용 : 청동기시대 무덤 1기, 흉노시대 무덤 4기 발굴조사
  • 인류유적학 조사
    • - 기간 : 2014. 6. 23 ~ 2014. 7. 4
    • - 조사내용 : 몽골 동부 헨트 아이막, 수흐바타르 아이막 현지인 DNA 연구용 자료 확보
  • 보고서 발간 : 「몽골의 문화유산」 Ⅳ
2015년
  • 고고유적 지표조사
    • - 기간 : 2015. 6. 2 ~ 2015. 6. 19
    • - 대상지역 : 몽골 서북부 바양울기 아이막의 삭사이 솜, 쳉겔 솜, 울란호스 솜
    • - 조사내용 : 29개 유적, 277기 파지릭고분 조사
  • 보고서 발간 : 「몽골의 문화유산」 Ⅴ
2016년
  • 고고유적 발굴조사
    • - 기간 : 2016. 5. 13 ~ 2016. 6. 14
    • - 대상지역 : 몽골 서북부 바양울기 아이막의 쳉겔 솜 시베트 하이르한 유적
    • - 조사내용 : 파지릭 고분 2기 조사
  • 보고서 발간 : 「몽골의 문화유산」 Ⅵ
2017년
  • 고고유적 발굴조사
    • - 기간 : 2017. 5. 12 ~ 2017. 6. 16
    • - 대상지역 : 몽골 서북부 바양울기 아이막의 쳉겔 솜 시베트 하이르한 유적
    • - 조사내용 : 파지릭 고분 2기, 주변 소형고분 3기 조사

추진체계

  • 2013년 : 미조사 지역 지표조사 완료(전체 17개 솜 중 7개 솜 완료)
  • 2014~2015년 : 청동기 고분유적 발굴조사, 지표조사 보완
  • 2016년 : 2차 공동조사 성과 학술포럼 및 3차 공동조사 MOU 체결
  • 보고서 발간, 전문가 초청 연차별 지속적 실시
2018년
  • 바양울기 아이막 시베트 하이르한 유적 파지릭 고분 3기, 주변 소형고분 4기 조사
  • 「몽골의 문화유산」 Ⅶ 발간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 공동연구 10주년 기념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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