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지장(列聖誌狀)
요약설명
본 권은 ≪열성지장통기 列聖誌狀通記≫ 21권으로 景宗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의 행장과 죽책문, 관례교명문, 애책문, 의릉표석음기와 恭孝定穆端懿王后沈氏와 敬純孝仁惠穆宣懿王后魚氏의 행록과 혜릉지문, 봉 왕세자빈교명문, 죽책문, 애책문, 빈궁 정작문, 왕세자제 빈궁문, 추봉 왕비교명문, 옥책문, 영휘전악장, 추상휘호 옥책문, 혜릉 표석음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 표지에 景宗大王 端懿王后 宣懿王后 列聖誌狀十二라고 기재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본 권은 ≪열성지장통기 列聖誌狀通記≫ 21권으로 景宗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의 행장과 죽책문, 관례교명문, 애책문, 의릉표석음기와 恭孝定穆端懿王后沈氏와 敬純孝仁惠穆宣懿王后魚氏의 행록과 혜릉지문, 봉 왕세자빈교명문, 죽책문, 애책문, 빈궁 정작문, 왕세자제 빈궁문, 추봉 왕비교명문, 옥책문, 영휘전악장, 추상휘호 옥책문, 혜릉 표석음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 표지에 景宗大王 端懿王后 宣懿王后 列聖誌狀十二라고 기재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21장을 기록한 것이다. (誤記한 것 같다.) - 권수제 오른쪽 하단에 嘉林○德○○源○의 인장이 찍혀있다. (전서) - 권말 2장은 거의 다 훼손되어 남아있는 부분이 적다. - 활자는 1573년 湖陰字를 사용한 듯 하나 행자수가 일치하지 않으며, 자본이 불명하다. <정재륜(鄭載崙)> 1648(인조 26)∼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부마.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수원(秀遠), 호는 죽헌(竹軒). 창연(昌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광성(廣成)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태화(太和)이며, 어머니는 민선철(閔宣哲)의 딸이다. 좌의정 치화(致和)에게 입양되었다. 1656년(효종 7) 효종의 다섯째 딸 숙정공주(淑靜公主)와 혼인하여 동평위(東平尉)가 되었다. 숙정공주가 일찍 죽고, 1681년(숙종 7) 독자이던 효선(孝先)이 요절하자 재취할 것을 상소하여 왕의 허락을 받았으나, 대간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이 때부터 부마들은 재취할 수 없다는 법규가 정하여졌다. 1670년(현종 11) 사은정사로, 1705년에는 동지정사로, 1711년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로 청나라에 세 차례나 다녀왔다. 1716년 ≪열성지장통기 列聖誌狀通記≫를 증보, 간행하였다. 또한, 저서로 ≪공사견문록 公私見聞錄≫·≪한거만록 閑居漫錄≫ 등 수필형식의 기록이 있다. 기국(器局)이 준위(俊偉)하고 생활이 검소하여 모두 왕의 사위인 줄을 몰랐다고 한다. 시호는 익효(翼孝)이다. <경종대왕> 조선의 제20대 왕(재위 1720∼1724). 재위 동안은 노론, 소론 당쟁의 절정기였다. 이복동생인 세제(영조)가 노론의 지지로 대리청정 하다가, 소론의 지지로 다시 친정했다. 김창집 등 노론 4대신을 사사, 노론을 모두 숙청한 신임사화가 있었다. 재위기간 1720년~1724년 가족관계 왕비 단의왕후(端懿王后), 선의왕후(宣懿王后), 아버지 숙종(肅宗), 어머니 희빈 장씨(禧嬪張氏) 휘(諱) 윤(?). 자 휘서(輝瑞). 숙종의 아들. 어머니는 희빈 장씨(禧嬪張氏). 비(妃)는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 계비는 어유구(魚有龜)의 딸 선의왕후(宣懿王后). 1690년(숙종 16) 송시열(宋時烈) 등이 반대하는 가운데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이복동생인 연잉군(延?君: 뒤의 영조)은 노론(老論)의 지지를 받고 그는 소론(少論)의 지지를 받았다. 1717년 대리청정(代理聽政)하였으나, 그해 숙종이 몰래 노론의 이이명(李?命)을 불러 세자가 무자다병(無子多病)함을 이유로 그의 즉위 후의 후사는 연잉군으로 정할 것을 부탁한 일이 있어 노 ·소론이 크게 대립하였다. 1721년 연잉군을 세제(世弟)로 책봉한 뒤 다시 노론이 그의 병약함을 이유로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대리청정의 부당함을 극간(極諫)하는 소론 이광좌(李光佐)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친정(親政)하였는데, 김일경(金一鏡)의 탄핵으로 세제 대리청정의 발설자인 김창집(金昌集) ·이이명 ·조태채(趙泰采) ·이건명(李健命) 등의 노론 4대신을 유배보냈다. 1722년 노론이 시역(弑逆)하고 이이명을 추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告變)이 있자, 유배 중인 노론 4대신을 사사(賜死)한 뒤 노론을 모두 숙청하였다. 이것이 신임사화(辛壬士禍)이다. 이후 소론의 과격파인 김일경 중심의 정권은 노론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벌여서 그의 재위 4년 동안은 당쟁(黨爭)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능은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懿陵)이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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