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영세불망비(金泰熙愛民淸德碑)
- 시대
- 조선
- 연대
- 1881년(고종 18)
- 유형
- 비문
- 크기
- 높이 76.5cm, 너비 32.8cm, 두께 11.8cm
- 소재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 산45
- 서체
- 해서
- 찬자 /각자 /서자
- 미상 / 미상 / 미상
- 지정사항
- 비지정유산
- 연구정보
개관
이 비는 2012년 주보원(1936년 생,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54-3)에 의해 울진군 금강송면 광회리 비석거리에서 발견되었다. 이 비가 발견됨으로 인해 울진에서 울진현령 김태희 관련 선정비는 모두 5기로 확인되었다. 이 비가 위치한 곳은 금강송면 광회1리 회룡천 1길 38 민가 서쪽 담벼락 옆 자연바위 아래이다. 비는 비대 없이 비신으로만 이루어져 남향하여 서 있는데, 재질은 대리석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76.5cm, 너비 32.8cm, 두께 11.8cm이며,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비신의 상부는 반원형으로 하여 비수를 표현하였다. 비의 앞면과 양 옆면은 물갈이를 하였으며, 윗면과 뒷면은 물갈이를 하지 않아 정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명문은 앞면에만 해서체로 음각하였다. 입비 시기는 1881년(고종 18) 3월이다. 특히 이 비에는 광회리(廣回里)의 원래 지명인 ‘광비(廣比)’가 명문으로 표기되어 있어, 조선시대 울진 지역의 역원 중 한 곳인 광비원(廣庇院) 터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즉 이 비에 금강송면 광회리의 옛 지명인 ‘광비(廣比)’의 한자가 ‘견줄 비(比)’로 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역원 이름인 ‘광비원(廣庇院)’에는 ‘덮을 비(庇)’자가 사용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광비원(廣庇院)’으로 ‘덮을 비(庇)’가 사용되었고, 『관동지(關東志)』, 『대동지지(大東地志)』, 『관동읍지(關東邑志)』에는 ‘광비원(廣比院)’으로 ‘견줄 비(比)’자가 사용되었다. 이로 볼 때 18세기 중엽까지는 ‘광비’의 지명에 ‘덮을 비(庇)’자가 사용되다가 19세기 전엽부터는 ‘견줄 비(比)’자로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판독문/해석문
해석문 | 『울진의 금석문 2』 | ||
판독문 | 『울진의 금석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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