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번호제도 개선 (2021년) 이전 발간자료에 수록된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한 자료로 지정번호가 일부 표기되어 있을 수 있는 점 이용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적/용어명 로암리고분(安岳路岩里古墳)
설명 황해남도 안악군 로암리 북쪽 채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간 능선에 위치한다. 경사면에 150㎝ 정도 깊이의 장방형의 갱을 파고 연도와 현실을 마련한 반지하식 전실묘이다. 단실묘로 현실의 평면은 배부른 장방형이고, 크기는 길이 292㎝, 너비 196㎝, 높이 152㎝이다. 벽체는 3횡1수를 기본으로 안으로 기울이면서 쌓아 올렸다. 판석 조각들이 현실 바닥에 널려 있기 때문에 돌천장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바닥은 생토층 위에 2㎝ 정도 두께로 진흙을 바른 후 전돌을 삿자리 모양으로 전면에 깔았다. 관대는 현실의 서쪽에 붙여서 만들었는데 전돌을 남북쪽에 각각 두 줄로 눕혀 깐 후 그 안에 전돌을 세로로 눕혀 한 겹을 깔고 회다짐을 하였다. 연도는 현실의 동쪽으로 치우쳐 남벽에 달아내었다. 연도 벽면도 3횡1수로 쌓고 벽면에 회칠을 하였다. 바닥은 삿자리 모양으로 전돌을 한 겹 깔아서 만들었다. 도굴분이지만 흑색토기, 관정 2점, 부뚜막형토기 1점, 명문전 2점이 출토되었다. 전돌의 측면에 새겨진 명문은 ‘西邑太守將軍塼’, ‘建武八年西邑太守’로 상면은 매끈하고 반대면에는 승문이 찍혀있는 전형적인 낙랑·대방군의 전돌이다. 보고자는 로암리고분이 서북지역의 돌천장 전실묘와 석실봉토분의 양식이 혼재된 고분으로 보고 있다. 현재 알려진 돌천장 전실묘는 평양시 승호구역 봉도리 송오동전실묘, 낙랑구역 승리동3호, 류소리, 황해남도 신천 봉황리(현재 새길리)1호, 평양역 구내 전실묘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유사한 형태는 평양역 구내 전실묘이다. 건무 8년은 32년과 342년에 해당하는데, 평양역 구내 전실묘(355년)와 비교하면 342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고자는 ‘建武’라는 연호는 낙랑 혹은 대방이 멸망한 후 고구려가 서북한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여 고구려 문화의 토대가 구축된 다음에 쓰여진 연호라고 본다. ‘西邑太守’는 서읍(西邑)의 최고 관직명이지만 문헌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서읍을 당시의 안악군 일대를 지칭하는 지역명으로 판단하였다. 이를 근거로 로암리고분의 주인은 낙랑 혹은 대방의 마지막 서읍태수이거나 고구려에 의해 등용된 낙랑 혹은 대방 출신의 태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정인성)
참고문헌 로암리 돌천장전돌무덤에 대하여(한인덕, 조선고고연구 2003-3,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2003)
구분 용어
사전명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편)

국립문화재연구원이(가) 개방한 고분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수 있습니다.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 담당부서 : 고고연구실
  • 담당자 : 송효진
  • 문의 : 042-860-9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