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첨 초상
- 제작시기
- 1788년(정조 12)
- 제작자
- 박춘빈(朴春彬)
- 재질
- 비단에 채색
- 규격
- 화면 80.8x61.3cm
- 지정종목
- 보물
- 지정일
- 1975-05-16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관련사이트
- 강민첨 초상-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바로가기
해제
강민첨(姜民瞻, 963~1021)은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명장으로, 거란과 여진의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시호는 은열(殷烈)이며,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고려 광종 14년(963)에 태어난 그는 문과에 급제한 후 안찰사, 내사사인, 지중추사 병부상서 등 문무를 겸한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다. 익대공신(翊戴功臣)에 책록되었으며, 병부상서 겸 태자태부로 임명되었다. 생전뿐 아니라 사후에도 국왕의 예우를 받았고, 『고려사』 「열전」에도 이름이 실린 인물이다. 보물로 지정된 <강민첨 초상>은 고려 시대에 제작된 원본이 아니라, 조선 정조 연간인 1788년, 화원 박춘빈(朴春彬)이 모사한 이모본이다.이 초상은 경상우병사 이연필(李延弼)의 명으로 진주의 사찰 우방사(牛芳寺)에 전해지던 원초상을 바탕으로 그려졌으며, 완성된 후에는 강원도 회양으로 이송되었다. 초상의 상단에는 인물의 생애를 기록한 제기(題記)가 남아 있어 그림의 주인공과 제작 시기, 그리고 모사 배경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제기에 따르면, 이 그림은 고려시대 당시 그려진 공신상이 아니라, 우방사에 소장되어 있던 원본을 기준으로 조선 후기의 형식에 따라 새롭게 제작된 초상화이다. “진주 강씨 강민첨의 초상 고려 광종 14년(963)에 태어나 신유년(1021)에 돌아가셨으며, 향년은 59세이다. 을사년(1005) 문과 을과에 급제하였으며, 최충과 함께 급제하였다. 거란을 물리친 공으로 벽상삼한제일공신(壁上三韓第一功臣)의 칭호를 받았다. 여진이 침입하자 부원수로서 강감찬과 함께 토벌하였다. 그 공으로 추성치리익대공신, 금자흥록대부, 병부상서 겸 태자태부에 올랐다. 상주국, 천수현 개국남에 봉해지고 식읍 300호를 받았으며, 시호는 은열공이다. 『고려사』 「열전」에서는 "공은 서생 출신으로 활쏘기나 말타기를 특기로 삼지 않았지만, 뜻이 강하고 과단성이 있어 수차례 전공을 세워 마침내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전한다. 묘는 충청남도 예산 감천동에 있으며, 초상은 진주 읍성 서쪽의 우방사에 봉안되어 있어 해마다 봄과 가을 제사가 행해진다.” 이 초상화는 복두(幞頭)를 쓴 주인공이 정장을 입고 홀(笏)을 든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반신상 형식으로 그려졌다. 얼굴은 화면 오른쪽을 향한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 구도로 표현되어 있다. 얼굴 묘사에는 조선 후기의 초상화 화법이 일부 적용 반영되었는데, 갈색에 가까운 얼굴색과 부드러운 명암을 표현했고, 이목구비와 수염 등 세부 묘사에도 신경을 썼다. 과장된 귀 바퀴의 묘사와 각지고 좌우 날개가 길게 뻗은 관모가 특징이다. <강민첨 초상>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초상화는 아니지만, 고려시대 인물의 원초상을 조선 후기 양식으로 계승하고 재해석한 사례로서, 전통의 지속과 초상화 형식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글: 권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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