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사 장유화상 기적비(駕洛國師 長遊和尙 紀蹟碑)
- 시대
- 일제강점기
- 연대
- 1915년
- 유형
- 비문
- 크기
- 전체높이 246.8cm, 비신높이 184.8cm, 너비 50.5cm, 두께 24.5cm
- 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동 대청동 1129 장유사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 /각자 /서자
- 허염(許廉) / 미상 / 노상욱(盧相旭)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장유사 장유화상기적비는 장유화상(長遊和尙)의 행적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비이다. 건립 연도는 1915년이다. 비문에 새겨진 장유화상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면 성은 허씨이며, 이름은 보옥(寶玉)이다. 누이인 보주태후 허씨와 함께 가락국에 들어왔으며, 누이가 가락국왕과 혼인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음에도 부귀를 멀리하고 불모산에 들어가 은둔하며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장유화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비의 유형은 지붕모양의 머릿돌과 방부형의 받침돌이 놓여 있는 옥개방부형이며, 재질은 모두 화강암이다. 비신은 앞면에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駕洛國師長遊和尙紀蹟碑)’라는 제명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비문은 뒷면과 오른쪽면, 왼쪽면 순서대로 이어지는데 뒷면과 오른쪽면 3행까지는 장유화상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왼쪽면까지는 연화질과 시주질, 찬자(撰者)와 서자(書者) 등이 새겨져 있다. 이 비문을 지은 사람은 허렴(許廉)이며, 글씨를 쓴 사람은 노상욱(盧相旭)이다. 각수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석수(石手)는 임억조(林億祚)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글자가 얕게 새겨져 있으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모될 가능성이 있으며, 가락국의 불교사와 장유화상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보존을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판독문/해석문
해석문 | 조정곤 | ||
판독문 | 『금석문 탁본 조사보고서(2021)』 |
참고문헌
단행본 | 2021 | 『2021 금석문 탁본 조사보고서-경상남도·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 |
단행본 | 2010 | 『한국의 사찰문화유산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Ⅱ |
단행본 | 1999 | 『김해금석문총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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