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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조수릉표(文祖綏陵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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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문조 수릉표는 경기도 구리시 안창동에 위치하고 있다.
익종은 조선 24대 임금 헌종의 부친이며 추존왕(追尊王)이다. 4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1세에 관례를 치르고, 부사 조만영의 딸을 왕세자빈으로 맞이해서 아들 헌종을 두었다. 외척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순조의 뜻에 따라 19세에 대리청정을 시작하였고, 1830년 2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수릉의 비각 내에는 두 기의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1890년 익종과 신정 왕후를 합봉(合封)한 뒤 세운 합봉비이다. 다른 하나는 1902년에 대한제국 선포 후인 1899년 익종과 신정 왕후를 문조 익황제(文祖翼皇帝)와 신정 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한 사실을 반영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면과 후면 모두 고종이 직접 짓고 쓴 어필(御筆)이다. 이 어필을 탁본한 것이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남아 있다.
비신 전면(前面)에는 전서체로 '대한문조익황제수릉신정익황후부우(大韓文祖翼皇帝綏陵神貞翼皇后祔右)'라 쓰여 있고, 후면(後面)에는 여러 차례 존호를 올린 사실과 1899년 황제와 황후로 추존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비는 머릿돌과 비신, 받침돌로 구성되었고 머릿돌은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비각(碑閣)이 건립되어 있어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판독문/해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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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문
『조선왕릉 디지털백과』
대한 문조익황제 수릉 신정익황후부우
문조 체원 찬화 석극 정명 성헌 영철 예성 연경 융덕 순공 독휴 홍경 홍운 성렬 선광 준상 요흠 순공 우근 탕정 계천 건통 신훈 숙모 건대 곤후 광업 영조 장의 창륜 행건 배녕 기태 수유 희범 창희 입경 형도 성헌 소장 치중 달화 계력 협기 강수 경목 준혜 연지 굉유 신휘 수서 우복 돈문 현무 인의 효명익황제에게 소자(고종)가 왕위를 이은 지 27년째 되는 경인년(고종27, 1890)에는 '치중 달화 계력 협기'라는 존호를, 임진년(고종29, 1892)에는 '강수 경목 준혜' 연지'라는 존호를 추상하였다. 광무 3년인 기해년(고종36, 1899) 11월에 황제로 추존하여 공손히 '익황제'라는 시호를, '문조'라는 묘호를 올렸으며, 임인년(고종39, 1902)에 '굉유 신휘 수서 우복'이라는 존호를 추상하였다.
황후 효유 헌성 선경 정인 자혜 홍덕 순화 문광 원성 숙렬 명수 협천 융목 수녕 희강 현정 휘안 흠륜 홍경 태운 창복 희상 의모 예헌 돈장 계지 경훈 철범 신정익황후 조씨에게 소자(고종)가 왕위를 이은 지 27년째 되는 경인년(고종27, 1890)에는 '의모'라는 존호를, 임진년(고종29, 1892)에는 '예헌 돈장'이라는 존호를 추상하였다. 광무 3년인 기해년(고종36, 1899) 11월에 황후로 추존하여 공손히 '익황후'라는 시호를 올리고 임인년(고종39, 1902)년에 '계지'라는 존호를 추상하였다. 표석에는 짐인 소자가 공손히 글을 짓고 아울러 글씨도 썼는데, 이번에 원래 표석 옆에 또 표석을 세우고 전면과 추기에 공손히 글을 써서 삼가 소자의 미미한 정성을 펼치노라.
광무 6년(고종39, 1902) 〇월 〇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