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용어명 | 만수리유적(淸原 萬水里遺蹟 / Mansu-ri Si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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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오송읍 만수리·쌍청리·연제리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 일대는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과 북서쪽의 산지 사이에 위치하는 해발 40~50m의 낮은 구릉 및 일부 충적지에 해당된다. 남서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돌다리못이 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쥐라기 반상화강암이 기반암이며, 북서쪽의 산지는 편마암, 남동쪽은 미호천 일대의 제4기 충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송 생명과학 단지의 조성으로 인하여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행정구역은 만수리외에도 일부 분포하지만 인접한 지역에 위치하므로 ‘만수리유적’으로 유적명이 통일되었다. 만수리유적 1·4지점은 돌다리못 북동쪽 독립 구릉의 남향 완경사면에 해당되며, 3·5지점은 동일 구릉의 북동쪽~동쪽 경사면이다. 2·6·7지점은 이 독립 구릉 남동쪽의 저평한 지대에 해당되어, 이 일대가 만수리유적에서 가장 집중적인분포를 보이는 곳이다. 이 구릉의 서쪽으로 작은 골짜기 너머에 위치하는 남북 방향의 낮고 긴 능선의 완만한 경사면에 10·11·12지점이 자리하며, 서쪽으로 다음 능선에는 14지점이 위치한다. 8지점은 1~7지점의 동쪽에 위치한 남향의 완경사면 하단부에 있으며, 13지점은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의 남북 방향 능선에서 작은 골을 포함하는 완만한 경사면에 해당된다. 9지점은 돌다리못의 남쪽에 위치한 낮은 구릉의 남동향 경사면에서 확인되었다. 지층은 각 지점에 따라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가장 공통적인 부분만 요약하여 서술하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반암풍화층 위에 고도가 낮은 경우에는 구하상의 자갈층이 확인되고, 그 위에 여러 층으로 구분되는 모래층이 퇴적되어 있다. 모래층 위로는 니질에서 점차 점질로 변화해 가는데, 아래로부터 크게 갈색~황갈색, 적갈색, 갈색~암갈색의순으로 나타난다. 경우에 따라서 적갈색이 두 번 이상 나타나기도 한다. 하천의 영향으로 사질, 니질의 퇴적물이 쌓이다가 점차 사면에서 공급되는 퇴적물로 기원이 변화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퇴적층의 두께는 최대 10m가량 확인되는 곳이 있다. 입도와 색조 이외에도 지층 내에서 다양한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토양쐐기구조는 최대 6매 이상 관찰되기도 한다. 토양쐐기구조 등 지층 내 여러 특징과 입도, 색조 등을 고려하여 근거리에 위치한 지점들은 일부 지층과 문화층의 연결 관계를 파악하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나, 변화가 심하여 명확하게 판단되지는 않는다. 유물층은 지점에 따라 1~6개까지 확인되었는데, 1·4지점의3문화층(약 3,800점), 2지점(약 2,500점), 12지점의 1문화층(약1,900점)과 2문화층(약 1,000점)에서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양상을 보이며, 나머지 지점에서는 출토 수량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석기의 암질은 석영암과 규암이 대부분이며, 그 외의 암질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석기의 제작에는 주로 자갈돌이 선택되었으며 암맥에서 기원한 모난 돌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 도구 석기의 종류는 찍개·여러면석기·주먹대패 등 자갈돌로 만든 대형 석기가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긁개·밀개·홈날 등 작은 석기 종류는 적은 편이다. 동일 지점 또는 인근 지점에서 여러 문화층이 확인되었으나 석기의 양상에서는 시기적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특징으로 판단된다. 만수리유적의 편년에 대해서는 대립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지형 발달 과정과 퇴적물 분석에서의 특징, 광발광OSL연대측정 등의 절대연대측정값을 근거로 하여 2단구의 상부에 퇴적된 고토양층은 5만 년 전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이 경우 여러 매의 토양쐐기구조와 대자율 변화는 하인리히 이벤트에 대비될 가능성을 고려하였다. 다른 견해로는 광발광OSL연대측정 이외에도 베릴륨-10연대측정법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토양쐐기와 토양의 색조 변화를 해양산소동위원소MIS 단계로 해석하여, 가장 하부의 문화층이 35만~50만 년 전 이상의 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 이후의 문화층은 중기 구석기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판단한다. 절대연대 측정 결과의 취사선택과 지층 형성과정의 해석 차이에서 나타나는 커다란 견해 차이는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에 아직은 연구 성과가 부족하며, 서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만수리유적은 금강 유역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이전의 유적 가운데 가장 대규모의 유적이며, 인접한 지역의 여러 지점에서 석기가 출토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두터운 퇴적층에서 여러 매의 토양쐐기구조가 발달하여 지층 형성 과정의 해석도 기대되었던 유적이다. 많은 절대연대 측정과 다양한 분석 방법의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해석에 이르지는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두터운 퇴적층에 대한 해석 가능성, 후기 구석기시대보다 이른 시기에 형성된 문화층 가운데 매우 안정된 유물 퇴적 상황을 보이는 지점의 존재, 풍부한 석기 자료 등은 만수리유적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이융조) |
참고문헌 |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4지점 발굴조사보고서-(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2008),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5·6·7·8·9지점-(중앙문화재연구원, 2008),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11·13지점-(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09),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12지점-(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09),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11·13지점-(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09),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14지점-(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09),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1·2·3지점-(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10),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 제4기 지질 및 자연과학분석 (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10), 청원 만수리 구석기 유적-10지점-(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1) |
구분 | 유적 |
사전명 |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구석기시대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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