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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적조사보고

조선고적조사보고
유적/유물명 삼실총외관
보고서명 통구上下
열람번호 912.54국53ㅌv.1 부서명 1268
조사지 만주국 통화성(通化省) 집안현(輯安縣) 조사자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미즈노 세이치(水野淸一), 미카미 지난(三上次南)
발굴위치 집안현(輯安縣) 고구려시대 유적 현재지명
조사년도 1938(소화(昭和)13년) 시대분류 고구려
사업설명
삼실총(三室塚)은 고(故) 세키노(關野) 박사의 명명(命名)에 관계되고 있다. 삼실총은 여산(如山)의 남쪽 산기슭에서 오괴분(五塊墳)의 서북쪽 5, 6정(町)인 곳에 위치하는 하나의 토분(土墳)이다. 분롱(墳壟)은 그만큼 크지 않지만 비교적 고조(高燥)한 밭 안에 우뚝 서 있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작은 고분에 비해서 현저하게 눈에 띈다. 이 총은 1913(민국2, 대정2)년에 처음으로 세키노 박사 일행에 의해 조사되었다. 박사의 보고에 의하면 당시 언덕 정상에는 수 그루의 유수(楡樹)가 생장(生長)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몇 세월이 지나 지금은 지난 모습도 없고 단지 전면(全面)이 지초(芝草)에 덮여 있다. 봉토(封土)는 기저(基底)를 완만한 경사지에 두고 형태는 거의 훌륭하게 갖추어져 원만하다. 단지 언덕 위에 가까운 부분이 조금 움푹 패어 있다. 평면은 원형(圓形)이고 입면(立面)은 복입상(覆笠狀)을 나타낸다. 정부(頂部)를 평평하게 한 형적(形迹)이 없다. 즉 통구(通溝) 평야에 존재하는 많은 토분(土墳)이 절두방추형(截頭方錐形)인 것에 대하여 조금 분위기를 달리 하고 있다. 규모는 기저(基底)의 지름 약 65척, 높이 14, 5척(기저의 가장 낮은 곳부터 실측하여)이다. 이를 다른 크고 작은 수많은 모든 토분에 비교하면 거의 그 중간 정도의 위치에 있다.
연관자료 국립중앙박물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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