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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명(한글) 진동유적
시대 청동기
성격 분묘
시군구 경상남도 마산
유적설명(한글)
이 유적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 무덤군 유적으로, 그 조영집단이 계급사회에 진입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단히 중요한 유적이다. 이 유적은 진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사지역은 진동만에 유입되는 태봉천 하구에 형성된 범람원지역으로 서남해안에서 동남해안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교통로 상에 위치하며 해양에서 내륙으로 진출하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길이 400m에 달하는 고인돌무지〔支石墓群〕, 돌널무덤〔石棺墓〕41기, 경작지, 야외노지가 확인되었다.
대규모의 고인돌무지는 자연제방 지역을 따라 길게 분포하는 일정한 방향성을 보인다. 지석묘는 자연적으로 주변보다 높게 쌓인 자갈층을 정지하여 묘역(墓域)을 조성하였는데, 묘역은 가장자리에 구획석(區劃石)을 돌리고 내부에 돌을 채웠으며, 묘역의 중앙에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를 설치하였다. 고인돌 A군 1호의 묘역형태는 원형이며, 아래 면의 둘레는 20m 내외이다. 이 대형묘는 묘역의 외곽에 설치된 주구(周溝), 뚜렷한 봉토(封土), 그 외곽의 호석과 봉토를 덮은 즙석(葺石)시설 그리고 단일 지상식 매장주체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대형묘역에 한 사람만을 매장한 것은 당시의 정치·사회적인 면모를 짐작케 한다. 지석묘 B군은 묘역 내부의 적석과 묘역을 감싸는 길이 50m, 너비 3.5m의 외곽 담장이 특징적이다. 지석묘 C군에는 4기의 적석묘(積石墓)와 덮개돌이 있는 장방형의 묘역시설이 확인되었는데, 적석묘는 장타원형이며 장방형의 묘역시설과 중복되어 있다. 그리고 고인돌 E군에서 확인된 대규모 장방형 묘역을 가진 지석묘는 구획석을 2∼7단으로 쌓아서 축조하고 내부를 잔자갈과 흙으로 채웠다. 이것은 주변지형보다 묘역시설을 높게 성토(盛土)하고 상부는 평탄면을 이루고 있어 A군 1호 고인돌처럼 묘역시설 주변에 주구를 굴착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또한 구획석을 축조하는 방법으로 기단석을 설치하고 그 위로는 안으로 들여쌓는 방법은 역사시대 이후 건물의 기단이나 성곽 기단 축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으로 그 기원이 청동기시대까지 소급됨을 알 수 있다.
한편, 돌널무덤은 2∼5기씩 군집을 이루면서 확인되며 고인돌무지 입지지역과는 달리 자연제방의 배후에 분포하고 있어, 묘제에 따른 위계화(位階化) 현상을 추정해볼 수 있다. 돌널무덤은 상자형과 석축형으로 나누어지며,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 돌칼, 화살촉, 관옥 등이 출토된다.
이 유적은 대규모의 고인돌무지와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기원전 6∼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번에 조사된 대규모의 고인돌무지를 통해서 보면 당시 진동유적을 조성한 집단은 계급사회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고인돌과 돌널무덤의 대규모 묘역, 낮은 분구의 봉토 등 유력 개인묘로 추정되는 무덤, 돌널무덤의 차별적인 분포입지, 주변에서 확인되는 대단위 수전시설(水田施設), 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로 등은 우리나라 발전된 족장사회 모습, ‘국(國)’이전단계와 관련된 다양한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징 최대 규모 청동기시대 집단무덤
주요유적 지석묘, 석관묘
유적요약설명
대규모의 고인돌무지와 돌널무덤이 발견되었고, 시기는 기원전 6~5세기로 추정
조사기관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출처자료 2005 한국고고학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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