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개방한
대구 동화사 금당암 동·서 삼층석탑(大邱 桐華寺 金堂庵 東·西 三層石塔)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개관
대구(大邱) 동화사(桐華寺)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에 대한 기록. 금당암동탑(金堂庵東塔)은 그 축조 연대는 정확치 않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현재 보물로 지정 되어있다. 이 탑은 처음 축조된 이래 1번 옮겨지고 3번에 걸쳐 중수(重修)되었다. 제일지석(第一誌石)에 의하면, 탑은 원래 처음 강당 남쪽에 세워졌는데, 신라 헌강왕(憲康王) 1년(875년) 을미(乙未) 9월경에 금당(金堂)아래에 새로운 탑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도인대덕(道印大德)․성가대덕(聖迦大德)등이 중심이 되어 금당 위로 옮겼으며, 이 과정에서 탑 속에서 많은 사리를 담은 구리상자가 나왔다고 한다. 이후 중종(中宗) 39년[가정(嘉靖) 23년](1544년) 갑진(甲辰)에 도수(道修)와 대일(大馹)등이 중심이 되어 처음 중수하였는데 이때 사리 1천여매가 나왔다고 한다. 제이지석(第二誌石)에 의하면 정조(正祖) 18년(1794년) 갑인(甲寅)에 2번째로 중수되었는데 이때 사리를 은합(銀盒)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제삼목제지판(第三木製誌板)에 의하면, 고종(高宗) 34년(1897년) 임인(壬寅)에 태희(泰羲) 등이 중심이 되어 3번째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판독문/해석문
전체 2개
금석문검색 - 판독문/해석문
해석문
허휘준
동화사금당암동탑지(桐華寺金堂庵東塔誌)
[제1 지석]
무릇 3층 석탑은 가람(伽藍)이 완성될 때부터 건부(乾符) 2년 9월까지 강당 남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금당(金堂)아래에 새로운 탑이 조성되자 부득이하게 탑을 강당 위로 옮겼다. 대덕(大德), 삼강(三剛)과 학생 조교 등이 불원(佛院)을 재촉하여 금당에서 탑을 위쪽에서부터 부서뜨리니 돌 속에 사리를 담은 구리상자가 있었다. 병을 열어 보니 1백8십1□□□색이 있어(이상 전면)
반딧불이 겹쳐져 있는 듯하고, 양은 □□□가 넘었으며, 덕(德)이 높은 승려들이 □□□□을 찬탄하였으며, 점차 많은 대중들이 기뻐하며 눈으로 사리를 들여다보았다. 이중에 일구(一軀)는 아래 탑에, 백여 개는 여기에 있었다.
이때 도인대덕(道印大德)?□□□태대덕(□□□泰大德)?성가대덕(聖迦大德)?승경대덕(僧憬大德)?□□□여대덕(□□□茹大德)?개천대덕(開天大德)?영원대덕(令元大德)?진장대덕(眞藏大德)?□□□권대덕(□□□卷大德) (이상 후면) 상좌(上座) 성일법사(聖一法師)?정좌(貞座) 홍□□□법사(洪□□□法師) 등이 있었다. (오른 측면)
앞은 오직 바로 종관법사(宗觀法師)와 해달법사(海達法師) (왼쪽 측면)
자(自)□ (위면 墨書)
가정(嘉靖)23년 갑진(甲辰) 중수(重修). (아래면 墨書)
[제이지석(第二誌石)]
대구동화사동탑기(大邱桐華寺東塔記)
이 탑은 고난을 겪고 비바람을 맞으면서 층이 기울어지자 비구(比丘) 도수(道修)와 대일(大馹) 등이 발심(發心)하여 탑을 열어보니 사리 1천여 매가 있었는데, 바로 세존삼매(世尊三昧)의 불 속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처음 (이 탑은) 강당 남쪽에 봉안되었고 건부 2년 을미(乙未)에 이르러 금당 위쪽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가정 23년 갑진(甲辰)에 중수되었으며, 건륭(乾隆) 59년 (이상 앞면)
갑인(甲寅)에 중수되어 은합(銀盒)에다 사리를 담았다. 아! 불멸(佛滅) 후 3천 7백 여 년, 승려와 속인[緇素]이 같이 (부처님의) 참된 자취를 우러러보며 함께 부처님의 열반(佛化)에 오르노라.
4월(月) 일(日) 바로잡아 제자 영파(影波), 성규(聖奎)가 삼가 기록함. 화주(化主) 도수 비구. 수탑도감(修塔都監) 대일 개민(開敏) 유권(維勸). 양공(良工) 유탄(有坦) 만관(萬寬). 권오(勸旿)가 쓰다. (이상 뒷면)
[제3 목제 지판(第三 木製誌板)]
대구동화사동탑기(大邱桐華寺東塔記)
탑의 이전 행적은 앞의 기록에 실어놓았다. 지금은 대청(大淸) 광서(光緖) 23년 한양(漢陽) 개국 5백5년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바꾸고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친 임인(壬寅) 년에 중수하니 이것이 누구의 힘인가. 이에 어떤 대사(大師)가 그 지팡이를 내리치며 큰소리로 선창하니 태희(泰羲)가 그에 부응하자 온 산이 점차로 함께 진동하였지만 깨트릴 수가 없었다. 이에 (이상 앞면)
장인(匠人)을 불러 정으로 쪼아보았지만, 정성이 쌓이고 모아진 것이라 탑이 꼭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았으며, 노력과 수고로 신성하게 이루어져 그 층□(層□)이 보배로 왔다. 또 청련화(淸蓮花)가 솟아나 수면에 겹겹이 □니, 자태와 용모가 하얀 달과 같고 둥글어 반은 빈 듯 하도다. 아! 化佛은 서천(西天)에 계시고 진신(眞身)은 동토(東土)에 계시는 구나. 말기 중생으로 하여금 귀가되고 눈이 되도다. 이 수승(殊勝)한 연(緣)에 의지하여 정각(正覺)을 이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