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파(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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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성벽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혹은 결부법에서 한줌을 의미하는 계량 단위로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성벽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서 사용례는『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별집(別集)에서 강화도에 대해『식암집(息菴集)』을 인용하여 설명한 가운데 강화도의 둘레를 55,365파(把)라 하였고, 이 가운데 16,000파는 산과 갯벌로 성벽을 쌓지 않았으며, 26,975파의 길이는 옛날에 석축된 성터가 있고, 12,390파 길이에는 토축 성벽 흔적이 있다고 하였다. 사적 212호 상당산성 남문에 새긴 명문(銘文) 각자(刻字)에는 1807년에 체성(體城) 23파와 남문의 문루를 고쳐 쌓은 것과 1836년에 체성 60파를 개축하였다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성벽의 길이와 높이 등에 대한 표기는 자[尺]와 치[寸], 장(丈; 10자), 보(步), 리(里), 간(間; 고려시대, 일제강점기) 등이 사용되었다. 파(把)는 장정이 양쪽 팔을 벌려 손끝 사이의 길이를 나타내는 우리말 ‘발’과 대응되는 것이라 여겨지며, 새끼나 끈, 밧줄의 길이를 나타낼 때 사용되던 길이 단위로 조선후기에 사용되었다. 한편, 파는 한줌을 의미하는 계량 단위로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토지를 파악함에 있어서 토지의 면적과 수확량을 동시에 표시한 계량법으로 기본단위는 파(把)·속(束)·부(負:卜)·결(結)로서 줌·뭇·짐·멱에 대한 우리말의 한자 표시로 쓰였는데, 곡식 단 한 줌을 1파, 10파를 1속, 10속을 1부, 100부를 1결이라 하였다. 언제부터 제도화하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등 사료에 의하면 이미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토지조사사업을 벌이며 정반평제(町反坪制)에 의해 토지면적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결부법은 폐기되었다.(심광주) |
참고문헌 |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경기문화재단, 2007) |
구분 | 용어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성곽봉수편) - (성곽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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