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인 초상
해제
〈조선 후기 문인 초상〉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의 회화 양식을 보여주는 뛰어난 초상화이다. 그러나 관련 문헌이나 구전되는 자료가 없어 상주(像主)의 신원이나 화가와 같은 제작의 맥락을 파악할 수 없는 초상화이기도 하다. 이 초상화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좌상으로 제작되었으며 주인공은 오사모에 분홍 시복(時服)을 착용하였다. 시복은 맑은 분홍색을 띠고 있으며 연한 회색 선으로 주름을 그리고 그 위에 진한 분홍색으로 음영을 주어 입체감을 살렸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공수하였는데, 소매 사이로 푸른색의 안감과 흰색의 내의(內衣) 자락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모정이 높은 사모의 양각에는 복잡한 결을 그리는 비단의 간섭무늬인 무아레(moiré) 문양을 그렸다. 사모 아래에는 망건과 그 위에 착용한 관(冠)의 일부가 보인다. 안면과 코의 윤곽선은 적갈색의 필선으로 그렸으나 비교적 명확하지 않게 그렸다. 적갈색 윤곽선 위에 메마른 필선을 반복적으로 칠하여 피부와 이목구비의 세부를 명암법으로 표현하였다. 안면의 측면, 안구의 주위, 코와 입의 주위를 이런 방식으로 어둡게 하여 돌출된 부분이 두드러지게 하였다. 눈 주위의 주름은 특별히 세밀하며 수염은 풍성하게 표현하였다. 바닥은 화려한 화문석으로 덮여 있으며 주인공은 표피(豹皮) 깔린 방석 위에 앉았다. 화문석의 결을 한올 한올 정밀하게 그려 화문석의 짜임새와 문양을 정밀하게 묘사하였으며 표피의 문양과 털도 보기 드물게 상세하게 그렸다. 상주의 허리에 착용한 관대의 삼태(三台)는 바탕에 벽돌 무늬를, 중심에는 꽃문양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 관대의 형태로 보아 정2품 관료가 착용하는 삽금대(鈒金帶)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문인 초상〉과 가장 유사한 도상과 화풍을 보이는 초상화는 정조대의 명재상인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시복본 초상화일 것이다.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채제공 초상〉은 분홍 시복을 입고 호피가 깔린 방석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바닥의 화문석을 제외하면 두 초상화는 인물의 자세, 복장, 방석의 표현 등 매우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다. 자세와 복식뿐 아니라 미세한 음영으로 안면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채제공 초상화와 유사한 점을 볼 수 있다. 즉 이 초상화의 표현법에서는 채제공의 초상화를 전담한 화가인 이명기(李命基, 1756~1813 이전)의 화법이 강하게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본 초상화의 뒷면에는 “광산 김씨 김상현 초상을 석지가 그리다(光山金公尙鉉之像石芝筆).”라 적혀 있다고 전한다. 석지(石芝)는 고종대(高宗, 재위 1864~1907)에 초상화가로서 활약한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의 호이다. 실제로 고종대에 종2품의 관직인 평안도관찰사,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낸 광산 김씨 출신의 김상현(金尙鉉, 1811~1890)이라는 인물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본 초상화의 화법은 적어도 19세기 초 이전의 화법으로서 채용신의 화풍과 상응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지금까지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2품의 관직을 지낸 김상현이라는 관료도 발견되지 않는다. 〈조선 후기 문인 초상〉은 그 대상이 누구인지, 어느 화가의 필치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최고의 기량을 지닌 화가가 정2품의 고위 관료를 그린 높은 가치를 지닌 초상화임은 분명하다. 글: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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