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당계회도
해제
조선 초기부터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젊고 유능한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별도로 독서당(讀書堂)을 지어 문신들이 자유롭게 머물며 독서 활동에 전념하게 하였다. <독서당계회도>는 1572년(선조 5) 휴식과 독서에 열중하기 위해 독서당에 파견된 9인의 관료들이 함께 만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계회도이다. 이 당시의 독서당은 동호(東湖)의 북쪽 언덕에 있었다. 동호의 독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졌고 이후 다시 지어지지 못했다. 지금 그 일대는 옛 자취를 기억하듯 ‘독서당터’나 ‘독서당길’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약 500년 전에 건재했던 동호 독서당은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한강 변의 이름난 명소였다. 독서당 주변의 경관도 좋았지만, 거기에서 바라본 동호 일대의 풍경 또한 일품이었다. <독서당계회도>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전하는 사례도 다수가 있지만, 동호 독서당을 그린 계회도로는 일본 개인 소장의 <독서당계회도>(1531), 국립광주박물관 소장의 <동호계회도>(1534) 그리고 서울대박물관 소장의 보물 <독서당계회도>(1572) 등 3점이 알려져 있다. 이 작품들은 독서당 주변의 경관을 실경산수화풍으로 그린 것으로, 실경산수화 계열의 계회도가 16세기 전반기에 성립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독서당계회도>는 화면의 크기가 세로로 긴 편이지만, 상단의 약 절반 정도는 비워져 있는 상태이다. 이 점은 화면 상단의 여백에 시를 써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긴 여백일 수 있다. 그림 속의 공간은 강물이 선회하는 동호의 북쪽인 지금의 옥수동과 한남동 일대이다. 그림에는 독서당의 모습이 매우 과장된 형태로 크게 그려졌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내부는 물론, 주변을 한 눈에 조망하듯 구도를 잡았다. 그림을 그리고 참석자들의 인적사항을 기재한 전형적인 계회도의 요건을 갖추었다. 독서당의 뒤편에 솟아오른 산은 응봉(鷹峯)에 해당한다. 응봉의 표현은 실제보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고, 실제로 독서당보다 더 좌측으로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지만, 독서당 주변의 특징적인 경물이므로 거리를 단축시켜 화면 안에 포함시켰다. 실경산수화로서의 특징을 띠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다른 경물들과의 상대적인 비례, 그리고 원근 관계에 있어서 다소 불합리한 점들을 남기고 있다. 독서당의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언덕 능선에는 권세가들의 기와집들이 들어서 있다. 요즘으로 치면 한강뷰를 갖춘 고급 저택들일 것이다. 독서당 바로 아래쪽에는 사람과 물자를 건네는 나루터인 두모포(豆毛浦)가 있었다. 독서당이 있던 위치는 현재의 옥수동 옥정중학교의 서쪽 편에 있는 극동그린아파트 방면으로 올라가는 경사 지점(독서당길 아래)으로 추정된다. 16세기에 독서당 인근에서 살았던 윤현(尹鉉)이 지은 글 「호당기(湖堂記)」에 따르면, 독서당은 평지가 아닌 비스듬한 경사면에 자리 잡았다고 기록했다. 독서당의 입지에 관한 기록과 독서당 터로 추정되는 지형을 비교해 보면, 대체로 일치한다. 이 계회도의 좌목(座目)에는 당시의 중견 및 신진관료들인 윤근수(尹根壽, 1537~1616), 정유일(鄭維一, 1533~15767), 정철(鄭澈, 1536~1593), 구봉령(具鳳齡, 1526~1586), 이이(李珥, 1536~1584), 이해수(李海壽, 1536~1599), 신응시(辛應時, 1532~1585), 홍성민(洪聖民, 1536~1594), 유성룡(柳成龍, 1542~1607) 등 9인의 인적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이 <독서당계회도>는 1570년경 혹은 1570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 이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는 1526년생인 45세의 구봉령이고, 가장 연소자는 29세의 유성룡이다. 좌목의 인물을 성명, 사가독서한 시기, 1570년 계회 당시 관직 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윤근수(尹根壽, 1537~1616), 정묘년(丁卯春, 1567), 이조전랑(吏曹正郞),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2. 정유일(鄭維一, 1533~1576), 경오년(庚午夏, 1570), 이전군수以前郡守),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 3. 정철(鄭澈, 1536~1593), 정묘년(丁卯春, 1567), 병조정랑(兵曹正郞),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4. 구봉령(具鳳齡, 1526~1586), 정묘년(丁卯春, 1567), 병조좌랑(兵曹佐郞),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5. 이이(李珥, 1536~1584), 정묘년(丁卯春, 1567), 이조좌랑(吏曹佐郞),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6. 이해수(李海壽, 1536~1599), 정묘년(丁卯春, 1567),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7. 신응시(辛應時, 1532~1585), 계해년(癸亥冬, 1563),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이조정랑(吏曹正郞) 8. 홍성민(洪聖民, 1536~1594), 경오년(庚午夏, 1570),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이조정랑(吏曹正郞) 9. 류성룡(柳成龍, 1542~1607), 경오년(庚午夏, 1570),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계회도의 좌목에 기재된 관료들의 관직을 검토해 보면, 1572년(선조 5)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 독서당에서의 계회는 좌목의 인물들 모두가 사가독서를 마치고 독서당을 떠난 이후에 있었던 것이다. 즉 사가독서의 기간이 지난 후, 독서당을 거쳐간 선후배들 중 일부가 전일의 감회를 나누고자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독서당계회도>는 좌목의 인물들이 사가독서를 마친 이후, 1572년에 그린 것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들이 사가독서를 위해 독서당에 머물던 시기는 대략 1566년(명종 21)에서 1571년(선조 4) 사이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 계회도는 독서당을 거쳐 간 뒤 서로 친분이 있던 독서당 출신의 선후배 관료들끼리 가진 모임임을 알 수 있다. 「호당기(湖堂記)」는 독서당 인근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던 윤현의 문집인 국간집(菊磵集)에 수록된 기문(記文)이다. 이 글에는 독서당 내부의 구조와 건물의 명칭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다. 이를 1572년작 <독서당계회도>와 비교해 보면, 16세기 중엽에 해당하는 독서당의 실제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먼저 <독서당계회도>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본 뒤, 「호당기」의 기록과 대조하여 고찰하겠다. <독서당계회도>에서 맨 위쪽에 크게 보이는 건물이 정당(正堂)이다. 회의나 강의를 하는 강당과 같은 곳이다. 그 오른쪽에는 상방(尙房)이 있는데, 이곳에는 책과 기물을 보관했다. 통풍이 잘 되도록 건물 오른편은 누각식으로 지었다. 왼쪽 아래에 2층 누각처럼 보이는 곳은 남루(南樓)로 숙소에 해당한다. 정면 3칸 가운데 한 칸이 마루이고, 뒤편에 추가로 숙소를 증축한 부분도 그림에서 확인된다. 오른쪽 아래에 크게 그려진 곳은 신축 건물인 문회당(文會堂)이다. 독서당의 전체 공간이 협소하여 새로 지었는데, 강의와 학습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문회당 왼편으로 이어지며 문루 위로 연결되는 곳은 행각이다. 겨울에 눈이 내려 길이 얼면 신당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남루로 연결되는 행각을 만들어 통행하였는데, 이 또한 그림에서 볼 수 있다. 동편에 있는 건물들은 부속 공간인 주방(廚房), 창고, 허간(虛間)으로 되어 있다. 정당 뒤편에는 뜰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탑(塔)이 하나 그려져 있다. 이 터가 바로 월송암(月松庵)이라는 암자였음을 알려준다. 「호당기」의 기록은 <독서당계회도>에 그려진 독서당의 구조를 확인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만약 현시점에서 독서당을 복원하려면, 이 도면대로 하면 완벽한 청사진이 나올 것이다. 윤현의 「호당기」에서 동호 일대의 풍경을 묘사한 글이 매우 흥미롭다. 대표적인 명소로는 압구정, 저자도(楮子島), 전교(箭郊), 동잠실(東蠶室) 등을 든다. 압구정에 관해서는 “호수[강] 건너의 남쪽은 옛 상공인 한명회(韓明澮)가 머물던 곳인데, 독서당과 마주 보는 위치에 있다”고 했다. 옛 압구정이 있던 마을은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에 비유할 수 있는데, 그 바다는 다름 아닌 아파트의 바다인 셈이다. 저자도는 지금의 동호대교 아래에 모래가 쌓여서 형성된 모래섬이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약 80만 평이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남아 있었다. 이곳을 찾은 묵객들은 흰 모래와 갈대숲의 인상 깊은 경치를 시와 문장으로 노래했다. 저자도는 가뭄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 말 저자도의 모래를 퍼서 강남의 땅을 메운 뒤 지은 아파트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이다. 전교(箭郊)는 과거의 뚝섬이자 지금의 서울숲 일대를 말한다. 넓은 들이 10리이고 푸른 이끼가 멀리까지 보인다고 했다. 나라에서 말을 키우고 관리하는 방목장이 여기에 있었다. 해 질 무렵이면 교외를 지키는 군사들이 횃불을 밝혀 응하는데, 흐트러지는 불빛이 마치 별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동잠실은 교외의 동쪽에 뽕나무밭이 무성한 지역을 말한다. 윤현은 이곳의 풍광을 이렇게 읊었다. 새벽이면 강의 기운이 자욱한 안개를 드리우는데, 한번 걷히면 경계가 끝없이 펼쳐지며, 숲이나 산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밤이면 산 위의 달이 강물에 비쳐 옥탑이 거꾸로 누워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신비롭고 낭만적인 경관이 주는 운치를 이제는 찾을 길이 없다. 1572년(선조 5) 이전에 사가독서를 받아 독서당을 방문한 적이 있던 9인의 관리들이 만남을 기념하여 독서당과 인근의 빼어난 경관을 화면에 담아 그린 계회도이다. 이들에게는 독서당에서 사가를 받았다는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그 영광을 함께 한 관리들과의 만남 또한 기념할 만한 일이었다. 사진기가 없던 시대에 기념사진에 찍혔을 그 풍경과 장면, 모습 등은 모두 그림으로 그려져 한 순간의 기록으로 남았다. 글: 윤진영
제발문(국문)
讀書堂契會圖 尹根壽 子固 畏齋 本海平 嘉靖丁酉生 戊午別試丙科 丁卯春爲吏曹正郞 賜暇 今爲僉知中樞府事 鄭惟一 子中 文峯 本東萊 嘉靖癸巳生 壬子生員 戊午式年丙科 庚午夏以前郡守 賜暇 今爲承政院同副承旨 鄭澈 季涵 松江 本迎日 嘉靖丙申生 辛酉進士 壬戌別試壯元 丁卯春爲兵曹正郞 賜暇 今爲弘文館直提學 具鳳齡 景瑞 栢潭 本綾城 嘉靖丙戌生 丙午秋生員 庚午別試乙科 丁卯春爲兵曹佐郞 賜暇 今爲司憲府執義 李珥 叔獻 栗谷 本德水 嘉靖丙申生 甲午生員壯元 同年式年壯元 丁卯春爲兵曹佐郞 賜暇 今爲議政府舍人 李海壽 大仲 靜齋 本全義 嘉靖丙申生 乙卯生員 癸亥親試乙科 丁卯春爲弘文館修撰 賜暇 今爲議政府舍人 辛應時 君望 鳳麓 本寧越 嘉靖壬辰生 壬午進士 己未親試丙科 癸亥冬爲成均館典籍 賜暇 今爲吏曹正郞 洪聖民 時可 尙雅齋 本南陽 嘉靖丙申生 辛酉進士 甲子式年丙科 庚午夏爲司諫院正言 賜暇 今爲吏曹正郞 柳成龍 而見 西崖 本豊山 嘉靖壬寅生 甲子生員 丙寅別試丙科 庚午夏爲弘文館修撰 賜暇 今爲弘文館修撰 讀書堂契會圖 독서당계회도 윤근수(尹根壽), 자고(子固), 외재(畏齋), 본 해평(本海平). 가정(嘉靖) 정유생(丁酉生). 무오별시병과(戊午別試丙科). 정묘년 봄에 이조정랑으로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지금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정유일(鄭惟一), 자중(子中), 문봉(文峯), 본 동래(本東萊). 가정 계사생(癸巳生). 임자생원(壬子生員), 무오식년병과(戊午式年丙科). 경오년 여름에 전 군수(前郡守)로서 사가독서하고, 지금은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 정철(鄭澈), 계함(季涵), 송강(松江), 본 영일(本迎日). 가정 병신생(丙申生), 신유진사(辛酉進士), 임술별시장원(壬戌別試壯元). 정묘년 봄에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사가독서하고, 지금은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구봉령(具鳳齡), 경서(景瑞), 백담(栢潭), 본 능성(本綾城). 가정 병술생(丙戌生), 병오추생원(丙午秋生員), 경오별시을과(庚午別試乙科). 정묘년 봄에 병조좌랑(兵曹佐郞)으로 사가독서하고, 지금은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이이(李珥), 숙헌(叔獻), 율곡(栗谷), 본 덕수(本德水). 가정 병신생(丙申生), 갑오생원장원(甲午生員壯元), 동년식년장원(同年式年壯元). 정묘년 봄에 병조좌랑으로 사가독서하고, 지금은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이해수(李海壽), 대중(大仲), 정재(靜齋), 본 전의(本全義). 가정 병신생(丙申生), 을묘생원(乙卯生員), 계해친시을과(癸亥親試乙科). 정묘년 봄에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으로 사가독서하고, 지금은 의정부사인. 신응시(辛應時), 군망(君望), 봉록(鳳麓), 본 영월(本寧越). 가정 임진생(壬辰生), 임오진사(壬午進士), 기미친시병과(己未親試丙科). 계해년 겨울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사가독서하고, 지금은 이조정랑(吏曹正郞). 홍성민(洪聖民), 시가(時可), 상아재(尙雅齋), 본 남양(本南陽). 가정 병신생(丙申生), 신유진사(辛酉進士), 갑자식년병과(甲子式年丙科). 경오년 여름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 사가독서하고, 지금은 이조정랑. 유성룡(柳成龍), 이견(而見), 서애(西崖), 본 풍산(本豊山). 가정 임인생(壬寅生), 갑자생원(甲子生員), 병인별시병과(丙寅別試丙科), 경오년 여름에 홍문관수찬으로 사가독서하고, 지금은 홍문관수찬. 국역: 김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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