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주얼

조선고적조사보고

조선고적조사보고
유적/유물명 무용총좌벽벽화
보고서명 통구上下
열람번호 912.54국53ㅌv.1 부서명 1268
조사지 만주국 통화성(通化省) 집안현(輯安縣) 조사자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미즈노 세이치(水野淸一), 미카미 지난(三上次南)
발굴위치 집안현(輯安縣) 고구려시대 유적 현재지명
조사년도 1938(소화(昭和)13년) 시대분류 고구려
사업설명
벽화(壁畵)의 주요한 부분은 수렵(狩獵) 광경이다. 오른쪽 벽의 무용도(舞踊圖)가 우려(優麗)한 것에 대하여 이것은 매우 용장(勇壯)하다. 연리목(連理木)이라고도 할 만한 장대(長大)한 나무를 사이에 두고 2대의 우차(牛車)도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수렵과 관계가 없는 다른 장면일 것이다. 수렵은 산간(山間)의 평지에서 행해지고 있다. 기복(起伏)하고 단속(斷續)하는 산옥(山獄)은 병행하는 수조(數條)의 곡선으로 나타내고 그 하나에는 괴기(怪奇)한 3그루의 수목(樹木)도 덧붙여 그려 넣고 있다. 사실(寫實)에 근거하고는 있지만 매우 개념적인 묘법(描法)이다. 화면(畵面)의 최상부(最上部)에는 좀 이상한 문양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나중에 기술하는 것처럼 사냥터의 푸른 하늘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오른쪽의 단속(斷續)하는 산옥(山獄)은 사냥터를 상하로 구분하고 있다. 밑이 되는 산 앞에는 사슴, 호랑이, 토끼 등을 잡고 위가 되는 산 뒤에는 자웅(雌雄) 2마리의 사슴을 잡는 광경이 전개된다. 수렵에 종사하는 장부(丈夫)는 산 앞의 사기(四騎)와 산 뒤의 일기(一騎) 두 명이다. 그 중 뒤에서 따르는 산 앞의 일기(一騎) 이외에는 모두 적시(鏑矢)를 메긴 단궁(短弓)을 계속 한껏 당기고 ?기고 있던 수류(獸類)가 도망가려고 갈팡질팡하는 것을 사로잡기 위해 사람과 말 모두 힘을 다하고 있다. 회화(繪畵)로서는 아직 조졸(粗拙)한 단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웅건(雄建)한 필력은 당연히 추상(推賞)할만한 가치가 있다. 한 폭의 수렵도(狩獵圖)로서 이를 보아도 평안남도(平安南道) 용강군(龍岡郡) 매산리(梅山里) 사신총(四神塚)에 있는 치졸(稚拙)한 그림을 빼면 몇 단계 위에 있다. 수렵 할 때의 고구려인의 복식, 무기 등도 상당히 명료하게 그려져 있고 깃털로 장식을 한 관모(冠帽), 명적(鳴鏑)을 갖춘 화살촉, 수절(數節)이 있는 단궁(短弓, 각궁일 것이다)과 같은 것은 특히 주의를 끈다. 이 수렵도의 왼쪽 가장자리에는 위에서 언급한 한 그루의 장대(長大)한 연리수가 기고(奇古)한 수법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과 떨어진 오른쪽의 좁은 일구(一區)에는 상하로 각 한 대의 우차(牛車)가 그려져 있다. 둘 다 교차(轎車)인데 아래쪽의 것은 거의 박락(剝落)되어 있는 것에 비하여 위쪽의 것은 매우 완호(完好)하다. 교자(轎子)의 전면에는 적색의 신록이 있는 휘장이 늘어져 있다. 소 옆에는 적의(赤衣)를 걸치고 채찍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서 있다. 이들 우차(牛車)는 오벽(奧壁)의 공찬도(供餐圖) 안의 인물의 승용차(乘用車)를 그린 것 같고 이것을 수렵도와 떼어 놓고 생각해야 한다. 오른쪽 벽의 2개의 작은 건물에 대한 무용도(舞踊圖)의 관계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관자료 국립중앙박물관도서관
데이터 이용 만족도 만족도 확인
  •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제공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부가정보

부가정보 상세 검색
이미지 (10)
1 2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