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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有唐新羅國故知異山雙谿寺敎諡眞鑑禪師碑銘  幷序      前西國都統巡官承務郞侍御史內供奉賜紫金漁袋2臣崔致遠奉敎撰幷書篆額 夫道不遠人3人無異國是以東人之子爲釋爲儒必也西浮大洋重譯從學命寄刳木4必懸寶洲 虛往實歸先難後獲5亦猶采玉者不憚崑丘6之峻探珠者不辭驪壑7之深遂得慧炬則 光融五乘8嘉肴則味飫六籍9竟竟使千門入善能令一國興仁而學者或謂身毒10與闕里11之說敎也分流異體圜鑿方枘12互相矛楯守滯一隅嘗試論之說詩者不以文害辭不以辭害志13 禮所謂言豈一端而已夫各有所當14故廬峰慧遠15著論謂如來之與周孔發致雖殊所歸一揆體極不兼應者物不能兼受故也16 沈約17有云孔發其端釋窮其致眞可謂識其大者始可 與言至道矣至若佛語心法玄之又玄名不可名說無可說雖云得月指或坐忘終類係風影難行捕然陟遐自迩取譬何傷且尼父謂門弟子曰予慾無言天何言哉18則彼淨名之黙19 對文殊 善逝20之密傳迦葉21不勞鼓舌能叶印心言天不言捨此奚適而得遠傳妙道廣耀吾鄕豈異人乎禪師是也禪師法諱慧昭俗姓崔氏其先漢族冠盖22山東隋師征遼多沒驪貊23 有降志而爲遐甿者爰及聖唐囊括24四郡今爲全州金馬25人也父曰昌元在家有出家之行母顧氏嘗晝假寐夢一梵僧謂之曰吾願爲何阿(方言謂母)之子因以瑠璃甖爲寄未幾娠 禪師焉生而不啼迺夙挺銷聲息言之勝牙也旣齔從戱必火賁葉爲香采花爲供或西嚮危坐移晷未嘗動容是知善本固百千劫前所栽植非可跂而及者自丱弁26志切反哺27跬步 不忘而家無斗儲又無尺壤可盜天時28者口腹之養惟力是視29 乃裨販娵隅30爲贍滑甘31之業手非勞於結網心已契於忘筌32能豊啜菽之資33允叶采蘭之詠34曁種囏棘35負土成墳迺曰鞠 育之恩聊將力報希微36之旨盍以心求吾豈匏瓜37壯齡滯跡遂於貞元卄年38詣歲貢使求爲榜人寓足西泛多能鄙事視險如夷揮楫慈航超截苦海及達彼岸告國使曰人各有志請 從此辭遂行至滄州39謁神鑑40大師投體41 方半大師怡然曰戱別匪遙喜再相遇遽令削染頓受印契若火沾燥艾水注卑邍42然徒中相謂曰東方聖人於此復見禪師形貌黯然衆不名 而目爲黑頭陀43斯則探玄處黙眞爲漆道人44後身豈比夫邑中之黔能慰衆心45而已哉永可與赤頿46 靑眼47以色相顯示矣元和五年48受具於崇山少林寺49瑠璃壇則聖善50前夢宛若合符 旣瑩戒珠復歸橫海51聞一知十茜絳藍靑雖止水澄心而斷雲浪跡粵有鄕僧道義52先訪道於華夏邂逅適願西南得朋53四遠參尋證佛知見54義公前歸故國禪師卽入終南55登萬仞之 峯餌松實而止觀寂寂者三年後出紫閣56當四達之道織芒屩而廣施憧憧者又三年於是苦行旣已修他方亦已遊雖曰觀空豈能忘本乃於大和四年57來歸大覺上乘照我仁域 興德大王飛鳳筆迎勞曰道義禪師曏已歸止上人繼至爲二菩薩昔聞黑衣之傑58今見縷褐之英彌天59慈威擧國欣賴寡人行當以東雞林之境成吉祥60之宅也始憩錫於尙州露岳 長柏寺61毉門多病來者如雲方丈62雖寬物情自隘遂步至康州63知異山有數於菟64哮吼前導避危從坦不殊兪騎65從者無所怖畏豢犬如也則與善无畏三藏66結夏靈山猛獸前路深入 山穴見牟尼立像宛同事跡彼竺曇猷67之扣睡虎頭令聽經亦未傳媺於僧史也因於花開谷68故三法和尙蘭若遺基纂修堂宇儼若化成洎開城三年69 愍哀大王70驟登寶位深託玄慈71降璽書餽齊費而別求見願禪師曰在勤修善政何用願爲使復于王聞之愧悟以禪師色空雙泯定惠俱圓降使賜號爲慧昭昭字避72 聖祖廟諱易之也73仍貫籍于大皇龍寺74徵詣京邑星使75往復者交轡于路而岳立不移其志昔僧稠76拒元魏77之三召云在山行道不爽大通棲幽養高異代同趣居數年請益者稻麻成 列殆無錐地遂歷銓奇境得南嶺之麓爽塏居最經始78禪廬却倚霞岑俯壓雲澗淸眼界者隔江遠岳爽耳根者迸石飛湍至如春谿化夏徑松秋壑月冬嶠雪四時變態萬象交光百 籟和唫千巖竟竟秀嘗遊西土者至止咸愕視謂遠公東林移歸海表蓮花世界非凡想可擬壺中別有天地79則信也架竹引流環階四注始用玉泉爲牓屈指法胤則禪師乃曹溪80之玄 孫是用建六祖影堂彩飾粉墉廣資導誘經所謂爲悅衆生故綺錯繪衆像者也大中四年81正月九日詰旦告門人曰萬法皆空吾將行矣一心爲本汝等勉之無以塔藏形無以銘紀 跡言竟坐滅報年七十七積夏82四十一于時天無纖雲風雷欻起虎狼號咽杉栝變衰俄而紫雲翳空空中有彈指聲會葬者無不入耳則梁史83載褚侍中翔84嘗請沙門爲母疾祈福聞 空中彈指聖感冥應豈誣也哉凡志於道者寄聲相弔未亡情者銜悲以泣天人痛悼斷可知矣靈函幽隧預使備具弟子法諒等號奉色身不踰日而窆于東峯之冢遵遺命也禪師 性不散樸言不由機服煖縕黂食甘糠麧芧菽雜糅蔬佐無二貴達時至曾不異饌門人以墋腹進難則曰有心至此雖糲何害尊卑耋穉接之如一每有王人乘馹傳命遙祈 法力則曰凡居王土85而戴佛日者孰不傾心護念爲君貯福亦何必遠汚綸言於枯木朽株86傳乘之飢不得齕渴不得飮吁可念也或有以胡香爲贈者則以瓦載煻灰 不爲丸而焫之曰吾不識是何臭虔心而已復有以漢茗爲供者則以薪爨石釜不爲屑而煮之曰吾不識是何味濡腹而已守眞忤俗皆此類也雅善梵唄87金玉其音側調飛聲爽快 哀婉能使諸天歡喜永於遠地流傳學者滿堂誨之不倦至今東國習魚山88之妙者競如掩鼻89效玉泉90餘響豈非以聲聞度之之化乎禪師泥洹91當 文聖大王92之朝上惻僊襟93將寵淨諡及聞遺戒愧而寢之越三紀94門人以陵谷95爲慮扣不朽之緣於慕法弟子內供奉96 一吉干97楊晉方崇文臺98鄭詢一斷金爲心勒石是請 獻康大王恢弘至化欽仰眞宗追諡眞鑑禪師大空靈塔仍許篆刻以永終譽懿乎日出暘谷無幽不燭海岸植香99久而弥芳或曰禪師垂不銘不塔之戒而降及西河之徒100不能確奉 先志求之歟抑與之歟101適足爲白珪之玷102嘻非之者亦非也不近名而名彰蓋定力之餘報與其灰滅電絶曷若爲可爲於可爲之時使聲震大千之界而龜未戴石龍遽昇天 今上103繼興塤篪相應104義諧付囑善者從之以隣岳招提105有玉泉之號爲名所累衆耳致惑將俾弃同卽異則宜捨舊從新使目示其寺之所枕倚則以門臨複澗爲對乃錫題爲雙溪焉申 命下臣曰師以行顯汝以文進宜爲銘致遠拜手曰唯唯退而思之頃捕名中州嚼腴咀雋于章句間未能盡醉衢罇106唯愧深跧泥甃107況法離文字無地措言苟或言之北轅適郢108第以 國主之外護門人之大願非文字不能昭昭乎群目遂敢身從兩役力效五能109雖石或憑焉可慙可懼而道强名110也何是何非掘笔藏鋒111則臣豈敢重宣前義謹札銘云 杜口禪那歸心佛陀根熟菩薩弘之靡它猛探虎窟遠泛鯨波去傳秘印來化斯羅112尋幽選勝卜築巖磴水月澄懷雲泉寄興山與性寂谷與梵應觸境無硋息機是證道贊五朝113威摧 衆妖黙垂慈蔭顯拒嘉招海自飃蕩山何動搖無思無慮匪斲匪雕食不兼味服不必備風雨如晦114始終一致慧柯方秀法梀俄墜洞壑凄凉煙蘿115憔悴人亡道存終不可諼116 上士117陳願 大君流恩燈傳海裔塔聳雲根118 天衣拂石119永耀松門120                  光啓三年121七月日建 僧奐榮 刻字

  • 서국(西國)은 중국, 도통(都統)은 황소(黃巢)의 난(亂)을 진압하기 위하여 두었던 제도행영도통(諸道行營都統)을 이르며, 순관(巡官)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史)는 당의 관명으로 승무랑은 6부에 소속된 낭관(郞官)의 하나이고 시어사는 시어대(御史臺)에 소속된 관리, 내공봉(內供奉)은 대전의 도량(道場)에 물품을 공봉하는 벼슬임. 자금어대는 관리의 허리에 차던 장신구로 물고기 모양의 붉은 금빛 주머니로 3품 이상의 품계를 가지거나 특사를 받은 사람만이 찼으며 그 속에 성명이 적힌 표신을 넣었다. 신라에서도 이 제도를 받아들여 어대를 하사한 사실이 여러 자료에서 보인다. ↩

  •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는 말(『중용』13장). ↩

  • 속을 파낸 통나무배. ↩

  •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는 바를 뒤로 함. 『논어(論語)』(권6 옹야(雍也))에 번지(樊遲)가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한 말. ↩

  • 곤륜산(崑崙山).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성한 산으로 옥이 많이 나기로 유명함. ↩

  • 검은 용이 사는 깊은 못. 여룡지주(驪龍之珠)의 고사에서 나온 말로 흑룡의 턱 밑에 귀한 구슬이 있으나 그 용의 사납기가 한량없어 구슬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진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비유하였다. ↩

  • 사람을 각 과지(果地)에 이르게 하는 교법을 승이라 하는데, 몇 가지의 설이 있으나 보통 인·천·성문・연각·보살승을 말한다. ↩

  • 유교의 여섯 가지 경서.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예기(禮記)』·『춘추(春秋)』·『악경(樂經)』. ↩

  • 인도. 한자로 신독(身篤)·현두(賢豆)·인도(印度)·천축(天竺) 등으로 쓰이며 그 뜻은 중국(中國)이다. 여기서는 석가를 가리킴. ↩

  •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 소對文殊재한 공자의 탄생지. 여기서는 공자를 가리킴. ↩

  • 둥근 구멍에 네모난 자루를 박는다는 뜻으로 서로 맞지 않음을 말한다. ↩

  • 『맹자』만장(萬章) 상편에 나오는 말. 문장의 앞뒤 문리(文理)나 작자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남의 글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따내어 자기 뜻대로 쓰거나 자구(字句)에 얽매여 본 뜻을 곡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 ↩

  • 『예기』(권22 제의(祭衣))에 나오는 말로, 같은 뜻의 말이라도 경우에 따라 그 표현이 다를 수 있다는 뜻. ↩

  • 중국 동진(東晉)의 승려. 유학과 노장학을 공부하다가 출가하여 도안(道安) 문하에 들어갔고 373년 여산(廬山)에 동림사(東林寺)를 세우고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염불 수행을 하였다. 저서로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법성론(法性論)』 등이 있다. ↩

  •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체극불겸응(體極不兼應) 제4)에 나오며 사문이 세간의 왕(王)에게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됨을 논한 내용이다. 340년에 동진(東晉)의 상국 유빙(庾氷)이 사문이 임금을 예경하지 않는 것은 비리(非理)라 하여 공경하라고 명하였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그 후 403년 재상 환현(桓玄)이 다시 명을 내리자 혜원이 404년 이 논(論)을 지어 반박하였다. ↩

  • 중국 양(梁)나라의 정치가. 양무제를 도와 상서령의 지위까지 올랐으며, 시의 운율을 연구하여 4성(聲)의 구별을 세우고 시의 8병(病)을 든 것으로 유명하고 불교에도 통하여 범어 음악도 연구하였다. ↩

  • 하늘이 말하지 않으면서도 철을 바꾸고 만물이 생기게 하는 것처럼, 공자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는 뜻(『논어(論語)』양화(陽貨)). ↩

  • 정명은 유마거사(維摩居士)이며,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보살이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드는 것’을 물었으나 묵묵히 말이 없었는데 그것이 대답이었다고 함(『유마경』불이법문품). ↩

  • 부처님의 10호 가운데 하나. 부처는 여실히 피안에 도달하여 다시 생사해(生死海)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 ↩

  • 三處傳心 가운데 하나인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염화시중(拈華示衆)을 보고 가섭만이 미소를 지어 부처님의 법이 가섭에게 전해졌다는 뜻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

  • 높은 벼슬아치가 타는 수레의 덮개. 전하여 높은 벼슬아치를 이름. ↩

  • 驪貊은 고구려. 고구려 영양왕 23년(612) 수 양제가 113만 대군으로 요동성을 침략해 왔으나 살수에서 대패하여 고구려 침공에 실패하였다. ↩

  • 자루에 넣고 주머니를 동여맴. 어떤 것을 온통 차지한 것을 말함. ↩

  • 마한의 본고장인 익산을 이름. 문무왕 10년(670) 고구려 보장왕의 서자 안승(安勝)이 4천여 호를 이끌고 항복해 오자 이들을 받아 들여 금마저에 있게 하였고, 백제 때부터 금마저라고 하던 것을 신문왕 때 금마군으로 고쳐 전주에 예속시켰다. 진감선사의 선조도 이때 금마로 왔을 것이다. ↩

  • 유년으로부터 성년에 이르도록 는 계(洎)와 같은 글자. ↩

  • 자식이 자라서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는 것. ↩

  • 때를 따라 돌아가는 자연의 현상. 천시를 훔쳤다는 것은 천시를 이용하여 순리대로 사는 것을 뜻함. ↩

  • 오직 그 힘을 살펴서 행함(『춘추좌씨전』희공(僖公) 24년). ↩

  • 비판(裨販)은 소규모로 차린 장사, 추우(娵隅)는 물고기를 말함. ↩

  • 부모에게 봉양하는 매끄럽고 맛좋은 음식. ↩

  • 마음은 이미 통발을 잊은 것에 부합함. 망전(忘筌)은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이 필요없게 된다는 말(『장자』외물( 外物)). ↩

  • 부모에게 콩죽을 드시게 해도 그 즐거움이 다하게 하는 것으로 효도를 뜻함(『예기』단궁(檀弓) 하). ↩

  • 효자가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을 읊은 시. ↩

  • 부모의 상(喪)을 말함. ↩

  • 도의 심오함(『노자』14장). ↩

  • 덩굴에 매달려 있기만 하고 먹을 수 없는 조롱박처럼 좁은 곳에 매여 있어 쓸모없는 인간이 되겠느냐는 말(『논어』17 양화(陽貨)). ↩

  • 804년, 애장왕 5년. ↩

  • 지금의 하북성 창현(滄縣) 지방. ↩

  •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선맥을 이은 승려. ↩

  • 오체투지(五體投地). 두 다리와 두 팔, 머리의 오체를 땅에 대고 하는 불교식 절. ↩

  • 들 원, ‘原’과 통용. ↩

  • 범어 Dhūta의 음사로 수도승을 말함. ↩

  • 동진(東晉)의 도안(道安 : 314~385)을 이름. 12세에 출가하여 서역승 불도징(佛圖澄)에게 배워 불교를 널리 포교하였는데 얼굴이 검어서 칠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여러 경전을 비교 연구하여 경록(經錄)을 작성하였고 경전 해석에 서(序)·정종(正宗)·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누는 3과목을 창설하였으며, 승려생활의 규범 및 승려의 성을 석(釋)씨로 할 것 등을 주장하였다. ↩

  • 춘추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얼굴이 검었던 자한(子罕)의 고사. 송의 재상이 평공(平公)을 위해 별장을 지으려고 하자 자한은 농사에 방해되므로 농한기에 공사를 시작하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평공이 허락하지 않으니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이 “읍중의 얼굴 빛 검은 사람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한다”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춘추좌씨전』양공(襄公) 17년). ↩

  • 불타야사(佛陀耶舍). 북천축 계빈국 출신으로 수염이 붉고 비파사론(毘婆娑論)을 잘 해득하여 당시 晉나라 사람들이 적자논주(赤頿論主)라고 불렀다. ↩

  • 달마. 중국 선종의 제1조이며 푸른 눈을 가졌으므로 양(梁)나라 사람들이 벽안호승(碧眼胡僧)이라 불렀다. ↩

  • 원화(元和) 5년(810, 헌덕왕 2년). ↩

  • 중국 하남성 숭산에 있던 절로 달마의 면벽 9년 수행으로 유명하다. ↩

  • 어머니를 이름. ↩

  • 학사(學舍)를 이름. 학문의 길이 바다와 같이 넓다는 데서 비유한 말. ↩

  • 신라의 선승. 784년(선덕왕 5) 입당하여 서당지장(西堂智藏)의 심인을 받고 821년(헌덕왕 13년) 귀국하여 남종선을 전하였으나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설악산 진전사에 은거함(『조당집』17 설악(雪岳) 진전사(陳田寺) 원적선사(元寂禪師)). ↩

  • “서남에서 벗을 얻는다”는 것은 곧 동류와 같이 감이다(『주역』곤괘(坤卦)). 여기서는 도의와 혜소가 서쪽인 중국에서 만나 서로 동지가 되었다는 뜻. ↩

  • 제법실상의 진리를 모두 깨달아 밝게 비추어 보는 부처의 지혜. ↩

  • 중국 섬서성 장안(長安)에 있는 산으로 고찰과 명승지가 많다. ↩

  • 중국 하남성 북서쪽의 함곡관(函谷關 : 중원에서 서쪽의 관중(關中)으로 통하는 요지) 밖의 지명. ↩

  • 태화(太和)4년 830년, 흥덕왕 5년. ↩

  • 중국 남조의 제(齊) 무제(武帝)가 법헌(法獻)·현창(玄暢) 두 법사를 천하의 승주(僧主)로 삼자 사람들이 이들을 흑의이걸(黑衣二傑)이라고 일컬었다(『불조통기』권36). 흑의는 중이 입는 옷. ↩

  • 도안(道安)이 양양에 있을 때 재사 습착치(習鑿齒)가 와서 “나는 사해(四海) 습착치(習鑿齒)요” 하니 도안이 “나는 미천(彌天) 석도안(釋道安)이요” 라고 대답하여 그를 굴복시켰다(『고승전』권5 석도안전). ↩

  • 상서로움을 지닌 부처를 이름. 범어 Bhagavat[世尊]의 여섯 가지 뜻 가운데 하나. ↩

  • 경북 상주군(尙州郡) 내서면(內西面) 연원동(蓮阮洞)에 그 터가 남아있다. ↩

  • 유마거사의 방이 사방일장(四方一丈)이었던 데서 나온 말로 높은 중의 처소를 이름. ↩

  • 신문왕 5년 거타주(居陀州)에서 분리되어 청주(菁州)로 되었다가 경덕왕 6년 강주(康州)로 고쳤으며, 지금의 진주(晉州)이다(『삼국사기』권34 잡지3 지리). ↩

  • 호랑이를 이르는 말. ↩

  • 앞장서서 인도하는 기병. ↩

  • 당에 밀교를 전한 서역승(637~735). 중천축의 왕자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716년(당 현종 개원 4년) 장안에 와서 『대일경(大日經)』등을 번역하고 밀교 전파에 힘썼다(『송고승전』선무외전). 삼장은 경(經)·율(律)·론(論)에 통달한 고승을 높여 부르는 말. ↩

  • 진(晉)나라 때 강거국(康居國)에서 온 승려이며 일명 법헌(法獻). 시풍(始豊) 적성산(赤城山)의 한 동굴에서 송경(誦經)할 때 맹호 수십 마리가 앞에 와 웅크리고 앉았는데 한 마리가 졸자 담유(曇猷)가 석장으로 머리를 두드리며 “왜 송경(誦經) 소리를 듣지 않느냐?”고 하자 범이 모두 가버렸다고 함(『고승전』축담유전(竺曇猷傳)). ↩

  • 미상. 『지리산쌍계사기(智異山雙溪寺記)』에는 육조정상(六祖頂上)을 김대비(金大悲)와 함께 훔쳐와 지리산 화개곡에 탑을 세우고 선정(禪定)에 침잠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

  • 838년, 민애왕 1년. ↩

  • 신라 44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838~839년. ↩

  • 불교의 교리. ↩

  • 피휘하여 혜소(慧昭)가 되었으므로 그 전의 호는 혜조(慧照)일 것으로 추정되고 성조는 효조왕(孝照王)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효소왕(孝昭王)이라 하였으나 신라 하대의 유물인 「황복사 석탑 금동사리함명」 등에는 효조왕(孝照王)으로 되어 있음을 들었다(崔英成). ↩

  • 피휘하여 혜소(慧昭)가 되었으므로 그 전의 호는 혜조(慧照)일 것으로 추정되고 성조는 효조왕(孝照王)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효소왕(孝昭王)이라 하였으나 신라 하대의 유물인 「황복사 석탑 금동사리함명」 등에는 효조왕(孝照王)으로 되어 있음을 들었다(崔英成). ↩

  • 황룡사에 적을 올렸다는 사실은 당시 불교계를 통제하던 황룡사의 역할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황룡사는 신라 하대(경문왕대)에 9층목탑의 중수와 함께 성전(成典)이 설치되고 불교계의 중추적 사원으로 다시 부각되었다고 하며(채상식), 「중초사 당간석주기」「청주 연지사종명」 등에 보이듯 지방 사찰에 황룡사 승려로 주통을 파견한 예도 있어 관사적 기능을 가지고(이영호) 불교 교단을 통제하였다고 한다. ↩

  • 임금의 사자. ↩

  • 북제(北齊)의 고승. 경사(經史)에 통달하여 태학박사가 되었으나 출가하여 선정에 전념하였고 후위의 효명제가 세 번이나 불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속고승전』권16 승조(僧稠)). ↩

  • 북위(北魏)의 별칭. 후위 또는 탁발위(拓跋魏)라고도 하며 성씨를 탁발에서 원(元)씨로 고친 까닭에 원위라 함. ↩

  • 집을 짓기 시작함. ↩

  • 신선 호공(壺公)의 고사에서 나온 말로 별세계를 이름. ↩

  • 6조 혜능. 중국 광동성 곡강현(曲江縣) 소주(韶州)의 동남에 있는 시내 이름인데 당의 혜능이 이곳의 보림사에서 선법을 크게 선양함. ↩

  • 850년, 문성왕 12년. ↩

  • 구족계를 받은 해로부터 하안거를 마친 횟수로 세는 나이, 법랍. ↩

  • 남조인 양나라의 사적을 기록한 정사(正史). 당 태종 정관 3년(629년) 요사렴(姚思廉)과 위징(魏徵)이 칙명으로 찬함. ↩

  • 양 무제 때의 문신으로 벼슬이 시중에 이르렀으며 효자로 이름높았고 어머니상을 당하여 피곤해 하다가 마침내 사망하였다(『양사(梁史)』저상전(褚翔傳)). ↩

  • 단순히 임금의 영토라는 뜻. 『시경』(소아(小雅) 북산(北山))의 “溥天之下 莫非王土”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 기존의 사회경제사 연구에서 이러한 구절에 근거하여 이 시대에 사전(私田)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견해도 있었으나, 이는 의제적(擬制的)인 개념으로 생각되고 있다(이우성). ↩

  •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 진감선사가 스스로를 낮추어 하는 말. ↩

  • 사법요(四法要)의 하나로 법회를 시작할 때 석가여래의 공덕을 찬양하여 부르는 노래. 보통 불교음악을 말하며 진감선사에 의해 널리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범패의 하나. 중국 위(魏)의 시인 조식(曹植)이 산동의 어산(魚山)에서 놀다가 하늘에서 범음(梵音)과 같은 소리가 맑게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그 음률을 따라 지은 범패. ↩

  • 중국 동진(東晉)의 사안(謝安)이 코먹은 소리로 ‘洛下書生詠’이라는 가곡을 잘 불렀는데 사람들이 그 소리를 모방하느라고 손으로 코를 쥐고 코먹은 소리를 한데서 나온 고사. ↩

  • 옥천사(쌍계사의 옛 이름)의 진감선사를 가리킴. ↩

  • nirvāṇa의 음사, 열반. ↩

  • 신라 46대왕. 재위 839~857년. ↩

  • 임금의 마음. 범인의 마음은 진금(塵襟)이라 함. ↩

  • 12년. 세성(歲星)이 하늘을 일주하는 기간. ↩

  • 산마루가 골짜기로 변함. 세상일의 변천이 심한 것을 이름. ↩

  • 신라때 대궐 안의 도량에 공봉하던 관직. ↩

  • 신라 17관등 가운데 제7위. 일길찬. ↩

  • 신라 문한기구의 하나(『삼국사기』권39 직관중). 당제의 예로 보아 동궁 직속의 문한기구로 추측된다(이기동). ↩

  •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을 말함. ↩

  • 문도를 말함. ↩

  • “스스로 임금에게 구했는가 아니면 임금이 자기에게 주었는가?” 라고 묻는 말(『논어』학이). ↩

  • 흰 구슬의 티, 곧 흠을 말함. ↩

  • 정강왕, 재위 886~887년. ↩

  • 형은 나팔을 불고 동생은 화답하여 저를 분다는 뜻으로 형제가 서로 화목함을 이름. ‘塤’은 ‘壎’과 같은 글자. ↩

  • 절. 초투제사(招鬪提舍)의 약칭. 사방(四方)이라 번역하여 사방승(四方僧)이 거주하는 곳을 초제승방이라 한다. 위(魏) 태무제(太武帝)가 가람을 지어 초제사(招提寺)라 이름한 후 절을 가리키게 되었다. ↩

  • 성인의 도를 비유한 말. 구준은 길거리에 개방되어 있는 술항아리인데 선인(善人)이면 누구나 탐독할 수 있는 성인(聖人)의 도(道), 즉 경전을 말한다(『회남자』무칭훈(繆稱訓)). ↩

  • 번드르르하게 꾸밈. ↩

  • 수레는 북으로 향하면서 남쪽 초(楚)나라의 영(郢) 땅으로 가려 한다는 말. 이치에 어긋남을 뜻함. ↩

  • 날다람쥐의 많은 재주. 비록 서투를 망정 재주를 펴보이려고 했음을 나타내는 말로 최치원 자신이 선승의 비명을 짓기는 해도 깊은 뜻은 다 표현하지 못하리라는 말. ↩

  •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어떻게 나타낼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이름하여 도라고 한다는 말(『도덕경』25장). ↩

  • 끝이 닳은 붓이라 필봉을 드러내지 않음. 즉 문재(文才)가 없다는 핑계로 계속 사양하는 것을 말함. ↩

  • 신라의 별칭. ↩

  • 진감선사를 우대한 다섯 임금. 흥덕·희강·민애·신무·문성왕. ↩

  • 폭우가 몰아치는 캄캄한 그믐밤일지라도 닭은 때를 어기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운다는 말로 시종이 여일하다는 뜻. ↩

  • 연기처럼 뻗어 올라가는 등라(藤蘿). 곧 향학열이 높은 후배들을 이름. ↩

  • 잊음. ‘諠’과 같은 글자. ↩

  • 보살을 이름. 여기서는 양진방과 정순일을 가리킴. ↩

  • 구름이 생기는 곳으로 산이나 바위를 말함. ↩

  • 오랜 세월. 천인의 옷이 스쳐 넓은 돌이 닳아 없어지는데 일소겁(一小劫)이 걸린다고 함. ↩

  • 소나무를 문으로 삼음. 곧 절. ↩

  • 887년, 정강왕 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